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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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7:1-7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2024. 3. 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이 담겨 있는 단락입니다. 예레미야 46장부터 51장까지 총 10개의 나라에 대한 심판이 나오는데, 첫번째가 애굽이었고, 두 번째가 블레셋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블레셋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요. 창세기 9장에 보면, 대홍수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당에 퍼지게 되죠.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그 중에 둘째 아들인 함의 자손이 블레셋입니다. 대수로 따지면, 블레셋은 노아의 5대손이에요.
그리고 노아의 첫째 아들인 셈에게서는 아브람이 나와요. 아브람은 노아의 11대손. 유다가 아브람의 자손이죠.
그러니까 블레셋이나 유다나 뿌리는 하납니다. 노아가 뿌리예요.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 뿌리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원수가 되고 말았어요. 골리앗이 바로 블레셋 사람 아닙니까?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했잖아요.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블레셋과 원수로 지냈어요. 그런데 마침내 그들이 멸망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내용인데요. 먼저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블레셋에 대한 예언이 임했는데, 언제 임했습니까?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임했죠. 바로는 애굽의 왕입니다. 그리고 가사는 블레셋의 도시예요. 블레셋은 다섯 개의 도시가 연합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각 도시마다 왕들이 따로 있어요.
이 중에서 “가사” 라고 하는 도시를 바로가 치려고 했다는 것인데요.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가사를 쳤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에도 없고, 애굽 역사서에도 없습니다. 바로가 실제로 가사를 공격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계획만 세웠는지, 알 수가 없어요. 기록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짐작하기로는, 블레셋이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곳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사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리 가사를 쳐서 전초기지로 만든 다음에 여기서 바벨론의 침공을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어떤 말씀이 임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절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아멘.
블레셋에 대한 멸망의 말씀인데요.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가사 성읍과 거기 사는 자들을 휩쓸어버릴 것이라는 말씀이에요.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여기서 북쪽에서 일어나는 물은 당연히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바벨론 군대가 강물처럼 달려와서 가사를 휩쓴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애굽의 바로 왕이 가사를 실제로 공격했는지 안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만약에 공격했다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바벨론이 강물처럼 휩쓸어버리잖아요.
바로 왕이 아무리 가사를 먹으려고 해도 바벨론이 휩쓸어버리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가락만 빨고 돌아가야죠.
그만큼 바벨론의 힘이 강력합니다. 역사에서에는 블레셋이 기원전 604년에서 603년 사이에 멸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때는 갈그미스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입니다. 바벨론과 애굽이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애굽이 패배했죠. 바로 이 전투가 끝나고 1년이 지난 뒤에 바벨론이 블레셋을 멸망시키는 거예요.
갈그미스 전투 이후에 애굽은 가사를 어떻게 한번 쳐서 점령해 볼까, 하고 있을 때, 바벨론이 강물처럼 내려와서 블레셋 5개 도시 전체를 휩쓸어버린 겁니다. 너무나 바벨론이 강력해서 어떻게 저항을 할 수도 없어요. 말 그대로 강물처럼, 천재지변처럼 쳐들어오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감히 저항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밑에 3절도 봐 볼까요? 3절에 보니까,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바벨론 군대가 어찌나 무섭게 쳐들어오는지,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자녀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나도 죽게 되니까 자기 자녀를 버린 겁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자식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로, 그 정도로 처참한 지경이었다는 거예요.
또 밑에 4절에 보니까,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끊어 버린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라트”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제거하다, 죽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동맹군을 다 제거해 버린다는 것이죠. 특히 두로와 시돈을 언급하시는데, 두로와 시돈이 블레셋과 위치적으로 매우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두로와 시돈을 제거하신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보면, 두로와 시돈은 블레셋보다 뒤에 멸망을 합니다. 블레셋이 멸망하고 나서 10년 뒤에 두로가 멸망하고, 다시 7년 뒤에 시돈이 멸망해요. 블레셋 멸망 이후에 17년 안에 두로와 시돈이 다 멸망을 하는 겁니다. 누구에게요? 바벨론에게.
바벨론이 아주 파괴왕이에요. 모조리 다 파괴하고 멸망을 시킵니다. 그런데 4절 끝에 보면, 바벨론이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들까지도 유린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죠. 여기서 갑돌 섬은 본래 블레셋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이 갈대아 우르잖아요. 그런데 거기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정착을 했어요. 마찬가지로 블레셋 사람들은 고향이 갑돌 섬입니다. 갑돌 섬에서 와서 지금 블레셋 땅에 정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갑돌 섬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살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 사람들까지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겁니다. 4절 끝에 “유린하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솨다드”라는 말인데, 이 말은 “완전히 말살하다” 라는 뜻입니다. 완전히 말살하다. 블레셋을 아주 그냥 완전히 말살해버리는 겁니다.
또 밑에 5절을 보면,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고 말씀해요. 가사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도시들이죠. 가사는 대머리가 됐어요. 고대 근동에서는 슬픔을 당하면 머리를 깎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래서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당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또 뒤에는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기 몸을 벤다고 말씀하는데요. 이것 역시도 고대 근동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슬프고 절망스러울 때 자해를 해요. 자기 몸을 칼로 긋는 거죠.
블레셋 사람들이 너무나 끔찍한 일을 겪게 되니까 자기 머리를 밀고, 자기 몸을 자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슬픔이 사라지겠습니까? 바벨론이 끝까지 추적해서 말살을 시켜버리는데.
그래서 밑에 6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탄식을 하면서 부르짖어요. 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6절 시작,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짖습니까?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바벨론 군대를 여호와의 칼이라고 부르고 있죠.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벌로,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를 우리에게 보내셨구나. 하고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벨론 군대를 여호와의 칼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호와의 칼에게 제발 좀 가만히 쉬라고 간청을 합니다.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청이 들어가 있어요. 들어가서, 가만히 있으면서, 쉴지어다. 그만큼 간절한 겁니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이 침략을 멈춰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멈춰 달란다고 멈춰 줍니까? 안 멈춰 줘요. 7절에, 뭐라고 답변을 합니까? 7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셨는데, 어떻게 멈추겠느냐는 말이에요.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오늘 말씀 제목이죠. 아무리 나에게 애원을 하고 부탁을 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된다는 겁니다.
자, 그런데 어떤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이미 정하셨어요. 이것을 바꿀 수가 없는 겁니다.
가사로부터 시작해서, 아스글론, 갑돌 섬, 해변, 온 땅을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에요. 누구도 막을 수가 없고, 대항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합니다. 긴 세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조롱했던 블레셋이 마침내 여호와의 칼에 의해서 말살을 당하잖아요. 이 심판의 때가 오면, 그때는 애원을 하고 간절히 부르짖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누구도 그 진노의 칼을 멈출 수가 없어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때가 있어요. 그 때가 오기 전에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주님께로 돌이켜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군식을 앞두고 있는데, 진군식이 무엇입니까? 군대가 힘차게 전진할 때 치르는 의식이에요. 세상을 향하여서 전도하러 나가는 우리 전도대가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천국 잔치를 하는 겁니다.
임박한 진노가 임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진노를 피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이것은 전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떻게 전도를 하지 않고 잠잠하며 쉬겠느냐? 또 전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그대로 적용이 돼요.
어떻게 예배하지 않고 잠잠하며 쉬겠느냐? 어떻게 봉사하지 않고 잠잠하며 쉬겠느냐?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는 지키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잠잠하지 말고, 쉬지 말고, 충성되이 지키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