일 하지 않았는데도, 무할례자에게도(롬 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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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지 않았는데도, 무할례자에게도(롬 4:1-17)
<서론>
학창시절, 저는 수학을 참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수학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경청했습니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문제를 풀어 주셨지만, 제 눈빛이 이상합니다. 도데체 이해를 못한 눈치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또 설명 또 설명하십니다. 그러시다가, 후~~~ 병기야! 교무실로 와라!!!
수학은 공식(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기본인데, 저는 그 기본을 모르니 못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믿음의 원리를 거부하다보니, 바울이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되는 것도 할례가 아니라 믿음이다라고 말해 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바울은 모세를 버린 배신자야!’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수업의 진도를 율법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아브라함을 예를 들어 다시 설명합니다.
<본론>
1. 일하지 않았는데도 구원해 주셨습니다(1-8).
먼저 바울은 아브라함이‘구원 얻는 데 있어서 일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믿음의 원리로 이룬 의(義)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혈통을 자랑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을 내세우자, 이렇게 질문합니다.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1)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아닌, ‘육신을 따른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의 일생을 두고 발견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묻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2)
만일 아브라함이 자신의 선한 “행위”들로, 무엇인가 한 것이 있어서 의롭게 되었다면, 자신이 이룬 성과들을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창세기 12장에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양식을 얻기 위해 에굽에 내려갔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가 너무 예뻐서 아내로 인하여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기만 살겠다고 아내 사래를 ‘누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창세기 20장을 보면, 그렇게 자기만 살겠다고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실수한 것이 아니라 상습범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블레셋 족속의 땅, 그랄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때까지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20:2) 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속인 행동으로 애굽의 바로와 블레셋의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깁니다. 참... 남편이라 사내라 말하기 어려운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빼앗긴 사건들에서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우선 이 두 사건을 누가 해결했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셨습니다. 애굽 땅에서는 전염병을 내리셔서, 그랄 땅에서는 직접 아비멜렉을 꿈으로 찾아가셔서, ‘야! 남편이 있는 여인을 건드리기만 해봐! 너 절단 낼 겨~’
그런데 하나님은 잘못한 아브라함이 아니라, 엉뚱하게 애굽과 아비멜렉을 벌주고 혼쭐내셨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일생이 모자람과 실수투성이였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시고, 여전한 사랑과 변하지 않는 성실하심으로 아브라함을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의한 반전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반전은, 아내를 누이라 속인 두 사건 모두, 아브라함의 생애를 뒤흔드는 큰 사건 직후에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사건은, 같은 12장 1-9에 기록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단하여,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란(튀르키에 남단)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직후 일어났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을 건넌 사건은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결단과 도전의 땅에 오자마자 엉뚱하게도 사고치고 말았습니다.
그랄에서의 사건(18장, 19장)은, 이른바 ‘소돔을 위한 기도’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의인 50→45→40→30→20→10명까지 봐달라는 놀라운 응답을 받은 뒤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부끄러운 일을 벌이는, 자랑거리 하나 없는, 그저 온갖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이 뒤범벅되어 그 허물이 덮혀진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아온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를 은혜로 선택하셨고, 선물로 믿음을 주셔서 그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 시대 성도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근거로 바울은 창세기 15:6의 말씀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3)
대를 이을 아들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인척 조카 롯이 떠나고, 엘레에셀이라는 신임하는 종도 그 후사가 아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상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창15:1)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5-6)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었다!’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여겨진 바 되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의로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에 의하여 그가 의(義)로 여겨졌다, 간주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이 옳게 여겨지는 것은 오직 하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그대로 믿은 것, 오직 믿음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보충 설명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 5)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는데 한 일이 있다면, 은혜가 아니고 마땅한 보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랑할 만 하지만, 일 한 것도 아니고 경건하지도 않은 그를 의롭게 여긴 것은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공로’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무 한 일(공로) 없고 경건하지 아니한 우리를, 은혜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 믿게 하셔서,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한 것도 없이’ 의로 여겨지는 엄청난 복을 누리는 성도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불법들을 용서 받고 그 죄들이 화목제물(속죄소)이신 예수의 피로 가려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간과하신)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일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행한 것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다 부족; 모자랐고, 도리어 불순종하고 거역한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불경건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구원을 위해 일하지 않았는데도, 오직 믿음 때문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격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할례자에게도 의롭다 하셨습니다(9-17).
두 번째로 바울은 아브라함 같은「무할례자에게도 의롭다 하셨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할례가 있는 자신들만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고 자랑하는 것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의 말이 잘못 되었음을 또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또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일한 것도 없이 의로 여겨진 복’(1-8)이 과연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9上); 이 복이 할례 받은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할례가 없는 이방인들도 해당 되는가? 반문합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할례자만 이 복을 누린다면, 하나 더 묻겠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10上)
바울은 자답합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겨진 것은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10下)
이 상황을 확고히 하기 위해 바울은 ‘할례(세례)가 무엇인가?’설명합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11上).
바울은 「‘할례’라는 ‘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도장 받는(인印, seal)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도장 찍는 순서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살 때, 도장부터 찍고 물 건(件)을 봅니까? 물 건(件)에 대한 상세 정보와 조건을 확답 받은 후에 도장을 찍습니까? 당연히 도장은 나중에 찍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고(창 15:6) 한참 후인(약 14–24년 후) 99세 때입니다(창 17:9–14).
아브라함은 ‘의롭다 여김’ 받고 나서도 할례라는 ‘언약의 표징’없이 약 20년쯤 그냥 지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11절 12절은 설명합니다(합독).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1下)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12)
아브라함이 할례 없이 믿음 때문에 의로 여겨져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된 것처럼,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들도 믿음만 있으면 의로 여김 받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이든 유대인이든 믿는 자들’의 ‘참 신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3절부터 15절은, 아브라함이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진 것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오직 믿음으로 상속받는 것’(13–15)이지 율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세상의 상속자’;‘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을 그림자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히 11:16; 요 14:2; 고전 6:9–10; 계 22:14 등).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16上)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17下)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할례자였던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므로, 죽은 자 같은 아내(사라)의 태를 여셔서 약속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또한 무할례자로서 본래 약속 밖에 있던, 죽은 이방인을 방불했던 아브라함을 은혜로 선택하셔서, 하나님 언약의 당사자로 부르셨습니다.
같은 믿음의 원리로, 무할례자인데도, 이방인인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따라’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고, 나중에 그 믿음으로 된 의를 할례로 인쳐 주셨습니다.
감사하게, 하나님은 믿음의 원리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적용하셔서, 믿음이 먼저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무할례자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상속하셨음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살고 예수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으며(갈 3:7), 아브라함의 복을 상속받은 주님의 자녀입니다(갈 3:14).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믿음의 원리(공식)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이상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이 원리를 망각하니, 엉뚱한 신념과 노력, 믿음 아닌, 다른 것들(공로 선행 등)을 내세웁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일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구원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또한, 이 공식을 모르니, 예수 아닌 다른 조건들(율법과 윤리 등)을 내세웁니다.
기억하십시오! 본래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던 우리 무할례자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한 분은 오직 예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