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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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31–40 (NKRV)
31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40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언약궤를 성전에 옮겼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고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오자 여호와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빽빽하게 성전을 가득 채웠다. 그 구름이 얼마나 있었는지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할 수조차 없었다. 이때 솔로몬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한다. 이렇게 기도를 한 이후 성전 앞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 축복을 한다.
이처럼 언약궤를 성전에 안치하는 것을 크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언약궤에 하나님께서 직접 앉으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기에 언약궤, 법궤, 은혜의 보좌 라고 표현한다.
그리고나서 솔로몬 왕이 성전 봉헌의 기도를 드린다. 그 내용이 22-53절까지 이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신 내용, 곧 “다윗 언약”의 핵심을 언급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왕조의 견고함과 영원한 보전을 약속하셨다.
31-32
이웃에게 범죄한 사람이 있는데, 증인이나 증거가 없을 경우에 그 겁죄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맹세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 없음을 증거하는 이들의 맹세를 하나님께서 직접 보시고 악한 자와 의로운 자를 판단하사,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는 이에게 그가 행한 악을 그대로 갚으심으로 그가 악인임을 증거해달라는 의미이다. 결국 본문에서 솔로몬은 맹세의 선악 판단을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절대 공의에 근거하여 신정 국가의 공의를 올바로 세우고자 하는 그의 확고하 신념을 보여준다.
33-34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군사적 열세나 정치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내려지는 징계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의 땅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는 기도는 그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 그 땅을 다시 회복시겨 주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땅은 단순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터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거주하였던 땅이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백성들이 죄로 인한 혈벌로 전쟁에서 패하여 그 땅을 잃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성전에서 기도할 경우 약속의 땅을 회복시키심으로 다시금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이룰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35-36
이번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때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는 지금 비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비가 안오면 좋다. 우리가 생각할 때 날씨가 좋다 라고 할 때 그려지는 이미지가 각각 있을텐데 아마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를 좋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렇게 생각하면 가까운 병원에… 물론 개인 취향이니깐 나도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리는 비를 보며 따뜻한 커피한잔을 즐길 수 있는 여유. 그러나 현실은 신발에 빗물이 들어가 찝찝한 것…
여튼 비가 오고 안오고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는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비는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거의 절대적이다. 아무리 좋은 땅이고 좋은 비료를 사용하고 좋은 빛이 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좋은 농작물을 기대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농작물이 존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가평에서 목회를 할 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상 권사님들이 비 내려야 하는데~ 하고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새벽기도회 운행을 하면 늘 권사님들이 하시는 이야기 중하나가 비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이처럼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비는 절대적이다.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비는 절대적인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 솔로몬왕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비는 중요하였다. 당시에 농작물이 있고 없고는 수입이 있고 없고 정도가 아니라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때에 맞게 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솔로몬이 기도하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을때에 비를 내리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단순히 비오지 않을 때 기도하면 비가 오게 해주세요~ 가 아니다.
오늘 솔로몬의 기도는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 비가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적인 징계의 결과로 비를 내리지 않으실 때를 말 하는 것이다. 그럴때 그래도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때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떠나 있어서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는 것이기에 우리가 지금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앞에 다시 회개 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용서의 표시로 다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37-40
네번재 간구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배신의 결과에 따라 하나님께서 내리실 수 있는 온갖 재앙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재앙의 원인을 깨닫고 회개하면 구원하실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다시말해 솔로몬은 지금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주님앞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올 때 용서해줄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다양하다. 그 모든 상황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특히 죄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죄인은 스스로 무죄와 유죄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죄와 무관한 심판자의 영역에 노형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용서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인의 자기 인식이다. 누가나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죄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가?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야 한다. 용서의 은혜는 저절로 내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죄를 용서 받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죄가 죄임을 깨닫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의 삶속에서 죄임을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 우리는 먼저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죄인지 알아야 회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인지 알아야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처럼 자신의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서 잘 못했다고 이야기 해라.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혼내면서 계속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가? 너 잘못했어! 안했어! 잘 못했어! 안했어! 이 말의 속 뜻은 무엇인지 아는가?
어서 잘 못했다고 해라.. 제발 빨리 잘못했다고 해라. 그러면 내가 다 용서해주마.
금요일 밤 U-23 아시안 컵,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있었다. 저녁 9:30에 시작해서 심야기도를 마친 첫째는 후반전이라도 보겠다며 전호진과 함께 전목사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12시가 다 되서 모든 경기가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기 전에 이안이를 혼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늦은 시간에 남의 집에 가면 안된다고 알려줘야지. 하면서 늦은 밤에 남의 집에 가면 안되는 이유를 주~욱 생각해놨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8살이 밤 12시가 다 되서 들어오는게 믿어지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안아 앞으로는 밤에 호진이 네 집에 가지마! 이랬더니 이안이의 반응이 뭔지 아는가? 아주 해맑게 “네”
이안이의 태도를 보면서 아… 나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가 들어날 때 다른 핑개되지 않고 그냥 잘 못했다고 고백해야겠구나. 이런 태도를 보여야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어쩌면 일상속에서 자신의 신앙의 위치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지금 내가 죄를 지은 것인지, 아닌지를 되돌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히 안좋은 일이 내게 있을 때, 그냥 재수 없었네.. 할 것이 아니라, 혹시 이것이 나의 죄로인해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하는 싸인이지는 않을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어려움이 우리의 죄의 결과는 아니다. 그러니깐 기도해보고 아니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죄라면 우리는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행위는 우리의 죄 사함의 목적도 있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을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일의 삶속에 이와같은 회개가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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