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의 은혜를 사모하라 2024 0426 출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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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출애굽기 13:1–10 (NKRV)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8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어제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의 은혜를 사모하라
출애굽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일을 기억할 것을 말함. 특별히 마지막 열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초태생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 말함.
출애굽기 13:2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거룩히 구별한다는 것은, 쓰고 남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을 위해 일부분을 떼어 하나님의 것으로 넘겨드리는 것임. 여기서 거룩히 구별한다는 것에 동사 ‘카다쉬’가 쓰였음. 하나님의 거룩을 이야기 할 때 쓰이는 형용사, 카도쉬. 이것을 동사형태로 쓰니까, 어떠한 것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것, 즉 하나님을 위해 구별시킨다는 것이다. 거룩히 구별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초태생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사실은 전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 우리가 헌금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 우리의 일부분을 떼어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모든 재정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임. 그래서 헌금생활은 늘 감사와 기쁨으로 해야 한다. 구별된 일부분에 마음을 뺏기면, 하나님의 것을 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십일조도 마찬가지. 10의 9를 주심에 감사하며, 모든 재정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손만 보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서운할 것인가. 부모가 좋아야지, 그 손에서 나오는 돈과 선물만 좋아하면 안 됨.
그리고 하나님은 출애굽한 사건을 잊지말고 기억하라고 명하심.
출애굽기 13:3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그날을 기념하여. 우리는 자꾸 은혜를 잊어버린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그 은혜의 감동이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게 된다. 출애굽 백성들도 그랬다. 홍해 바다를 마른 땅을 밟고 건넜고, 뒤에서 자신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들이 홍해 바다 속에 수장되는 모습을 경험했음. 큰 은혜. 그런데 홍해 바다를 가르신, 자신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목격했지만, 오늘 당장 광야에서 목이 마르니, 그 은혜를 잊고 모세를, 하나님을 원망하고 만다.
출애굽기 15:22–24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5장에서 그렇게 자신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16장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단지 3일의 광야길에 목이 말라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 광야의 땅을 실제로 걸어보면, 이 원망의 소리가 이해는 됨. 실제로는 30분만 걸어도 힘들고 물을 찾게 됨. 그러나 백성들의 모습은 기적을 경험한 자의 모습인가 싶음.
여기서 모세에게 원망했다는 표현. 원망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룬לון’ 밤을 지새다. 중얼거리다라는 뜻을 가짐. 즉, 그들이 불평, 불만의 감정을 밤을 세워가며 나타냈다는 뜻. 안타깝게도 이 단어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곳에 쓰였다. 먹을 것이 없고, 목이 마르는 상황은 분명하나,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정의와 선하심, 그의 능력에 대해 불신앙의 표현이었던 것.
실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다. 간교하고 변덕스러운 우리 인간의 속성에 반대로 나아가는 신앙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을 요구하셨다.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셨다. 출애굽기 13:9 “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손의 기호화 미간의 표를 삼고 율법을 날마다 입게 있게 하라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주의 은혜를 잊고 살지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새롭게 주시는 은혜, 오늘 나의 삶에 새롭게 주실 기적을 사모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은 기대하는 것이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이 하루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기억하라!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인도하셨다. 기억하라! 그 여호와께서 여전히 오늘도 그 강하신 손으로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입술이 늘 되는 말을 할 수 있게 하자.
어제의 은혜에 감사하자. 오늘의 은혜를 기대하자. 내일의 은혜를 믿음으로 고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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