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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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9:28-33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
2024. 4. 1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10개의 이방나라들에 대한 예언 가운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게달과 하솔에 대한 예언입니다.
게달과 하솔은 사실 별로 그렇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에요. 게달은 아브라함의 손자인데요. 아브라함의 첫번째 아들인 이스마엘의 아들입니다.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이에요. 그 아들의 자손입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게달 자손은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고, 유목생활을 하면서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을 길러서 파는 민족이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북쪽 사막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옮겨다니면서 생활을 한 것이죠.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하는 하솔은 게달과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지역의 작은 민족 국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성경에 다른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정보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게달과 하솔 두 나라를 가리켜서 “동방 자손들”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으로 봐서, 두 나라가 굉장히 밀접한 관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 오늘 본문 28절을 같이 봐 볼까요? 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아멘.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여기서 너희는 누구인가 하면, 바벨론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명령하시는 거예요. 너희는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멸망시키라는 것이죠.
특별히 동방 자손들을 멸망시키라고 하시는데, 동방 자손은 요단강 동편에 사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지역과 이라크 서부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사막지대에 사는 민족들이에요. 사사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파종하기만 하면 동방 사람들이 와서 양식과 가축을 다 빼앗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동방의 사막지대에 사는 민족들이 파종하는 때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와서 약탈을 해갔어요.
이처럼 동방 자손들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다가 때만 되면 와서 약탈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강도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황폐하게 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동방 자손들 가운데 특별히 게달과 하솔 두 민족을 콕 찝으셨어요. 아마도 이 두 민족이 유독 심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두 민족을 특별히 언급을 하시는 것이죠.
자, 본문으로 다시 넘어가서, 2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29절 시작,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아멘.
지금 이 말씀은 바벨론이 게달과 하솔을 황폐화시키고 그들에게서 빼앗는 재산의 목록입니다. 먼저 장막이 나오는데요. 장막은 유목민족들의 집이죠. 그래서 장막은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또 양은 게달과 하솔의 특산품이에요. 주로 양을 팔아서 돈을 법니다. 그리고 양에게서 양젖을 얻고 고기도 얻죠. 양으로 돈도 벌고 양식도 얻는 겁니다.
그리고 휘장은 장막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커다란 천입니다. 이게 있어야 장막을 만들 수가 있어요. 또 기구는 그릇을 비롯해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낙타는 이동수단이에요. 사막을 걸어다닐 수가 없죠. 낙타를 타고 가야 돼요. 또 낙타가 있어야 짐을 옮길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에 29절에 나오는 것들은 게달과 하솔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모든 것입니다. 이 중에 하나만 없어도 생활이 어려운데, 이것을 다 빼앗아 가는 겁니다. 이는 곧 죽음이에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29절 마지막에,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고 외치는 겁니다. 다 빼앗겨버리고, 더이상 살 수가 없는 두려움에 갇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밑에 30절에 보면, 이제는 하나님이 하솔 주민들을 향해서 명령을 하십니다. 총 세 가지 명령을 하시는데요. 3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아멘.
하나님의 세 가지 명령이 무엇입니까? “도망하라, 멀리 가라, 깊은 곳에 살라” 이 세 가지죠. 이 명령들은 모두 도망치라는 의미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도망쳐라. 멀리 가라. 그리고 깊은 곳에 숨어서 살아라.
하솔 주민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정말로 도망치라는 뜻으로 하시는 명령이 아니에요. 이것은 아무리 그렇게 도망쳐도 절대로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봐라, 멀리 갈 수 있으면 멀리 가 봐라, 깊은 곳에 가서 살아봐라.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너희는 반드시 멸망한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밑에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번에는 바벨론을 향해서 명령을 하셔요. 하솔에게는 도망치라고 하셔놓고, 바로 밑에서 바벨론에게 하솔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1절에 보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바벨론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시는데, 누구를 공격하라고 하십니까?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고 하시죠. 게달이나 하솔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유목민족입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축들을 데리고 떠돌아다니는 민족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성문도 없고 문빗장도 없죠.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장막을 치고 살아요.
