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롬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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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롬 4:18-25)
아브라함의 믿음(롬 4:18-25)
아브라함의 믿음(롬 4:18-25)
'Sample'이라는 단어를 아실 것입니다. 우리말로 바꾼다면 '표본'입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 때, Sample은 앞으로 만들어질 동일한 물건의 표본이 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기존의 성공한 사례 Sample은 그 사업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은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믿음으로 의롭게 받은 원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할 구원 얻은 ‘믿음의 이상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기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1.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18上)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의 약속을 받았을 때, 나이는 최소 85세(사는 75세)였습니다. 정상적인 생리학적 상황에서 이 나이는 자녀를 기대할 수 없는 노인입니다.
요즘 40이 넘은 나이에 결혼한 여성들이 의학적 도움으로 임신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만, 80대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15장은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립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 온지도 무려 10여년이 흘러서 80대 중반이 되도록 대를 이을 아들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나마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가장 가까운 인척 조카 롯이 떠났고, 거기에 하나님은 차차선책이라 생각했던 엘레에셀이라는 신임하는 종도 그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상심의 도를 넘어서 완전히 절망하였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어깨를 다독이듯 말씀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상급이다! 반드시 네 몸에서 네 상속자가 나올 것이다!’(창 15:1, 4)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하나님의 이 약속은 지금의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황당한 말씀입니까? 과해도 지나치게 과합니다.
롯도 아니고, 엘리에셀도 아니고, 다 죽어가는 노부부가 저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본다니요.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의 반응입니다. 짧고 강하게 말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창 15:6)
아브라함이 자신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리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굳게 믿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주목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식 생길 가능성이 1도 없음’이라는 현상에 붙들리지 않고, ‘노부부에게 주어질 자식’이라는 결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믿음(18下)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약속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본문 18절 하반절은 아브라함의 비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8下)
나이 90을 바라보는 노인인 아브라함은 이제 비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그의 인생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비전은 우리가 말하는 소위 말하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그려낸 주관적인 희망과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근거한 소원; 하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과 약속을 따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자 하는 소원;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자신에게 많은 후손을 주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가나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더 크게는 그 후손을 통하여 오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비전이 아브라함의 소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비전이 아브라함의 소원이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합당한 비전(소원)을 가질 때에는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하는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하산하였을 때, 많은 무리가 예수께 놀라며 달려와 문안합니다.
군중들이 그토록 호들갑을 떨며 주님께 달려온 이유는 “말 못하게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한 아비” 때문입니다.
그 아비는 예수님이 산에 계신 동안, 나머지 제자들에게, 아들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달라 부탁했으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귀신은, 예수님 앞에서도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여,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너무나 다급한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 9:22)
이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그 아비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곧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9:24)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 당장도 귀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수시로 내던져지고, 그래도 좀 한다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고치려 했으나 실패한, 이 아이의 절망적인 상황에도...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 아비는 비전을 품습니다.
그래서 “곧 소리질러” 그 말씀을 듣자마자 즉시, 고함처럼 크게 그리고 계속적으로 고백합니다.
“내 아들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그 아비는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아들이 병에서 깨끗이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의 비전(소원)을 가슴에 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아브라함이 품었던 비전입니다. 나와 내 가정, 직장과 사업장을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19)
그래서 아브라함은 100세(정확하게는 99세)나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19)
여기서 ‘알고도’라는 단어는 여러 사본들에서 두 단어를 교차적으로 사용합니다..
우선 한 단어는 κατενόησεν(카테노에센)인데, 이는 ‘분명히 보았다’는 뜻 입니다.
또 다른 단어는 οὐ κατενόησεν(우카테노에센)으로, ‘보지 않았다, 무시했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현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자신의 연약함을 보지 않았다;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하여 좌절한 나머지 현실을 부정하거나 사실을 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너무 힘드니까... 아닐 거야! 잘 될 거야! 하는, 자기 암시, 현실 도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명확한 확신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20, 21)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22)고 바울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로 여겨진 것입니다(창 15:6).
물론 아브라함은 이 때 하나님을 ‘처음’ 믿은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행 7:2-4).
그 믿음이, 가던 길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아버지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유프라데강을 건너(강을 건넜다/히브리) 하나님을 따라 나서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로 여겨졌다”는 것은,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과 가나안 땅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런 믿음의 특성을 히브리서에서 설명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것’을 ‘객관적 실체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붙잡게’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게 합니다.
또한 믿음은 세상 철학이 말하는 이 땅에서는 절대 실현 불가능하기에 꿈이나 꾸고 죽어서나 얻을 수 있는 ‘허상’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절대 ‘보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때가 되지 않아 ‘아직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게 하고 소유하게 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증거를 붙잡는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믿음」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이 되어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지난주에 살펴 본 1절에서 17절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구원을 위하여 ‘일하지 않았다’ 허물 많고 연약한 ‘무할례시에도’ ‘믿음 때문에 의롭게 여겨졌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연약한 인생인데도 결코 엉망진창 형편없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의로 여겨지는 믿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역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세기 15:6의 이 기록은 “단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라고 말합니다(23-24).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말씀은 아브라함 때문만은 아니라, 또한 ‘의로 여김 받을 우리 때문에’ 기록된 것입니다.
4천년전의 아브라함이나 오늘날 우리는 동일한 ‘믿음의 원리’로 ‘의롭다 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24下)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25)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똑같이 믿는다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대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셔서’ ‘의롭게 여겨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며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주님을 끝까지 바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비전과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내 비전이 나의 바람과 기대로 그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가능합니다.
그래야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소망을 가지고 ‘아멘!’하며 믿을 수 있습니다. 한 주간 말씀의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도무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믿음은, 동일하게 우리의 믿음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