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이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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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8~21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참 많이 있습니다만,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는 21세기 인류 최대의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고 있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의대도 똑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는데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인 중에 하나로 역시 우울증을 꼽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15% 정도가 살면서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요. 최근 5년(2017~2021년) 우울증의 진료 추이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환자 수는 2017년에 69만 1,164명이던 것이, 2021년에 93만 3,481명으로 35.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원 참 많이 가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정서는 감기에 걸리거나 육신의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지만, 마음의 병을 얻었을 때 병원 찾는 것은 참 어려워합니다. 병원도 잘 찾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세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100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우울증이라는 것이 우리를 위협해 주는 자료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우울증이 극성을 부르는 현상에 대해서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 구도에서 유발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분석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생활이 그만큼 힘들고 무겁다는 의미 아닙니까?
또 이 우울증을 지역별로 분류해 보니까, 세종시가 무려 131.9%로 압도적으로 1위를 하고 있는데요. 세종시가 젊은 가정이 많잖아요? 아마도 젊은 엄마들이 이주해 와서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우울증을 연령별로 분류해 보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느 연령대가 우울증이 제일 많을 것 같습니까? 최근 5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20대가 전체 127.1%로 1위라고 합니다. 10대도 90.2%라고 하고요. 더 놀라운 것은요. 10대 미만 즉 이 어린이들이 70.2%나 될 정도로 이 다음 세대들의 우울증이 아주 심각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10대 20대 아이들은 인생 경험도 없고, 부모들이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까 정신력이 좀 약해서인지 잘 인내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50대 60대 성인들은 그냥 참고 인내할 뿐이지 현실적으로는 우울증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은 중장년 혹은 노년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뭘 말하는 걸까요?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경험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대처할 수 있는 내성도 생기는데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내성이 2배, 3배라고 한다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는 10배, 20배로 증가한다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이 자료들을 보는데, 찬송가 543장요.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사실은 인내하고 참아내는 것뿐이지 중장년층이 우울증이 많은 것을 보면서 이 찬양의 후렴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 다음 가사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왜 세월이 더 지나갈수록 예수님만 더 의지하게 됩니까? 왜 세월이 더 지나갈수록 예수님을 더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까?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우리를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더 무겁기만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에베소서 4:22~24 말씀을 보세요.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에 나오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이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Let the Spirit renew” 다시 말해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새롭게 하시도록 내버려 두라’ 혹은 ‘내어 맡겨라’ 그런 뜻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세월이 지날수록 경험으로 깨달아 알게 되고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이 일하시도록 그분에게 맡겨 두는 상태. 이게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세계의 질서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세월 지나갈수록 예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18절의 말씀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술’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물론 ‘과음하지 말아라’ 그런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 말고 의지하는 그 무엇, 하나님 말고 의지하고 싶은 그 무엇으로부터 우리가 탈피해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지만, 이 인생의 무게로부터 견뎌내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될까요? 이게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봐야 할 “성령으로 충만하라” 18절 다음에 19절부터의 내용입니다. 19절~21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합독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밝음’ ‘기쁨’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울함과 반대되는 단어들 아닙니까?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우울함이 찾아올 때’라고 정했는데, 원래는 완성된 제목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울함을 극복하는 비결은 성령 충만함이다’ 이렇게 하려다가 칸이 모자라서 못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찾아올 때’라고 짧게 제목을 쓰긴 했지만, 여러분, 우울함이 찾아올 때 극복하는 비결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이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데요. 사실 성령 충만함이라는 게 참 막연하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보여주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증거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3가지로 정리해보았는데요.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일어나는 결과 중에 첫째는, 찬양의 회복입니다. 19절을 다시 보세요.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고신대 길성남 교수님에 말에 의하면 이 ‘시’라고 번역한 단어를 원어로 보면, ‘프살모스(ψαλμός)’라는 단어인데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예배 중에 인용한 구약의 시편을 가리킬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찬송’이라는 단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유월절 찬미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이 찬송이라는 것은 과거의 자기 조상들이 애굽의 압제로 엄청나게 신음을 하고 있을 때, 홍해를 갈라주신 하나님,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나오는 노래, 이게 바로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라고 번역을 한, ‘오데(ᾠδή)’라는 단어도요. 승리를 거두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와 ‘찬송’과 ‘노래’라는 것은, 각각 다른 종류의 찬송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가리킬 뿐 아니라, 과거에 주신 은혜에 대하여 드려지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찬양은 현실의 우울을 이겨내는 능력이에요. 우리 어른들이 옛날에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 중에서 이 찬양 너무도 잘 아시잖아요? (부르기)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웬만하면 가사만 불러 드리려고 했는데, 억제할 수 없는 제 안의 기쁨이 찬양을 부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힘드실 때, 쌀독에 쌀이 떨어졌을 때, 애들 등록금을 주셔야 하는데, 돈이 없을 때 부르던 노래가 이런 찬양 아닙니까?