그런데 그런 민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하면, 고요하고도 평안한 삶을 살고 있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침략해 오지도 않는 그런 평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저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어요. 부족함이 없고, 평안하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만해요. 그래서 때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략하고 약탈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심판이 임합니다. 이스라엘의 것을 빼앗던 저들이 이제는 반대로 자기 것을 다 빼앗기고 두려움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그런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밑에 32절에 보면, 그들이 당하는 심판이 나오는데요. 3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게달과 하솔의 낙타들이 빼앗기는 노략물이 되고, 많은 가축이 탈취를 당합니다. 또 살쩍을 깎는 자들이 사면에 흩어져요. 여기서 살쩍은 귀 옆에 머리털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통 ‘구레나룻’이라고 하죠. 이 머리털을 짧게 깎는 거예요. 보통 아랍 유목민들이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자르는데, 게달과 하솔의 사람들이 머리를 그렇게 잘랐던 거죠. 그 사람들이 사면에 흩어져요. 그리고 여러 곳에서 재난이 옵니다. 이것이 게달과 하솔에 임하는 심판이에요.
그리고 그 결과가 33절인데요. 33절에 보니까,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하솔이 멸망을 하고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그 땅이 무엇의 거처가 됩니까? 큰 뱀의 거처가 되죠. 사람이 살던 곳이 이제는 짐승이 와서 사는 땅이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큰 뱀”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큰 뱀이 아니라 “승냥이”로 번역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 말이 히브리어로 “탄님”이라는 말인데, 예레미야서 곳곳에 탄님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거기에는 전부 “승냥이”로 번역을 했어요.
하나만 찾아보자면, 예레미야 10장 22절에 탄님이 나오는데요. 예레미야 10장 22절에 보니까,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유다 성업들을 황폐하게 하여 승냥이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똑같이 탄님인데, 10장에서는 “승냥이”로 번역을 했어요. 이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9장 11절, 14장 6절, 51장 37절, 전부 다 승냥이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것만이 아니라, 욥기, 시편, 이사야, 미가, 말라기. 다른 성경에도 마찬가지예요. 전부다 승냥이, 혹은 들개, 혹은 이리로 번역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49장 본문에서만 “큰 뱀”으로 번역을 한 겁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한 것은 아니고, 킹제임스버전의 번역을 따라서 “큰 뱀”이라고 한 겁니다. 아무래도 킹제임스버전이 권위 있는 번역본이기 때문에, 킹제임스버전이 뱀이라고 하니까, 그대로 따라서 한 거죠.
하지만 앞에서는 계속 승냥이로 번역을 해놓고, 여기서만 큰 뱀으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생뚱맞아요. 킹제임스버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모두 “승냥이”로 번역을 합니다. 영어로 하면 “쟈칼”이죠. 쟈칼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그래서 저 역시도 이것은 큰 뱀이 아니라, 승냥이로 번역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뱀이면 어떻고 승냥이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 게달과 하솔의 땅에 사람은 떠나 버리고 짐승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본래는 고요하고 평안하고, 성문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던 그 땅에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재산도 뺏기고, 가축도 뺏기고, 목숨도 뺏기고, 사는 땅까지 다 빼앗겨 버리는 겁니다. 아까 예레미야 10장 22절 말씀에, 유다 성읍들이 황폐하게 되어 승냥이의 거처가 되는 것처럼, 게달과 하솔의 땅도 똑같이 승냥이의 거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게달과 하솔의 결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어요. 아무리 풍요롭고, 평안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습니다. 순식간에 무너져요. 오직 하나님 품에 거할 때만이 참된 평안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거할 곳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아까 우리가 찬양한 것처럼, 영생을 누리며 어디에 살아요? 주 안에.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사릴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곳이야 말로 고요하고 평안하고, 풍요로운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성문도 필요 없고 문빗장도 필요 없어요. 오직 순종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내일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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