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본 마음 (히 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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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주일새벽
제목: 상처 입은 치유자(헤아려 본 마음)
본문: 히브리서 2:11-18
찬송: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 도입
아이가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을 때 아이는 부모의 사랑이 믿어지고
그 안에서 평안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에 부모님께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훈계하는데, 아이는 자신을 억압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한다고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올바른 부모, 건강한 부모라면 아이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랑의 마음입니다.
자녀는 당시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를 향한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필요 때문에 아이를 훈계할지라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예레미야 29장 11절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아멘.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마음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했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에서 생각이라는 단어는 원어의 의미에 “계획”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목적과 목표는 재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평안하고, 미래와 희망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의 목적과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인 우리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도 사춘기의 자녀들처럼 이런 하나님의 뜻이 의심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벽시간에 담임 목사님을 통해 욥기서를 보고 있는데요.
욥의 삶에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하나님은 미래와 희망을 주려고 하는 것인가?
욥에 관심이 있고, 사랑하기는 하는 것인가 의심이 듭니다.
왜냐하면 정직하고 의롭고 또 믿음이 좋은 욥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의심이 들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일어나고,문제가 생길 때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찬송가 429장의 가사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그 다음 가사가 중요합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심이 들 때에 받은 복, 이미 주어진 은혜를 기억해 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은혜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일까요?
두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예수님은 우리를 편견 없이 안아주십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속죄하심을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본문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모든 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성경에서 인간에 대해 증언합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는 우리의 근원에 대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근원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게 하신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근원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 말씀입니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본질상 변화를 이루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1절 하반절을 보시면,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편견없이 않아주셨습니다.품어주셨습니다.
미국의 한 부자 동네의 영상이라며 올라온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일반인 유튜버가 부자 동네의 상황을 보여주겠다면 차를 타고 부자 동네에 들어가 주차를 해 놓고 서 있었습니다. 아무런 행동이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곳 주민 한 사람이 나와서 누구냐고 물으면 당장 그곳에서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불쾌한 어조로 마치 무엇인가 나쁜 사람을 보듯이 그를 대하며 거친 언사를 했습니다.
이유는 그는 자신의 동네 사람이 아니므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편견과 좋지 못한 시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어떤 부자나 어떤 권위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자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자신과 같은 근원으로 변화시키시고,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꺼이 우리를 형제라 불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편견없이 사랑으로 품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나아오면 믿음으로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을 편견없이 사랑으로 안아주셨습니다.
① 예수님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삭개오의 삶을 안아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세리라며 그를 거부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히 찾아와 말 걸어주셨고, 사람들의 비난에도 그의 집에 머물러 주셨습니다.
② 혈루병을 가졌던 부정한 여인을 삶을 안아주십니다.
③ 심지어는 부정한 나병환자가 고쳐달라고 할 때로 그를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를 고쳐주시는 방법은 조금 특별합니다.
마가복음 1장 40절 41절에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나병환자에게 접촉하는 것을 율법에 의하면 부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으라’하시는 말씀만으로 그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손을 대시고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합니다.
아무도 나병환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해 지기에 손을 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편견없이 안아주시는 예수님입니다.
편견없이 안아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며,
그 안아주시는 사랑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2) 두 번째 예수님은 우리를 종 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아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성경은 ‘죽음의 세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세력이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에는 “권능, 힘, 능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죽음이 힘이 세고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능력은 소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가지고 있었던 그 어떤 것도 죽음은 소멸시켜버립니다.
부도, 지식도, 권력도, 명예도 죽음 후에는 다른 사람에 손에 넘어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죽음의 힘을 잡고 사람을 두려움으로 위협합니다.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한 방송에서 이경규씨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자신의 나름대로 이를 규정하였습니다.
우울증은 죽고 싶은 병, 그리고 공황장애는 죽을 것 같은 병이라고 말합니다.
연예인이 방송 활동을 잘하다가 갑자기 공황장애로 방송을 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정형돈 씨도 그랬습니다. 방송을 잘 되고 어려움이 없는데요, 그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으니잘 하던 일도 할 수 없어 쉬게 되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마귀는 우리를 죽음에 두려움에 사로잡아, 마치 종처럼 우리를 끌고 다니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두려움과 두려움의 종노릇에서 우리를 구원하여주십니다.
벗어나게 하십니다.
❶ 사도행전 7장 54절 이하 스데반이 나옵니다.
그는 복음을 설교하고 사람들이 분이 나서 그를 성밖으로 던지고 돌을 던졌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픔에 사로잡히거나, 죽음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움에도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 충만하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나님께 기도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경은 그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스데반으로 하여금 결박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아픔과 죽음과 미움의 결박에서 풀어주어 자유케 하였습니다.
❷ 감리교와 성결교에 큰 영향을 준 웨슬리가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에 선교를 위해 갔다가 도중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이 얼마나 거세었는지 바닷물이 객실 창을 부수고 돛대까지 부러뜨릴 정도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웨슬리를 포함한 영국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모라비안 교도들은시편을 찬송하며, 기도하며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웨슬리는 이후 그들에게“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물었고, 그들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고백했습니다. 이후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교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그로 하여금 세상의 묶인 것들,
두려움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자유케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믿음의 확신 가운데 거하여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자유함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본문의 말씀 18절에 기록합니다.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아멘.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의 아픔과 내 마음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에 기계적이 공감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공감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우리처럼 이 땅에서 아픔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할 뿐만 아니라 성경은 능히 도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도울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3. 결론
우리를 도우시는 돕고자 하시는 그 예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분께 나아갈 때 예수님을 우리를 편견없이 안아주십니다.
우리를 세상의 묶인 것에서 풀어주십니다.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복과 승리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4. 기도 제목
1)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근원을 진노에서 축복의 자녀로 바꿔주셨습니다.
우리를 편견없이 안아주시고, 모든 결박을 풀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며 승리하는 주일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2) 주일 예배를 위해서, 말씀 전하실 담임 목사님을 위해서, 교육부서 각 예배와 블레싱 축제를 위해서 주여 세 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