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것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 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노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노래를 부르게 될 때, 그것이 바로 현실의 우울을 이겨내는 능력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어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모두는 물론 우리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전수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약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의미 있는 에피소드 한 가지가 있는데요. 사무엘상 16:14~15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지금 이 사울은, 마음이 병든 상태입니다.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이후에 악한 영이 그를 번민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지금 혼란과 혼돈과 번뇌로 굉장히 괴로운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주변의 신하들이 뭘 권합니까? 좋은 음악을 들으라는 거예요.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해서 요즘으로 치면 음악치료 같은 것을 하라는 것이죠. 그랬더니 누가 다윗을 추천한 것 아닙니까?
이 다윗이 번뇌와 괴로움으로 요즘으로 치면 극심한 우울증으로 마음의 고통을 얻은 사울 왕을 위해서 연주하기 위해 가는데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3절 합독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여러분, 이게 찬양의 능력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마음에 우울함이 찾아올 때, 마음이 힘들 때 우리가 주께 찬양하면 거기에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물리치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학교 때 불렀던 찬양인데요. 기억나십니까? (부르기)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부르세요(짠짠짠!)” 여러분, 우울하고 답답함이 찾아올 때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그 놀라운 일이 뭘까요? 내 안에 있는 어둡고 답답한 마음을 몰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요. 현실적으로 찬송을 부른다고 어둠이 물러가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했길래 그가 찬양할 때 그를 괴롭히던 악한 영이 물러가고 내면에 치유가 되었냐는 거예요.
바로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한 가지 있는데요. 오늘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무엘상 16:14 바로 앞에 13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이 찬양했을 때 그것이 능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영” 오늘 본문으로 말하면 다윗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찬양하게 될 때, 거기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찬양하게 될 때, 거기에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 성가대원들 얼마나 실력이 좋습니까? 이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할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 안에 치유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또 설교 후에 찬양을 부를 때도 1부 예배는 기타 하나로 반주하고 그 흔한 신디와 드럼도 없이 찬양하지만,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다윗이 연주하던 수금이 되어 찬양하는 가운데 어둠의 역사들이 물러가기를 소망합니다. 홍파복지원도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송장로님 가정이 헌신해서 봉사하고 계시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분들이 더 많이 가서 함께 격려하고 예배하고 봉사하는 가운데 어두운 마음들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게 찬양의 능력이에요.
그런가하면 두 번째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일어나는 일이 뭔가 하면, 감사의 회복입니다. 20절을 보세요.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런데 여기 감사하되, 두 가지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예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거예요. 이 말은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내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초월하는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가능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책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감사는 형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성숙과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주님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참 옳은 말이잖아요? 로마서 8:28 합독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의 고백처럼 형편에 따라 감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 20절의 “항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헬라어로 ‘판토테(πάντοτε)’라는 단어인데요. 번역이 좀 아쉽습니다. 이 단어는 ‘항상’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또는 ‘주기적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요. 그냥 ‘맹목적으로 쥐어짜듯이 감사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데요. 은혜받은 우리는 지속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만 합니까? 그게 능력이기 때문이에요. 빌립보서 4:6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왜 그래야 한다고요? 그러면 그다음 7절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7절
7 그리하면(그렇게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래서요. 여러분, 우리가 후불로 하는 감사.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하는 감사도 귀하지만, 선불로 하는 감사가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어렵고 진행되는 일은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내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감사가 능력이 되어서 곤란한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메니에르라는 귀 어지럼증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거든요. 병이 왜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재작년 말부터 발병하더니 사실 작년에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한 번 어지럼증이 오면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구토까지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어지럽지 않은가? 그것부터 확인하는데요. 늘 긴장해 있어야 해요. 다행히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거의 2년째 제가 병원에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두고 한 시간씩 걸려서 그 병원에 다니는데요. 이번 달 초에도 다녀왔거든요. 이번에 다녀오면서 문득 생각하는 게 ‘내가 이 병원 원장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지난번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한창 안 좋을 때 일본에서 수입한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걸 또 구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마침 우리 손 장로님이 약국을 운영하시잖아요? 장로님이 그 구하기 어려운 약을 구해서 섬겨주시는데 ‘내가 장로님이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한 번 어지럼증이 오면 비상약을 먹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누워 있어야 하거든요. 그때마다 ‘내가 심방 도중에 이런 일이 없었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전 목사님이 교회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또 병원 갈 때마다 일부러 운전해 주는 아내가 있어서 감사한 거예요. 또 저희 부모님은 목회하는 아들이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한다니까 보약을 보내주시는데요. 제가 그거 먹고 또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그것도 감사해요.
