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깊어질수록 /딤전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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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깊어질수록
디모데전서 1:12-20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은혜'라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는 '고맙게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의 뜻은 '기쁘다 혹은 기쁨'이란 뜻과, '선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은혜를 기쁨이라 말할 때,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것으로, 은혜의 내용을 기쁨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라 할 때는, 은혜받는 방법에 있어서 은혜를 값없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선명하게 깨달아지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5절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시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오늘 헌신하는 마리아 3, 4부와 성도들이 깨닫게되는 것들을 본문에서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은혜가 깊어질수록 무엇을 발견할까요? 함께 따라 하겠습니다. 사명을 발견한다!
본문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은 자기에게 직분을 맡기신 분이 예수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깊어질수록 바울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사명으로 알고 감당했습니다.
사명은 이 일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는 맡은 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물결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삶에 목표가 분명한 사람, 사명이 확실한 사람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삶에 환경이 만족하지 못할지라도 분명한 사명감 때문에 환경을 극복하고, 보람을 찾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예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은 일일지라도 모두 감사하며 즐거움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 죄수의 몸으로 갇혀 쇠사슬에 매여 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은 자신이 고난에 처한 모든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명완수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실망케 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모든 일들을 사명을 이루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은혜가 깊어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라는 사명감에 불탔던 바울은 자기 사명에 대해서 사도행전 20장 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신앙인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교훈은 바로 인생의 마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성경 속에는 신앙생활의 근본이 바로 마음을 지키는 일임을 여러 사람,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요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대개가 생활의 문제보다는 그 생활의 근본이 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의 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한 후에 가장 먼저 받는 보상은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에 채워 주시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대부분은 인생의 마음에만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 감사, 위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도 다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복입니다. 천국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복이요 천국이 너희 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의 주인공은 언제나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 드리느냐 인간의 것을 받아 드리느냐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항상 인간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성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단순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것을 받아 드리면 단순합니다. 이것을 받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인생은 스스로를 복잡한 문제 속에 던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명자가 단순하게 사는 이유는 삶의 방법이 단 하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 이외에는 생각지 않기 때문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절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절대로 곁길로 가지도 않습니다.
오늘 헌신하시는 마리아 3, 4부와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더욱 받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며 성실하게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은혜가 깊어질수록 함께 따라 하겠습니다. 낮은 자리에 선다.
격언 중에 "얻었는가 싶으면 그 순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겸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겸손은 자기중심적인 태도, 이기적인 태도와는 정반대 되는 마음가짐입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돌보고 돕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께 있는 다른 사람의 필요와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마음이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사용된 겸손하니의 타이페이노스(ταπεινός)의 원 뜻을 보게되면 “비천한, 낮은”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리에 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무조건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보고 겸손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무조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비굴함과 겸손함은 분명히 다릅니다. 겸손한 사람은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를 상관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제자들이 서로 섬기기를 망설일 때,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의 본을 따라 행하는데 필요한 힘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오늘도 겸손히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하늘 문으로 향한 통로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많이 안다고 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스스로가 철저하게 높아짐의 법칙을 적용받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상석에 앉기를 즐겨하고 큰길 대로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자기들의 생각이요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고 했고, 잠언 18장 12절에는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 고 말씀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는 사람은 철저하게 낮아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고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며 은혜가 깊어갈수록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더욱 낮추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본래 태생이 바리새인인지라 철저하게 자신을 높이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풍성하신 은혜 속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철저하게 낮아지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15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함께 15절을 읽겠습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반절에 자신을 죄인 중의 내가 괴수니라 고백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되어 더욱 낮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믿음이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이처럼 철저하게 낮아지는 자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낮아지기 위해서 과거 자신을 높이던 육체의 자랑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15절 중반부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광의 보좌에서부터 낮아지셔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진 존재가 되셨습니다.
때로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신 놀라운 사랑으로 인해 현재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 낮아지기는커녕 도리어 바리새인처럼 높아지려고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고, 남을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기보다는 나보다 남을 깎아 내리려고, 하는 나쁜 옛사람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은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믿음의 사람은 자신은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10편 17절에 ((시 10: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에 하나님께서는 은혜 안에 낮아지는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시편 147편 6절에 ((시 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겸손한 사람을 붙들어 주시며, 이사야 29장 19절에 ((사 29: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그 마음에 기쁨이 넘쳐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낮아지는 겸손한 사람을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져 갈수록 낮은 자리에 서기를 기뻐하시어 하나님이 높여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은혜가 깊어질수록 함께 따라하시겠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된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전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믿는 자들은 성경에 기초하여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자녀 된 존재로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못하는 말씀 묵상과 성경 공부는 위선적인 신앙을 만들 염려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지탄을 받은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말씀을 많이 알기만 알았지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고 성경을 많이 알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은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말씀을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커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사도바울은 인생을 이렇게 결산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 사도는 신앙생활을 뒤돌아보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것에 대해 승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란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싸움은 안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은 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이웃의 생명을 해치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과의 싸움이요, 세상의 악들과의 싸움이요,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내적인 싸움이며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그 싸움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밖에서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늘 승리하시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헌신하는 마리아 3,4부와 성도 여러분!
한 때는 포악한 핍박자요, 교만 덩어리였던 바리새인 바울을 예수님은 은혜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은혜가 깊어질수록 그의 신앙적인 태도도 변화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도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분명한 사명감을 가지고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자기 자신을 낮추며 겸손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은혜가 깊어질수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신앙인으로 보다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헌신하는 마리아 3,4부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깊어짐으로 하나님 앞에서 보다 아름다운 삶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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