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3) 가치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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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진지하게 질문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는 우리에게 중요한 도전을 줍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통해서 도래하는 전혀 새로운 세상입니다. 물론 이것은 종말과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셔서 지금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고 억울한 사람들(이스라엘)의 한이 풀어지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심판을 받아 멸망할 사람이 있고 반면에 생명을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대와 믿음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종말에 심판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는가?” 질문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당시 유대인들 중 바리새인과 에세네파는 서로 다른 대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기는 하지만, 전체가 죄로 가득했기 때문에(멸망의 이유) 율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반면, 에세네파 사람들은 자신의 분파에 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청년은 당대에 떠오르는 지도자이며 선생으로 보이는 예수님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지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은 뭔가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인이 잘 아는 기본 명령, 즉 십계명을 반복하십니다. 특이한 것은 1~4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6~9계명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를 열거하고 10계명은 원래 계명인 탐내지 말라 대신에 속여 빼앗지 말라로 바꾸어 말하고 5계명으로 올라가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미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아마 안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이고, 더구나 12살부터 철저하게 십계명을 준수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영생을 얻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이렇게 생각하며 안심하려는 순간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과 이 청년의 생각이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 깊이 들어가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과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십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무엇을 하고, 하지 말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계명 안에 담긴 본뜻, 참된 의미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한 율법 뒤에 감추어진 근본 정신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만 계명을 지키지 말고 철저하게 끝까지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 계명 안에 담긴 의미, 본래의 뜻, 근본정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들은 모두 이웃과의 관계에서 작동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무엇을 하는 일, 무엇을 하지 않는 일의 핵심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웃을 헤치지 말라는 부정 명령 뒤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행동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주셨다는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이 율법 준수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마 5:21~48).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과 연결됩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그러면서 눈이 범죄하면 눈을 빼버리고 손이 범죄 하면 손을 잘라내는 것이 온몸이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계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와 대적자들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에게 ‘낙타와 바늘귀’ 비유를 통해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제자들을 당황케 하였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당대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걸 말씀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모든 부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돈을 행복의 근원으로 여기며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돈, 혹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사고 사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또한 바울은 돈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딤전 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돈 자체, 혹은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 부자가 되려는 것은 돈이 곧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라 믿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되는 것을 주의하라는 말입니다. 돈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도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부자는 누구입니까? 자신이 소유한 부를 자기 만족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더 잘 섬기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정직하게 돈을 벌고 거룩하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율법 조항을 문자대로 지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 자기가 의지하고 붙잡고 있던 것, 이것 없으면 난 못살아, 행복하지 않아,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기던 가장 귀한 가치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고 십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즉 장차 오는 세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부자는 고후 6:10절에서 바울의 표현한 것처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은 사람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의지하고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막 10:29~30)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어린아이에 관한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어린이의 절대 의존성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힘이 없고 연약하여 스스로 설 수 없어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반대의 예를 보여줍니다. 부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이냐 돈이냐 선택하라고 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입니까? 그게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단지 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아니라 명예, 쾌락, 성공, 관계, 건강 등이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 만큼 나 자신을 얽어 매는 대상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입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과 바꾸지 않는 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영생(구원, 하나님 나라)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진짜로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구약 성경에서 제시하는 율법의 조항을 문자적으로 지켰다고 말하며 자신이 영생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자기 소유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유익을 위해 쌓아두고 사용하는 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이며 이런 믿음과 행위는 영생에서 거리가 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따르던 것에서 돌이켜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따르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혹은 그것을 따르는 것에서 인생의 행복과 의미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새로운 시대는 미래에 오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 이미 여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면 그 시대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청년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영생을 얻고 싶은 간절함이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따르던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지금처럼 율법 조항에 기록된 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나누어줄 필요가 뭐가 있냐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가치 체계를 전혀 바꾸지 않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믿던 대로 믿으면 되지 뭘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시대, 하나님 나라는 완전히 달라진 나라입니다.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쌓아놓은 재물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준 재물은 하늘의 보화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이미 백 배나 되는 복을 누립니다. 예수를 따르기 위해 가족을 버린 사람들은 여기에서 더 많은 새로운 가족이 생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해도 동시에 생깁니다. 세상 가치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가치를 계속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박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가족된 믿음의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갈 때 오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기존의 가치를 가지고는 그 나라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가치를 완전히 전환하여 하나님 나라를 차지한 사람들입니다.
‌‌회심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 곧 ‘가치의 전환’입니다. 돈, 명예, 성공, 쾌락, 인간관계, 건강 등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자원들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사용함으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심입니다. 그리고 이런 회심이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한 믿음입니다. 가치의 전환으로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공동체 기도
이 땅의 가치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 주님, 우리가 그동안 붙잡고 의지하면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추구했던 것들을 이제 다 내려놓고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사용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가치의 전환을 통해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우리의 참된 스승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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