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꿔야 아름답게 가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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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목요새벽--
제목: 가꿔야 아름답게 가꿔진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본문: 히브리서 2:1-4
찬송: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1. 도입
❶ 예전에 분재를 잘 하시던 권사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분재가 얼마나 에쁘고 멋이 있는지 분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찾아가 보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꽃이 필 때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쁘고 멋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꽃도 예쁘지만, 나무의 뿌리가 흙 위로 올라와 아름답게 자란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어느 날 분재하시던 권사님과 대화를 나눌 순간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분재를 어떻게 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시면서 하시는 말씀하셨습니다. 멋져 보이는 분재가 사실은 꽃집에서 2천 원 3천 원에 비닐 포트에 담아 파는 값싼 묘목이었다고 하셨습니다.그런데 그 나무에 마음을 쏟고 정성을 다하여 자라게 하니 아름다운 분재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가꾸니 아름다운 것이 되었습니다.
❷ 이 원리는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삶을 하찮게 여기고 마음을 쏟아 가꾸지 아니하면 메말라 버리고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일본어로 ‘은둔형 외톨이’라는 의미에 ‘히끼꼬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공간 집 안안에서만 나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을 말합니다.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은둔형 외톨이‘의 청년들이 있습니다.
2023년에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사회 활동이 현저히 줄어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힘든 ’고립 청년‘이 54만 명, 그리고 이들 둥 사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제한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은둔 청년이 2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합니다.
은둔형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실질, 취업의 어려움, 심리 정신적 어려움,인간관계의 어려움, 가족과의 갈등,학업 중단 진학 실패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그들에게 주어진 어려움이 작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이유로 삶에 마음을 쏟고 가꾸지 않으면 주어진 삶의 시간은 흘러가 버립니다. 가꾸지 않으면 가꿔지지 않았습니다.
’황영택‘이라 휠체어 성악가가 있습니다.
’장애를 딛고 희망을 노래하다‘라는 다큐 영상에 등장하는데요. 이 분은 본래 신체 건강한 정상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건설 경기가 좋을 무렵 포스코에 입사해 회사 생활도 있습니다. 그런데 퇴사 후 건설업의 종사하다가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판정받게 됩니다.당시 치료를 받을 때 허리가 잘린 것처럼 아파서 손에 잡히는 링거줄이나 링거병들을 마구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 순간에 받은 장애 판정은 그 삶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내를 보고, 자녀를 보면서 삶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살기 위해 테니스를 하고, 37세에는 수능을 봐서 성결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습니다.하반신 마비로 불안정한 호흡을 훈련하기 위해 배에 벨트를 묶고 연습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테니스 국가대표로, 강연가로, 성악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분의 아내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멋진 아빠, 멋진 남편이에요. 잘 살아줘서 고맙고, 잘 견뎌줘서 고맙고 아주 나쁜 선택을 안해서 고마워요.“
휠체어 성가가 황영택 씨에게도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을 가꾸니 아름답게 가꾸어 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는 아니지만 그분의 가족에게 아름다운 삶이었고, 그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사람에게도 그의 삶을 아름다운 삶입니다. 가꾸지 아름답게 가꿔졌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음을 쏟고 잘 가꾸면 아름답게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마음을 쏟지 않고 하찮게 여기면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의 믿음을 가꾸기 위해서는)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 대해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이 말은 이미 구원의 믿음을 가진 자라도 그 믿음을 잘 가꾸지 않으면, 세상에 흐름에 얼마든지 흘러 떠내려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세상 물결에 흘러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에덴동산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죄와 죄의 유혹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습니다.
아담과 하아와 죄에 빠진 이유는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수가 있고,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인정하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0절 이하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❶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은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다르다고 말하며, 금식과 십일조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죄가 없는 완전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❷ 그런데 세리의 기도는 멀리 서서 하늘을 처다보고 가슴을 치며 죄인이라고 회개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던 세리의 기도가 의롭다 인정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1서 1장 8절에서 9절을 보시면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하면,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스스로 속임이요.
민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믿음도 가꿔야 가꿔집니다.
부흥 집회기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많은 은혜를 받으신 줄 믿습니다.
부흥회 기간만 은혜 받고 우리의 믿음을 가꾸지 않는다면,
또 다시 우리의 믿음은 법의 믿음, 판단하면 정죄하는 믿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연약함을 인정하며 날마다 믿음을 가꾸어 가시어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을 이루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두 번째 (우리의 믿음을 가꾸기 위해서는) 들은 바를 더욱 굳건히 붙잡아야 합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아멘.
우리가 세상 물결에 흘러 떠내려 가지 않기 위해서 성경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들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한 구원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할 때 흘러 떠내가 가지 않게 됩니다.
복음에 집중할 때우리의 믿음은 세상 물결 속에서도 가꾸어 집니다.
‘귀신론’으로 이단으로 정죄 된 서울 성락교회 ‘김기동’씨가 있습니다.
이단으로 정죄 된 김기동씨의 주장은 “귀신은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 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자들이 자신의 명대로 살지 못하고 남은 기간 귀신으로 남아 활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건전한 개신교 단체에서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그 이유를 소개해 드리면
“김씨의 모든 사항의 근원과 출발은 귀신이다”입니다.
김기동씨가 주장하는 ‘귀신론’의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아니라,귀신의 고백을 기초로 하여 정립된 이론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김기동씨는 귀신을 쫓는사역을 하다가 귀신이 하는 말 “자신은 불신자의 사후 영‘, 누구의 가족이라는 말들을 믿고 그것을 이론으로 정립하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단으로 정죄를 받습니다.
이단으로 정죄 된 내용을 한 가지는 그의 주장은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기동 씨의 주장이이단으로정죄받게 된 이유는 들은 것,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유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유념하지 않기에 믿음에서 이탈해 버렸습니다.
믿음에서 이탈해 버렸습니다.
그 원인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들려주신 하나님 말씀,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굳건하게 붙잡지 않았기에흘러 떠내려갔습니다.
새로운 지식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친구와 함께 길을 걷는 중에 갑자기 벼락이 내리쳤습니다.
내리친 벼락이 루터와 함께 길을 가던 친한 친구에게 내리쳤고 친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겪은 후 루터는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수도사가 되고, 고행하고 자신을 매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노력으로도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며 복음을 깨닫게 되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루터의 삶을 변화시켰고 고뇌와 슬픔을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들은 것‘입니다.
1절에 ”유념하다“라는 단어는 원어의 의미에 ”듣다, 경청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루터는 다른 고행에 주의를 기울일 때 마음에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더욱 집중하고 기울일 때 구원을 얻었습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여기서 ’등한히 여기다‘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는 ”돌아보지 않다, 가볍게 여기다, 무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을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복음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얻는 구원을 무시하고,가볍게 여기는 자는 보응을 피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응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서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이요. 은혜 없이 살아가는 메마른 삶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마치는 날에는 영원한 멸망의 심판입니다.
3. 결론
복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잠시 잠깐의 행복감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의 행복감을 위해서는 이 땅에서 행복감을 주는 요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의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복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복음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게 되어 은혜의 삶을 살아갑니다.
복음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꿔가게 됩니다.
복음에 집중하고, 복음을 소중히 여김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믿음으로 가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