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주) 시73-28-28 이웃에게더가까이(남현-장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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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24.04.21 주일 남현교회 주일 낮예배
본 문 : 시73:28(구약 p.855)
제 목 : 이웃에게 더 가까이
찬 송 :
태 도 : 치열하게 생각하고,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seek, do, teach
한 문장 :
시편 73:28 (NKRV)
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지난 수요일에 정말 많은 성도가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김석균 목사님의 찬양과 간증과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건이 안 되어 오지 못하신 분은 남현교회 유튜브 채널에 들어오셔서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보실 때 집중하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더 가까이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축제 기간에 첫 번째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믿습니까?
세상에 그 어떤 것, 물질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사실을 지난주에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을 누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공예배 출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배에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총 42회의 예배를 함께 모여 올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근 못 해도.
두 번째는 이웃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받아서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새생명축제가 있습니다.
이웃에게 더 가까이 가서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체험한 신앙을 전하는 겁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이웃에게 더 가까이”라는 주제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번 “더 가까이 축제”의 주제 성구는 시편 73편 2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다 같이 암송하겠습니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편은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렇게 끝납니다.
제가 보니까요. 1절부터 27절까지 보면 등장인물은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나’라고 하는 시인이고요. 또 하나는 바로 악인들입니다.
나하고 악인들, 이렇게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1절부터 27절까지는 나와 악인, 그리고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28절에 가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 직접 나오지는 않아요. 간접적으로 나와요.
시인이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 말 속에 숨어 있어요.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겠습니다. 이건 어떤 사람이 전제된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전파하겠다는 겁니다. 누구겠습니까?
아직 주의 행적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안다고 해도 띄엄띄엄 아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주님에 대해 아예 까막눈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전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다짐으로 시편 73편이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시편 73편이 어떻게 시작됐었습니까?
왜 악인이 형통합니까? 이 질문으로 시작했죠.
악인이 너무 잘 되는 거예요. 악인이 돈도 잘 벌고, 승진도 잘하고, 자식들도 잘되고.
이러는 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작가가 쓴 책 가운데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이런 책이 있어요. 제목이 좀 도발적입니다.
여기에 보면 세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숨어 계시는가?
우리가 궁금해도 잘 질문하지 못하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시인도 이와 비슷한 질문은 던지고 있습니다.
왜 악인이 형통하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 분인가?
이 질문하고 비슷한 겁니다.
시편 73편은 악인이 형통한 것을 보고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하나님 때문에 미끄러진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는 내가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파하겠습니다.
이러면서 끝난단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고, 실망했던 시인이 마지막에서는 내가 그 하나님을 전파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도 ‘새생명축제’에 이 시인처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도 시인처럼 하나님을 전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막> 1.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시인에게 어떤 오해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정직하게 살면 그 사람은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보니까 악인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율배반적인 분이 아니신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처받았어요.
이 상처가 어떻게 치료됐는지, 오해가 어떻게 풀렸는지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도를 닦고 참선해서 깨달은 게 아니고. 철학 공부해서 깨달은 게 아니고.
(시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무엇할 때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면전에 섰을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갔을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갔을 때. 여러분, 그때 깨달아졌다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잖아요?
예배드릴 때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 열린다고요.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세요.
악인의 형통을 보는 눈이 열린다고요.
내 고통을 보는 눈이 열린다고요.
하나님이 악인의 형통을 내버려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을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라는 것. 이걸 알게 된 거예요.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기에도 보면 악인이 나오잖아요. 회개하지 않는 악인이 나와요.
하나님이 악인을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요. 진노를 쌓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름에 캐리비언 베이 같은 물놀이장에 가면요.
위에 이렇게 커다란 물통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물이 막 담기고 있거든요.
그러면요. 아이들이 그 밑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통에 물이 거의 다 차면요. 물통이 갑자기 뒤집어지면서 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스릴이 있어요.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런 것처럼 차곡차곡 하나님의 진노가 쌓인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니냐? 하나님이 못 보시는 것 아니냐?
아니에요. 그 물통에 물이 차가고 있는 거예요.
때가 되면 뒤집어진다는 거예요. 지금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거예요.
시인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심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전에는 입술이 댓 발 나왔어요. 하나님 뭐하시고 계시냐고.
그런데 이제 오해가 풀렸어요.