여러분, 제가요. 이 메니에르, 어지러운 것에만 집중했으면 저는 정말 목회를 못했을 것 같아요. 한창 심할 때는 ‘내가 이렇게 해서 목회를 계속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지럼증이 아닌, 점점 치유가 되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랬더니 감사가 확장성이 있더라고요. 좋은 병원 원장님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약국을 운영하시는 장로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좋은 부모님과 배우자, 또 부교역자를 만난 것에 감사하고 심지어는요. 그 일본에서 판매하는 약을 개발한 사람에게 다 감사하더라고요. 이소바이드라는 약인데요. 잊지 못할 이름이에요. 이소바이드. 너무나 감사한 거예요.
아내에게 감사하니까 또 저희 집 두 아이에게 감사한 거예요. ‘저렇게 나를 집요하게 깨어 기도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얼마나 감사한가?’
제가 깨달은 게 뭡니까? 범사에 어떤 상황이든, 감사하면 그 감사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줌으로 언제 어지럼증이 올지 몰라 늘 긴장하지만, 점점 회복되어 가고 그 한 시간씩 걸려서 다녀와야 하는 병원도 전혀 귀찮지 않고 오히려 점점 감사가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감사의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가하면 마지막 세 번째로 성령으로 충만할 때 일어나는 결과는 아름다운 교제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어떻게 해요?)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1절]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또 어떻게 해요?) 피차 복종하라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입니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면 그것을 옆에서 화답해 주고 그것을 기뻐해 주고 그것이 확산이 되는 것. 저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서로 화답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름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들이 그런 목장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적인 놀이나 그런 얘기 전혀 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 기뻐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감사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을 이 예배 가운데, 목장 모임 가운데 나타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흘러넘쳐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또 아직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해진 내 가족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내면을 만져주시고 치유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이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요. 우리 이 찬송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이 찬송가의 마지막 가사가 정말 압권입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여러분, 편한 길 걷고 넓은 길 걸을 때 밤낮 기뻐하는 것은 예수님 모르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좁은 길을 걸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명을 쓰는 자리에 가도 그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 가능하다고요?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주의 성령이 함께하실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울함이 사라지고 내면이 치유가 되고 내면이 ‘밝음’이 되고 기쁨으로 바뀌어져서 ‘그것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구나’ 간증할 수 있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찬양 : 찬송가 191(내가 매일 기쁘게) <1~3절>
❙합심기도
오늘 말씀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하는데요. ‘요즘 어떤 일로 우울하세요?’ 감사할 일 없어서 감사하지 못하십니까? 찬양이 나오질 않으세요? 여러분, 찬양이 능력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감사를 후불로 하지 마시고 선불로 해 보세요. “주님, 미리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절이나 송구영신예배 때만 감사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예배의 시간에 주님을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주님, 이 찬양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길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사모하는 넓은 길, 평탄한 길보다는 비록 좁은 길이더라도 주의 영이 함께 하는 그 길에서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어둠의 역사들이 있다면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울함이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찬양과 감사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치유하시고 회복하게 하실 줄 믿으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결단의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우울함이 찾아올 때 성령의 충만함으로 잘 이겨내고 찬양과 감사가 회복되길 소망하는 우리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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