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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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17-21
지난 주일 저녁에 가정예배를 하면서 큰 감동과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집 막내 한결이가 처음으로 예배 시작기도와 마침기도를 자진해서 한 겁니다.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릅니다. 아직 어리지만 자기 수준대로 하는 솔직하고 정직한 기도를 배울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삼위일체는 우리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부성자성령 세 분은 모두 본질이 다르지 않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신비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 수준대로 그 신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말씀으로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이 기록된 말씀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 솔직하고 정직하게 반응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주일에 4:13-16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드러내셨는지를 봤습니다. 성령은 사랑을 알게 하시고, 성부는 예수를 보내주시고, 성자는 구원자로 와주셨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었고, 예수께서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으며, 스스로 기도의 응답이 되셨다는 내용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됨을 우리가 하나님 자녀됨을 주님은 그토록 간절히 원하셨고, 스스로 기도 응답이 되셔서 그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믿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으로 그 완성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 관련하여 4가지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성된 사랑의 결과는 무엇인가, (2) 이 사랑을 토대로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3) 이에 대하여 요한이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 리마인더와 (4) 오늘 나눈 내용들의 실천적인 부분을 마지막으로 다뤄 보려고 합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성된 사랑의 결과는 무엇인가? (1) 담대함 (17a).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가 서로 실천하는 것이 완성된 사랑이라고 요일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뵙는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담대함은 무엇일까요? 바로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가 하나님 앞에 서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자녀로 하나님 만나는 날이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성된 사랑의 결과입니다.
(2) 예수처럼 사는 삶 (17b).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며 사셨듯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다운로드 되어 남에게 사랑함으로 그 하늘의 사랑을 업로드하는 삶입니다.
예수가 사신 것처럼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주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주님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현재 진행형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심판의 날까지 현재 예수를 닮아가는 것 또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주님을 닮아온 우리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합당한 자녀들로서 담대히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진행중이며 완성된 구원, 이것이 하나님의 완성된 사랑의 결과입니다.
2. 완성된 사랑에 대한 자기 점검 -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가? (18절) 이 구절을 보면서 신학교 교수와 결혼에 대해 대화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배우자를 만날 때 하나님은 결코 두려움을 주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지금 이 시간의 영적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우선,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완전해서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온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요한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징벌과 관련이 있다! Punishment입니다. 이 징벌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마 25:46에서 언급되는데, 주님께서 영원한 형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징벌을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셔서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얻게 하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어서 구원의 여정 안에 있다면, 징벌이라는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다면, 아직 주님의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상태이십니까? 주님이 지금 당장 오신다면, 아니 내일 오신다고 예고라도 하신다면, 두려움 없이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정말 그러실 수 있길 바랍니다. 요일 2:28에서도 담대함을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담대할 것이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부끄럼없이 주님 닮은 담대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주님 만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이에 대하여 요한이 강조하며 상기시켜 주고 싶은 리마인더 두 가지를 봅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19절) 가장 중요한 리마인더입니다! 2, 3장에 이미 요한이 기록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과 그분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자진해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다. 우리는 그럴만한 수준도 아니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전적으로 삼위일체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다운로드 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에 맞게 합당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직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있으신가요? 주님 만나고 싶은 마음보다 아직 더 누리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십니까? 천국 갈 수 있는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이 있는지?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그 당시 옛교우들 뿐만 아니라 지금 여러분께도 리마인드 해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를 보내주셔서 죄값을 치르셔서 우리와 함께 부활생명을 누리게 하셨다는 그 사실! 성령께서 지금 이시간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 사랑하면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 (20, 21a) 하나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이웃을 미워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쟁이라 하십니다. 더 나아가,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 하십니다.
우리는 주로 언제 하나님 사랑한다고 고백합니까? 주로 기도 시간 보다는 찬양 시간에 이런 고백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찬양 가사가 중요합니다. 찬양 가사가 기도가 되고, 고백한 가사 내용이 삶이 되도록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일상의 삶이 찬양으로 드려지는 참된 고백이길 바랍니다.
4. 우리가 실천해야 할 계명을 받았습니다. (21b) 주님께서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을 다 읽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율법을 직접 몇 문장으로 들려주셨으니,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말씀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으로 직접 실천하시면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삶 자체가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과 하나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요한은 계속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용/복음:
구원 이루어가는
솔직히 섬기고 봉사하며 사랑할 때 가끔은 두렵지 않은가?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손해보면 어쩌나, 내가 되레 상처받지는 않을까?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며 주저하기도 한다.
포기바름. 영적으로 짙게 눌려진 안개 같은 내 마음, 이 도시, 이 세상에서 JX의 참생명의 이슬 되는 우리 될 수 있길.
성령충만 - 찬양, 말씀, 기도의 시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을 때 가장 성령이 충만하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섬기고 희생할 때 가장 성령이 충만합니다.- 내 부패된 심성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동기가 되어 주신다.
요한과 그 당시 교회가 했던 일은 교회 건축과 멋진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전할 것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증언하는 것은, 예수 믿으면 뭔가 좋은 일이 있고, 답답한 일이 풀어지고, 어려운 일이 없을 거란 기대를 촉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보내신 예수를 알고, 믿으며, 그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구주 -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우리 모두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무엇이 희생인가?
예수의 희생 아래 우리의 희생을 이루는 고통과 고난과 고민이 있다. 이 모든 짐을 주님께서 대신 지셨다. 주님의 희생입니다.
Pray not to be distracted. 주님께서 기도하신대로. 요17장. 죄인들과 하나될 수 없는 자리에 계셨던 주님. 죄인들을 끌어안을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그 마음으로 품기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 사랑하지 말라고 부추기며 훼방하는 것들을 멀리하기 위한 시간이 기도 아닐까.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피땀같은 기도의 내용 아니었을까?
예수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됨.
이제 우리는 이 예수 때문에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과 하나된 자녀들입니다.
하나된 존재
다짐과 노력?
존재의 변화가 중요!
내 안이 변하지 않는데, 마음이 없는데 겉으로만 치장하는 것만으로 가능한가?
National landing, heavenly takeoff
세월호 참사 10주기
사랑하라는 실천의 명령을 계속 봅니다. 다짐과 결단을 뒷받침할 만한 하드웨어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래서 사랑을 하기 위해 다른 앱을 깔 필요가 없다. 이미 하드웨어에 다운되어 내장되어 왔다. 그 하드웨어가 우리 안에 있다. 새로운 생명, 사랑으로 완성된 그 생명,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드웨어!
빛과 소금이 되어야지 해서 빛과 소금을 찾아 앱으로 깔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미 빛과 소금의 존재로 다운된 것입니다.
맺는말:
설교후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