하나님은 불의를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오해가 풀린 거예요.
저는요. 본문의 시인처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어요.
교회에 나와요. 예배를 드려요. 설교에도 아멘 해요.
그러면서도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어요.
풀리지 않는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부부 사이에도 그런 일이 있잖아요?
같이 밥을 먹어요. 월급 받으면 아내에게 다 보내줘요. 한 이불 덮고 자요.
20년, 30년을 같이 살아요.
부부만큼 가까운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 사이에도 풀리지 않는 오해가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겉에서 보면 영락없이 부부예요. 그것도 잉꼬부부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아니에요.
쇼윈도우 부부예요. 부부 안에 오해가, 오해가 쌓이고 쌓였어요.
사랑은 다 고갈됐어요. 그래서 ‘황혼이혼’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식들 다 내보내고.
20년, 30년 넘게 산 부부가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서 이혼하는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이랑 못 살겠다는 거지요.
우리나라에 황혼이혼이 신혼 이혼보다 2배가 많다고 합니다.
외견상으로는 성도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에게 섭섭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이런 분의 오해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진실한 질문은 진실한 답을 가져다준다.”
여러분, 하나님께 진실하게 물어보세요.
시인처럼 진실하게 나가보세요. 이해 안 되는 것, 섭섭한 것 감추지 말고 말해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답을 해 주세요. 때를 따라서 진실한 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오해가 풀린 사람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가 있다면 그것이 다 풀리기를 축복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막> 2.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두 번째로 시인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시인이 하나님과 오해 풀린 정도로 머물러 있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가?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려고 하는 거구나.
오해가 풀렸어요. 거기서 멈춘 게 아니에요.
그걸 넘어서 더 깊은 관계로 나갔다는 거예요.
시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절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을 알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다. 알고 있었어요.
그런 지식에서 멈춘 게 아니에요. 오해를 푸는 데서 멈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정도에서 멈춘 것이 아니에요.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하나님과 오해가 풀리고 난 다음에 시인은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푸르른 하늘을 봤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입니다.
태양과 달과 별들이 박혀 있는 하늘입니다.
그 광활한 하늘을 보는데, 그 하늘에서 한 분을 발견하게 됐어요.
누굽니까?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주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땅도 참 넓습니다. 평야 뒤에 산이 있어요. 산 뒤에 강이 있어요. 강 뒤에 또 다른 산이 있어요. 그 뒤에 또 평야가 있어요.
이렇게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땅을 봤습니다.
그 광활한 땅을 보는데 또 한 분이 떠오르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어마어마한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땅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늘 위에 혼자 독야청청 계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땅 위에 혼자 유아독존 계신 것이 아니에요.
시인이 뭐라고 합니까?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이게 아닙니다.
땅에서는 주 밖에 사모할 이 없나이다. 이게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하늘에 충만하신 하나님, 땅에 가득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세요.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세요. 나와 관계를 맺는 분이세요.
시인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 외에 사모할 자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는 단어는 몹시 원하다, 기뻐하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신앙고백을 잘 정리한 문답서가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들어 보셨나요?
대요리문답은요. 장년 성도들 혹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답서예요.
소요리문답은요. 어린이들,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답서입니다.
여러분이 소요리문답 1문이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왜 존재합니까? 왜 삽니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을 겁니다.
그중에 제일 되는 목적, 첫 번째 목적이 뭐냐는 거예요.
그 답을 아십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즐거워한다는 것이 바로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요리문답의 근거 구절이 되는 것이 바로 시편 73:25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를 보세요.
하나님은 내가 가장 즐거워할 분이랍니다.
내가 가장 사모할 분이랍니다.
나는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만족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찬양 아시죠?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였네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였네
이게 지금 시인의 마음이에요.
하늘에서, 땅에서, 온 우주에서 나에게 참 만족을 주실 분, 내가 영원토록 즐거워할 분.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지금 시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건 없어도 괜찮아요. 부족해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인이 73편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아, 하늘을 보아라, 땅을 보아라, 우주를 보아라.
거기에 과연 무엇이 나에게 참 만족을 주는가? 참 기쁨을 주는가?
