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2024 0428 출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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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출애굽기 13:11–22 (NKRV)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 사상

앞서 13장 초반에 나왔던, 장자의 봉헌 규례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가축의 초태생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희생제물로 드려진다. 그리고 사람의 초태생은 모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대속물로 드려진다.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하게 되어 있음. 가축의 태에서 난 처음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 했는데, 왜 나귀는? 나귀는 부정한 동물로 인식됐다. 그래서 정결한 동물인 송아지나 어린 양이 그것을 대신하여 대속제물로 바쳐져야만 했음. 마찬가지로 사람의 초태생도 대속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 당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사람을 산 채로 제물로 드리는 일도 있었음. 대표적으로 몰렉 신에게 자녀들을 인신제사 드리는 것.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당시의 다른 신들과 달랐음. 그리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구별된 삶을 요구한 것임. 사람을 실제로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닌, 정결한 동물을 통해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셨음.
장자는 모든 탄생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장자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백성 전체가 몸과 마음을 거룩히 하여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장자는 대속, 즉 어떤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그의 생명을 보전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바친 효력도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할 수 없는 죄인들이 속량, 구원받을 수 있는 이유는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우리의 장자되였고, 어린 양되심으로 우리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셨다.
이사야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았음. 우리를 대신해서. 그로 인해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음. 대속의 은혜는 내가 치러야 할 대가를 우리 주님께서 지불하심에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면치 못할 자들임.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대속하였음. 우리는 원래 부정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정결하다고 칭함을 얻게 된 것.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가 큰 것이다.
복음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승리를 선포케 한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복음

하나님은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당신의 이 복음을 가르치라고 하셨음.
출애굽기 13:14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지금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보면, 이 교육이 어마무시할 정도로 철저하다. 성경이 공교육의 한 과목으로 채택되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성경에 나오는 절기들을 지금도 명절로 지키고 있다. 지난 주간은 유월절 기간이었다. 마침 우리의 본문. 유월절에는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여 누룩을 없애야 한다. 그래서 유월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정통 종교인 마을 근처를 가보면, 큰 쓰레기 통에 오래된 물건이나 집안을 청소하여 나온 것들을 태우는 연기가 자욱하다. 또 이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의 모든 가게들에서는 유월절에 먹을 수 없는 것들에 다 천을 뒤집어 씌워놓는다. 무교병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실제로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는 빵, 쿠키 등이 개발되어 있다. 성경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이 말을 말로써만 전하고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녀들이 몸으로 이것을 왜 하는지 깨닫게 하는 것. (물론 종교적 행위의 측면에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그 정신을 본받을 만 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신앙생활 할 때가 있다.

돌아갈 길을 차단하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면 지중해변을 따라서 곧장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을 피하고 시내 광야를 둘러서 가게 만드신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짧은 길인 해변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블레셋 사람을 만나 그들과의 전쟁을 피하고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걱정하셨다.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순종의 길을 우리가 봤을 때, 쉬운 길이 있고, 어려운 길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쉬운 길로 가지 않길 원하신다. 신앙생활 쉬운 길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쉬움의 정체는 타협이다.
아까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야기 했지만, 그들은 정통 유대 종교인들의 삶을 말한다. 그들은 옷도 다 똑같이 입고, 다같이 모여 살면서 신앙을 지키고자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교를 하나의 문화로 인식한다. 우리가 유교, 불교적인 사상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도 신앙생활을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예수의 피값으로 샀음. 그런데 우리는 그 은혜를 깨달아 앎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쉬운 길로 가려다가 안 되면 애굽으로 돌아가지 뭐, 하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갈 길은 없다고 못 박고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앞서 가신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우리 앞서 가신다.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당신께서 우리 앞서 길을 열어 가신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나의 길을 여전히 앞서서 열어가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다. 타협하고 싶고,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그럴 때 우리 앞에서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함.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 믿음의 눈을 열어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눈에 보이는 자극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성령께 간구하자.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 오늘도 나의 앞에서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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