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옆집도 맛있을까? / 살전 5:19-22 / 찬 5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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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도 이렇게 오후찬양예배에 나오신 우리 성도 여러분들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점심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금요일날 아침에 제가 설렁탕을 먹으려고 도선사거리 쪽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설렁탕이 먹기 싫어집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새로 생긴 한식뷔페집을 발견하곤 이 곳으로 들어갑니다. 쌀밥을 푸고, 반찬 4개 정도 담고, 불고기를 담고, 국까지 받아서 그렇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가격은 8천원이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만나홀 점심식사가 생각이 나는 것이죠. 지금 먹은 게 8천원이라면, 만나홀 점심식사는 만원에서 만오천 정도 하겠구나. 매주마다 나는 아주 값비싸고 균형이 잘 잡힌 그런 식사를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8천원 한식뷔페에서는 식사 마치고 믹스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놓여있는데, 믹스커피와는 비교가 안 되는 만나홀 커피도 자연스럽게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밥 먹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오늘은 무슨 메뉴가 나올까 궁금해하면서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수많은 맛집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만이 알고 있는 맛집들이 한 두군데는 있을 것입니다. 정말 맛있게 음식을 하는 집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뜩 옛날 티비 프로그램 중에서 맛집의 옆집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래도 맛집 옆에 있는 식당에 찾아가는 그런 방송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맛집의 옆집도 과연 맛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풀어보려고 하는 그러한 방송이었지요. 과연 맛집의 옆집도 맛이 있을까요?
한번은 연희동 칼국수 집에 가서 칼국수를 먹게 됩니다. 연희동 칼국수도 유명한 맛집이라고 합니다. 진한 칼국수 국물에 맛있는 면발이 들어있어서 인기가 많습니다. 한 건물이 다 연희동 칼국수 집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까지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같이 가서 먹었는데, 상대방은 굉장히 좋아하고,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저는 스타일이 이오칼국수처럼, 맑은 바지락칼국수를 좋아해서, 그냥 그랬습니다. 만두도 없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연희동 칼국수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하필이면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냥 묻지도 않고 일단 찾아가는 성격이라서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 그냥 갔던 것이죠.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닭갈비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닭갈비가 참 맛있었습니다. 칼국수를 못 먹었지만, 다행히 맛있는 닭갈비집을 발견해서 맛있게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맛집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것으로 생각 됩니다.
본론
본론
자 그렇다면, 성경 말씀에서도 과연 그러할까요? 성경 말씀 가운데 정말 유명한 말씀들이 많이 있지요. 이러한 유명한 성경 구절 옆에 있는 성경 구절들도 과연 맛이 있을까요? 오늘은 유명 성경 구절들 옆에 있는 성경 구절들을 같이 연구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굉장히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지요. 같이 한 번 읽어봅시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매우 유명한 성경 말씀이지요.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알법한 그러한 성경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맛있다고 먹고는 있는데, 마치 이런 것이죠. 정말 최고급 돼지고기가 있는데, 마치 그냥 생으로, 구워 먹지 않고 먹는 것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 5장 16-18절 말씀을 먹기는 먹는데, 제대로 그 맛을 모르고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잠시 후에 이 말씀도 나누는 시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제대로 살펴볼 말씀은, 바로 16-18절 말씀 바로 옆에 있는 바로 아래 있는 19-2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말씀입니다. 정말 유명한 맛집 옆에 있는 말씀이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위에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은 잘 먹고 있는데, 19-22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말씀은 조용해져버립니다. 이 말씀도 정말 우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영적인 음식인데, 다소 해석하는 게 어려움이 생기다 보니 조금 덜 접하고 덜 먹게 되는 것이죠. 성령, 예언은 가볍게 넘어가고,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버리라는 말씀도 그저 그냥 윤리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모습이 많다는 겁니다. 과연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정말 맛집의 옆집도 맛있는데, 이 말씀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정말 맛있는 우리의 영적인 밥이 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은 먼저 데살로니가전서가 어떤 책인지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쉽게 말해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쓰신 편지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하는 편지였다는 겁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들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오늘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그냥 이 편지를 쓴 게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다 알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쓴 편지이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사도행전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7장 1-2절입니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이 데살로니가교회는 놀랍게도 세 안식일만에 세워진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 안식일, 쉽게 말해 3주 정도 있었음에도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죠.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3주만에 세워졌지만, 굉장히 칭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 1장 6-8절 읽도록 하겠습니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이 3주 밖에 복음 못 전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재림에 대한 오해라는 문제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 믿음이 단단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받고,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그러한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곳에서 사역하고 있던 사도 바울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소문일까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복음을 제대로 받고, 예수님의 재림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재림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죠.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게 되실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퍼져갔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몇몇 성도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죽게 된 형제들을 보면서 슬퍼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식의 사상이 퍼져갔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성도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교회 가운데 수많은 재림에 대한 예언이 난무하게 됩니다. 예언을 보고 들었다고 말하는 수많은 성도들 때문에, 교회 강단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잘 받아들여서 믿음의 본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재림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과,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예수님보다 예수님의 재림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겁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말씀하여 주십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보면서 슬퍼하였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이죠.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여 오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이 날을 기대하면서 서로를 위로해라. 이렇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재림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시는 겁니다. 이어서 또 말씀하십니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중에서 몇몇은 재림의 때를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속히 재림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이 본 예언을 말하면서 머지않아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삶을 함부로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자신들의 할 일도 다 던져버리고, 마음대로 정욕을 따라 색욕을 따라 함부로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죠. 재림의 때는 알 수 없다. 그 날은 도둑과 같이 이르게 될 것이다.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렇게 분명하게 선포하여 주십니다.
