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배반(막 14:66-72)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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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사건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54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예수님을 뒤따라와서 대제사장의 집 안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이후 55절부터 65절까지는 대제사장의 집 안에서 이뤄진 예수님에 대한 심문을 말씀하고요, 다시 66절부터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오늘 본문의 구조는 베드로-예수님-베드로 이야기를 소개함으로 예수님과 베드로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즉 당당하고 의연하게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과 반면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베드로를 차례로 보여줌을 통해서 심문 앞에서 반응하는 태도가 전혀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것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분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았지만, 이 순간 그 사실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택하셨음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를 부르신 근본적인 이유까지 부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어서 여종이 곁에 있는 자들에게 베드로도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이번에도 그는 부인합니다. 제자란 모름지기 예수님께 속한 사람인데, 베드로는 이것 마저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곁에 있던 사람들이 “네가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저들과 한패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억양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앞서 여종은 베드로에게 ‘당신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기에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은 곧 그도 예수님과 같은 지역 출신이요 같은 패거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오늘 본문 71절에서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했는지, 자신을 저주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당시 유대인들이 보통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보이기 위해, 만약 자기 말이 거짓이라면 내게 저주가 임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베드로는 이 관행에 따라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식으로 말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과 한패임을 적극 부인하기 위해 이런 저주를 스스로에게 한 것으로 볼때, 그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71절에서 베드로는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맹세합니다. 한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베드로가 이제는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 대제사장 집 안에서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당당히 밝히시고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지 못했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약하며 비겁한 사람이 되었음을 오늘 본문은 대조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자마자 닭이 두번째 울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습니다. 엎드려서 우는 베드로, 이것이 사실상 마가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이 장면이 베드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배반을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땅바닥에 엎드려 우는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회개 즉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참회의 눈물을 미리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부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또 다른 눈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즉 예수님은 엄격하게 무조건 우리를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베드로의 이 행동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냥 도망이라고 가면 되지 왜 굳이 대제사장의 집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왜 이 위험한 대제사장의 집까지 찾아갔을까요?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심문받으시는지, 어떤 처벌을 받으시는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가 처음에 예수님께 말했듯이 예수님과 함께 죽을 각오로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예수님과 한패로 몰리자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대제사장의 종들의 귀를 잘라버릴정도로 담대했던 그도 예수님이 눈앞에 사라지고 잡혀 있는 모습을 보게되자 고작 작은 여종의 말에 흔들리고 과민하게 반응하며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사람들의 지적에 부인하며 맹세까지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려고 하다가도, 세상 사람들의 말 한마디를 들으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에게 지적 당할까봐 예수믿는척 하지 않으려고, 또는 예수 믿는 것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과 배신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두려워하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담대하면 복음은 나를 통해서 전파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자기 죄를 회개한 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고 사랑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사랑해서 자기의 인생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이들을 통해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베드로처럼 부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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