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보니게 여인 / 막 7:27 /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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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인입니다. 다수의 흐름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다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죄악의 여론에 따라가며 그렇게 죄악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무엇보다도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옳은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만들어주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조금의 분별력도 없었습니다.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영적인 눈이 띄어져서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예수님 옆에 서서,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렇게 주님의 분별력을 인생을 심플하게 예수님으로 정의내리며, 그렇게 가장 축복된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 선교 센타에서 몽골 목회자들 재교육을 위한 세미나가 있습니다. 이곳에 강의하러 떠나신 담임목사님, 작은 문제들까지도 주님께서 다 책임져 주셔서,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에 조금도 걸림돌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미나를 통하여 몽골 목회자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교회의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집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으며, 병실에서 휴대폰으로 설교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또한, 수술을 앞둔 지체들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구원자 예수님을 노래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영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주여,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사실과 진리 가운데 머뭇머뭇거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님, 저들을 살려주시옵소서. 온전히 다시금 닫힌 마음이 열려져서 구원자 예수님을 제대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또다시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 성도들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옵소서.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고,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할지라도, 그 순간 순간마다 예수님께서 찾아와주셔서 한 걸음 한 걸음 주와 함께 동행하며, 진정한 성공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말씀 듣고 기도합니다. 말씀 가운데 예수님 만나게 하여 주시고, 기도 가운데 예수님께 부르짖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진리되신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서론
우리 같이 읽으실 하나님의 말씀은 7장 27절 마가복음 입니다. 같이 말씀을 두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오늘도 이렇게 새벽을 깨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우리 귀한 성도분들을 진리의 길을 걸어가주신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수로보니게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매우 충격적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굉장히 고민이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또 어떻게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오늘 말씀은 윤리, 도덕, 상식, 인간적인 생각, 사실 등으로 보게 되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복음으로 보게 되면, 진리로 보게 되면 어느 정도 풀리게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들어가기 전에 우선 저와 여러분들은 이 사건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론
본론
우리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셨습니다. 일명 정결 논쟁. 사람이 무엇으로 더러워지는지 논쟁하신 것이죠. 사람은 손씻기를 잘해야지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깨끗해져야지 진짜 깨끗해지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겉으로 보이는 그런 기준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정결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놀랍게도 유대 지역을 벗어나서 이방 다른 나라 지역으로 이동하십니다.
마가복음을 들은 독자들은 약간 놀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는데, 이방 지역으로 내려가셨던 것이죠. 그러나 앞에서 정결 논쟁을 하셨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깨끗하고, 이방인이 더럽다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이죠. 마음이 더러운 사람이 부정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정결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고, 이방 지역 두로 지방에 가시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가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예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왜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으로 가셨을까? 그 곳에서 무슨 하셔야 할 일이 있으신가?
그렇게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셨는데, 예수의 소문을 들은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여자는 마가복음에서 아주 분명하게 어떤 여자인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6절에 할라인이었다.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분명한 이방인 여자였던 겁니다. 예수님 앞에 수로보니게 여자, 이방인 여자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곤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길 간구합니다.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서 간절히 간구합니다.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귀신 좀 내쫓아주세요.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런데 27절에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여기서 자녀는 누구일까요? 유대인을 말합니다. 그러면 개들은 누구일까요? 지금 앞에 있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개들이라는 표현은 매우 경멸적인 표현입니다. 이방인을 향하여 매우 모욕적인 표현을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는 구원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해할 순 없지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유대인들이 먼저 였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의 발언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굉장히 더러운 그러한 존재였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 수로보니게 여자 면전에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만약에 제가 수로보니게 여인이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겠습니까?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조용히 예수님을 떠나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굉장히 이방인들에게 직접 말해서는 안 되는 그런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표현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윤리와 도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저와 같이 기분 나빠하고,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죠. 역시 유대 선생들은 다 교만해. 내가 기대할 걸 기대했어야지. 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28장에 더 충격적인 여자의 말이 나옵니다.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수로보니게 여자는 충격적이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옳습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주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이렇게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개들이라는 표현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치면서 제발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 수로보니게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윤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 어떻게 이럴 수 있었던 것일까요? (침묵)
수로보니게 여자는 귀신 들린 딸을 보면서 온갖 방법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여인은 어떤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한 유대 랍비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어가시고,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내쫓아주시는,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또한, 정결한 사람의 기준은 음식을 가려먹고,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매우 상식에서 벗어난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다고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은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을 꾸준히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여인 안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분이라면,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 분이라면, 어쩌면 내 딸을 살려주시지 않으실까? 그렇게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예수님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정말 이 여인은 기뻐했습니다. 아 정말로 유대인만 구원하려고 오신 게 아니라, 우리같은 이방인들도 구원하러 오신 것 맞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엎드려서 자기 딸을 좀 구원해달라고,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해야 한다. 자녀의 먹을 떡을 개들한테 줄 수 없다. 이러한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도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 안에 있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듣게 하여 주었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하신다고? 아하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순서는 유대인 그리고 헬라인이구나.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이구나. 아 우리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게 맞구나. 그러면서 진리로 받아들여서 그 예수님의 말씀의 숨겨진 의도를 파고 들게 됩니다.
이 여인이 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을 모욕하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 계획의 말씀으로 들리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여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치게 됩니다. 주여, 옳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먹던 떡의 부스러기를 우리 이방인들이 먹습니다. 주여, 제 딸을 구원해주시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담겨진 진리, 구원계획을 믿음으로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계획은 제자들도 아직 모르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제자들보다 먼저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이 여인은 조금도 긁히지 아니하고, 기분 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 말씀을 파고들어서 부스러기 은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부스러기 은혜로 이 여인의 딸은 구원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자존심까지 내려놓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존심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이런 교훈적인 본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덕분에 / 예수님의 말씀을 윤리로 듣지 아니하고, 진리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했다는 겁니다. / 그렇게 오늘 하루도 주일 설교 말씀을 다시금 묵상해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들었다가 흘려버리는 사실로 듣지 마시고, 엘리야의 본문을 하나의 교훈으로 듣지 마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 진리의 말씀으로 들으며 지혜롭게 분별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직까지도 사실과 진리 사이에서 방황하며, 윤리와 도덕에 갇혀서 그렇게 분별력 없이 살아가는 죄인들입니다. 주여,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들으며 예수님의 분별력으로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