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섹에 대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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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49:23-27
“다메섹에 대한 말씀”
2024. 4. 1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다메섹에 대한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10개의 이방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 가운데, 여섯번째로 다메섹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은 사실 나라가 아니에요. 다메섹은 아람 왕국에 속한 일개 도시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메섹을 심판의 대상으로서 오늘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다메섹이 아람을 대표하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였어요. 그리고 수많은 상인들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또 전략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아람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보다 북쪽에, 높은 고원지대에 있습니다. 아람이라는 이름의 뜻이 “높은 땅”이라는 뜻이에요. 전체적으로 지대가 높습니다. 이 지역을 다른 이름으로 “수리아”라고 불러요. 아람보다는 수리아라는 이름이 우리에게는 좀 더 익숙할 겁니다.
아람, 또는 수리아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다른 이방 나라들처럼 이스라엘과 계속해서 분쟁이 있던 나랍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스라엘에 지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주전 732년에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가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인데요. 북이스라엘에서는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을 하고, 남유다에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을 하던 시깁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이 기록된 때로부터 약 150년 전입니다. 이때 다메섹이 한번 멸망을 했어요. 그리고 12년 뒤, 720년에 하맛과 아르밧이 멸망을 당합니다. 다메섹과 하맛과 아르밧, 이 세 도시가 앗수르에 멸망을 당했는데, 오늘 본문에 그 이름이 나오죠. 오늘 본문 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아멘.
다메섹, 하맛, 아르밧. 이 세 도시는 아람을 대표하는 도시들이에요. 그리고 앗수르에 멸망을 당한 도시들입니다. 그 세 도시가 오늘 본문에 등장을 했어요. 왜 이미 멸망한 도시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가 하면, 이 도시들이 비록 앗수르에 멸망을 당했어도 완전히 명맥이 끊기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서 아람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라가 쇠퇴하긴 했지만, 아직 도시가 남아 있어요. 그리고 그 남은 사람들이 그 뒤로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할 때 아람 군대가 같이 쳐들어와요.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할 때 같이 동참한 나라들이 있죠. 세 개의 나라가 동참하는데, 바로 모압과 암몬과 아람입니다. 이 세 나라가 바벨론을 도와서 남유다를 침공해요. 이 침공으로 인해서 1차 바벨론 유수가 발생합니다. 이때 다니엘을 비롯해서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갔어요.
하나님께서 아람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오랜시간 괴롭히고, 심지어 바벨론을 도와서 침략하고 파괴한 것.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심판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예레미야를 통해 그 심판을 예언하셔요. 앗수르에 한번 멸망을 당했던 아람의 도시들이 지금 다시 한번 멸망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이상 살아있지 못하고 완전히 끝나는 멸망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것을 “수치를 당한”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아람의 도시들이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하는 바람에 그들이 수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흉한 소문은 무엇인가 하면, 무서운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죠. 바벨론이 쳐들어온다는 흉한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낙담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여 수치를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게” 되는 거예요. “바닷가에서 비틀거린다”는 말은 마치 바다 물결이 바람에 요동치듯이 백성들이 두려워서 요동친다는 말입니다. 아람은 바다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저 멀리 떨어진 바다와 같이 그들이 요동을 쳐요. 너무나 두려워서.
밑에 24절에도 보면,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24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다메섹이 바벨론을 피해서 달아나려 해도 붙잡혀서 달아나지를 못해요. 그런데 무엇에 붙잡힙니까? 떨림에 붙잡히죠. 이 떨림은 히브리어로 “레테트”라는 말인데, 이 말은 “갑작스러운 공포” 라는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공포. 바벨론이 쳐들어오니까 너무나 무서워서 바짝 얼어버린 거죠. 사람을 갑자기 놀래키면, 깜짝 놀라서 몸이 경직되는 것처럼. 누가 붙잡은 것도 아닌데, 자기들 스스로 몸이 얼어가지고 달아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만큼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겁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해산하는 여인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과 슬픔에 압도당해서 꼼짝못하는 그런 상태가 된 겁니다.
자, 그러면서 밑에 2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람의 멸망에 대해 탄식을 하시는데요. 25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25절 시작,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아멘.
다메섹은 본래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찬송의 성읍”이라고 불리던 도시였습니다. 웅장하고, 풍요롭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훌륭한 도시였어요. “나의 즐거운 성읍”도 마찬가집니다. 실제로 다메섹이 “찬송의 성읍” 또는, “나의 즐거운 성읍”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졌어요.
그런데 그런 아름다웠던 성읍들이 어떻게 됩니까? 버린 것이 되어버려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탄식은 안타까워서 하시는 탄식이 아니에요. 이것은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도시라 할지라도, 반드시 심판의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진노의 탄식입니다.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이런 말이에요. “야, 너 좀 잘나간다고 그렇게 교만하지마. 그래봤자, 하나님이 버리시면 다 끝이야.” 이런 말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찬송의 성읍이라고 불리면 뭐 합니까? 하나님이 버리시면 끝입니다. 수치를 당하고,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고통을 당해요.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명예가 있고, 육신이 건강하고, 자녀가 잘 되고.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문젭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끝나는 거예요. 그 손에 붙들려 있어야만이 사는 것입니다. 버림 받으면 아람처럼 되는 거예요. 26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절에,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아멘.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으니까, 그 찬송의 성읍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세요. 장정들은 거리에 엎드러지고 모든 군사가 멸절되고, 성벽이 불타고 궁전이 불탑니다. 이것이 버림받은 자의 결말입니다. 완전한 멸망이에요. 실제로 아람은 바벨론에 멸망당한 뒤로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해요. 한때 찬란했던 나라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그 손에서 버림받는 일이 없도록, 그 크신 손에, 그 크신 팔에 안겨서, 그 안에서 기뻐하고, 그 안에서 찬송하며,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서, 흉한 소문이 아니라, 기쁨의 소식, 놀라운 응답의 소식을 들으며 복된 하루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