본론 2
본론 2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유명한 말씀부터 제대로 읽어보도록 하죠. 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명령한 것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오해하면서 자신들의 할 일을 다 던져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러한 명령을 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붙잡고,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잃어버려서 기쁨이 사리자고, 기도가 멈추고, 감사가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다시 복음을 제대로 알려주고, 오해를 풀어주고, 다시 원래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해야 하는,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그 일을 다시 권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기도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과 멀어지면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다시 가까이하고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기쁨이 생기고, 기도가 나오고, 감사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시 복음을 돌아가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제 오늘의 핵심. 왜 사도 바울은 19-22절의 말씀은 쓰게 된 것일까요? 앞에 있었던 상황을 잘 이해하면 풀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멀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명령을 쓰게 된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19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한 것일까요? 성령의 사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과 예수님을 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 예수님을 온 열방 가운데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두 가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예수님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령의 사역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하는지 쓰고 있는 것이죠.
어떠한 성령의 사역입니까?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여기서 예언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그러한 예언으로 읽으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언은 말씀을 제대로 풀어내는 설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강단 앞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설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3주 밖에 못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을 풀어서 예언하여 주고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예언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예언을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의 복음을 부정하면서 자신들의 예언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예언들이 교회 강단에서 나와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예언의 난무로 인하여 교회가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재림에 대한 예언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구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수많은 예언들 중에서 항상 좋은 것을 취하여 들어야 한다. 수많은 예언들이 교회 안에서 넘쳐나고 있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좋은 것을 취하여 들으십시오. 이때 좋은 것은 뭐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런데 교회 가운데 수많은 예언들이 판을 쳤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 예언들이 나타났지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이러한 식의 예언들이 생겨났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무리 좋아보여도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아무리 듣기 좋아도,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이때 악은 윤리적인 악이 아니라, 예언을 통해서 생겨날 수 있는 잘못된 예언이나 예언에 대한 잘못된 해석, 잘못된 태도 등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다시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올바른 복음의 예언으로 돌아오길, 사도 바울이 목숨 걸고 전했던 복음의 예언을 멸시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면서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결론
결론
오늘날 이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큰 도전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언의 홍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의 홍수의 시대입니다. 정말 우리는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수많은 교회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성도들은 정말 수많은 설교의 홍수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겉으로 매우 좋아보입니다. 정말 멀리 가지 않아도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잘못된 설교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들 중에서 우리 집밥만 먹지 않고, 외식하는 성도들이 계실 것입니다. 가끔씩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듣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올바른 설교를 듣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수많은 설교가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올바른 설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다면, 한 곳, 최소 두 곳으로 줄여주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에게 또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의 친척 중에서 죽을 병에 걸려서 이제 3개월 밖에 살지 못하는 친척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이 친척이 자신에게 찾아와서, 이제 내가 3개월밖에 못 사는데, 설교 말씀 좀 듣고 싶다. 설교 말씀 듣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 이러한 친척이 있으면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교회를 추천하여 주겠습니까? 한 번 신중하게 잘 고민하여 보십시오. 구원이 있는, 생명이 있는 설교를 듣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유명한 교회 말씀보다 우리 예인교회 말씀이 더 생명력이 있다. 유명한 교회 설교 말씀 듣다가 자칫 잘못하면 지옥갈 수 있다 라고 저는 조심스럽게 조언합니다.
신학교 교수가 이렇게 학생들에게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 전도사님들, 매주마다 어린이들에게 설교하시는데, 매주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해주셔야 한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설교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매주마다 본문 가운데 예수님을 잘 이야기해 주십시오. 이렇게 조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 참된 예언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풀어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선포하는 설교 말씀이 참된 예언입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면서 밖에 나가서 외식하는 것을 좀 줄이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집밥을 이번 한 주동안에 여러 번 묵상해서 다시 먹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의 홍수 시대 가운데, 예언의 홍수 시대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이 필요한 자세는 다양한 설교 말씀을 먹어보는 게 아닙니다. 진짜 필요한 자세는 올바른 설교 말씀을 여러 번 듣는 것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입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면서 주일 말씀을 여러 번 묵상하여 듣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과 멀어져가서, 예수님을 버리고, 듣기 좋은, 설교 말씀에 현혹되었습니다. 아버지 회개하며 나아가오니,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주는 생명력이 있는 설교 말씀에 집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언의 홍수 시대 가운데, 참된 예언을 멸시하지 않고, 항상 좋은 것, 예수님을 취하여 듣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