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역사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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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서론
서론
제가 북한선교기도회 설교를 준비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좀 해보았습니다.
북한에 성경 보급률이 얼마나 될까? 가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잘 안 나올거라 예상은 했는데 예상대로 찾기가 힘들고, 그런 정보 자체를 얻는게 어려웠습니다.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선교단체에 의해서 오디오 성경이 선교사님들을 통해 직접 전달되거나, 풍선으로 전달된다는 소식이 기사로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성경 자체가 보급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고, 제 예상에는 성도들일지라도 성경을 소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신령한 지식이 담겨있는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북한에 보급이 안 된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는 희망이 있을까요? 성경이 부족하거나 거의 보급이 어려운데요?
네 있습니다. 왜 희망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정답이 있습니다. 바로 믿는 자들에게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그들에게도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이 적을지라도 성령님의 역사는 성경책의 유무를 떠나서 어떤 경로로든 하나님의 말씀 그 성경의 메시지들이 전해지도록 하시는 것이 성령님의 능력이죠.
성령님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백성은 성경책이 보급되는 것을 뛰어넘어서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고 다만 기도해야 할 이유는 성령님이 그 능력을 우리가 기도할 때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복음이 전해지는데 현실적 한계들이 있죠.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본론
본론
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까? 성령님 때문이죠.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1.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 용어로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조명”이 무엇입니까?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성경이 혹은 성경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간다고해서 그것이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성경의 내용이 전달되면, 그자의 안에서 성령님의 내적 조명으로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때 그 성경의 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이라는 위대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신학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하는데 이 신학의 정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칼빈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는거죠. 그래서 개혁주의를 칼빈주의라고도 하죠.
그런데 왜 우리가 칼빈의 신학을 아직도 연구하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저는 칼빈의 신학이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있다고 봅니다. 칼빈신학을 움직이는 “두 축”, “두 바퀴”가 뭐냐면 “성경”과 “성령”입니다.
성경과 성령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조명하는 것입니다.
북한에 실질적 성경 보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박해도 극심해서 정말 힘든 현실적 한계에 닥쳐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확실하고, 가장 능력있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보혜사 성령님께서 북한의 성도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복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북한 성도들에게 작용되는 원리가 뭔가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이다.
무소부재하신 성령님은 이곳에 계신 성령님이 북한에 계신 성령님과 동일하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령님은 북한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이다.
여러분 우리는 북한의 성도들에게 우리가 믿는 같은 성령님이 함께하시어서, 그들에게 말씀의 은혜를 깨닫게 하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해야만 합니다.
또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성령님은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2. 성령님은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를 염두하시고, 이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은 “믿게 하는 분”,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의 경륜에서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은 “성도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아까의 원리에서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이다.
무소부재하신 성령님은 이곳에 계신 성령님이 북한에 계신 성령님과 동일하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령님은 북한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이 확실하게 됩니다. 무엇이냐면, 성령님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북한의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더 강한 믿음을 허락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님은 그 사역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한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한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구해야합니다.
북한을 위해 성령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한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길 간절히 기도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이 말씀만 똑 떼서 표면적으로 “예수님이 평안을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맥락 안에서 파악하면 이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하심으로 주시는 평안”입니다.
오늘 설교 안에서 더 풀어내자면
“보혜사 성령님이 말씀을 알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생기는 평안”입니다.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이 평안을 주시는 방식은 세상 가운데 방황하던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북한의 외적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박해와 핍박, 가난과 기근, 권세의 횡포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외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내적 평안을 얻습니다.
왜요? 성령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셔서 주시는 평안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 여러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제목들을 보시면 평안이 안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외적인 상황들을 보고 기도하는 제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핍박하는 독재 정권, 국민의 가난을 돌아보지 않는 횡포
이것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몇십년간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고, 오히려 더 상황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바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그러한 외적 상황 가운데 모든 성도들에게 내적 평안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전제로 외적 상황을 놓고도 기도해야 합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니 성령님을 통한 그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비록 외적 상황을 놓고 기도하면서도 성령님 그들의 외적 상황 가운데서도 평안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은 그런 분이신거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어서 내적 평안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