바로 하늘과 땅에 유일하게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이 없다면 당신의 삶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목마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아, 이 하나님을 만나라. 세상 사람들아, 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
여러분,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런 확신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기쁨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인 사람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 이 하나님을 만나면 좋고, 안 만나도 괜찮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내 삶에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깊은 관계를 맺고, 그래서 자신 있게 그 하나님을 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막> 3.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로 시인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무엇을 전파하겠다고 합니까?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주의 모든 행적.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파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인의 태도에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주님께서 하신 좋은 일만 전하겠다. 이게 아니에요.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시편 73편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안 들었어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악인을 형통하게 내버려 두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지금 시인은 그런 일까지도 전파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되든, 이해가 안 되든. 그 모든 일을 전하겠다고 해요.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좋은 것만 포장해서 말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냐?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결국에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종교개혁자 칼빈은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 주님, 주님의 손이 저를 깨뜨립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이 시인에게 해 주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시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은 시인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왜 왼손을 붙잡아주지 않고 오른손을 붙잡아 주셨을까요?
오른손을 붙잡는다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신이 왕을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는 걸 말합니다.
이사야 45장에 보면 하나님이 고레스왕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시인의 오른손을 붙잡아서 영광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시인은 하나님이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 일. 나를 인도하신 일,
나를 영접하신 일. 그걸 전파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세요.
지난주 수요일에 김석균 목사님이 오셔서 한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손은 쉼이 없네” 그 찬양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손이 나를 지켜주시네. 그 손이 나를 인도하시네.
그 손이 나를 도와주시네. 하나님의 손은 쉼이 없네.
그 손이 나를 만져주시네. 그 손이 나를 안아주시네.
그 손이 나를 보호하시네. 하나님의 손은 쉼이 없네.
하나님은 일하고 계세요. 쉬지 않고 일하고 계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문제 하나.
하나님이 하신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일까요?
우주를 창조하신 일일까요? 지금도 우주가 돌아가게 섭리하는 일일까요?
하나님의 일은 너무나 위대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은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일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일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일인 줄 믿습니다.
이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어요.
그래서 성경을 창조의 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섭리의 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구원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선포해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그중에 우리가 반드시 전해야 할 소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소식이에요. 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산토닌요에서 가족을 떠나서요.
눈까지 상해 가면서 김상식 선교사님이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몸이 상해 가면서 김진우 선교사님이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세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네 이웃에게 가까이 가서 이 복음을 전해라. 믿습니까?
남편에게 복음을 전해라.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라. 친구들에게, 직장 동료에게 복음을 전해라.
선교사의 “선”자가 무슨 “선”자입니까?
베풀(선) 이예요. ‘널리 편다’, ‘널리 알린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이 내가 전파하리이다. 그랬는데요.
바꾸어 말하면 제가 선교사로 살겠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선교사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선교사예요. 김상식 선교사님, 김진우 선교사님만 선교사가 아니예요. 제가 선교사고, 여러분이 선교사예요. 여러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보냄받은 선교사로 누구에게 가까이 가느냐,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느냐?
오늘 우리가 결단하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태신자라고 하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초신자, 불신자, 광신자. 이런 단어는 나오지만 태신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한글 프로그램에 태신자를 입력하면 맞춤법 오류라면서 빨간색 밑줄이 그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태신자는 교회에서 만들어 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왜 이 단어를 만들었을까요? 태신자는 무슨 뜻일까요?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를 태아라고 부릅니다.
그런 것처럼 영적으로 한 성도의 태에 품어진 사람을 태신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아기를 밴 엄마는 모든 촛점이 아기에게 맞추어집니다.
무엇이 아기에게 좋을까? 무엇을 먹어야 할까?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까?
아기에게 모든 것을 초집중합니다.
공예배출석운동과 새생명축제가 같이 가는 것은 참 의미가 있어요.
영적인 산모가 먼저 건강해져야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거예요.
예배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래서 산모가 건강해지면 태아도 건강해져요. 잘 출산할 수 있어요.
여러분, 더 가까이 축제 기간 동안 저와 여러분이 영적으로 튼튼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으로 튼튼해 지세요”
“태신자를 잘 품으세요. 태신자를 잘 출산하세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오해가 풀린 사람,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진 사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고 그 일이 자랑스러운 사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다 풀리기를 축복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더 깊어지기를 축복하고, 하나님 하신 일을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파하는 선교사의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태신자 작정 카드를 주보에서 꺼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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