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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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9:7-22
“에서의 재난”
2024. 4. 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에서의 재난”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에돔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에돔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선지서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오바댜서”입니다. 오바댜서는 딱 한 장으로 된 책이에요. 구약성경 중에 가장 짧습니다.
그런데 오바댜서의 내용하고 오늘 예레미야 본문의 내용이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아마도 예레미야가 오바댜서의 내용을 많이 참고를 한 것 같아요. 물론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기는 한데, 대체적으로 오바댜서가 주전 85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봅니다. 예레미야서보다 약 270년 정도 먼저 쓰여진 거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오바댜서를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이 내용을 많이 참고해서 예언을 한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나중에 집에 가시면 오늘 본문하고 오바댜서를 비교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비슷해요.
자,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겠는데요. 그 전에, 그러면 과연 에돔은 어떤 민족일까요?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자손입니다. 사실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에요. 창세기 25장 3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서가 배가 고파서 야곱이 만든 붉은 죽을 달라고 했죠. 그 사건 때문에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됐어요. 에돔은 ‘붉다’는 뜻입니다. 이 별명이 나중에 에서의 후손의 이름이 됐습니다. 에돔.
그러니까 에돔은 본래 이스라엘과 형제 국갑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 7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명령을 하셨어요. 신명기 23장 7절에 보니까,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아멘.
에돔 사람이 너의 형제이기 때문에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에돔 땅을 지나가려고 에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에돔 땅을 좀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에돔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우리가 포도원으로 지나가지도 않고, 우물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가운데 길로 조용히 지나갈 테니까 허락만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한 거죠.
그런데 에돔 왕이 어떻게 합니까? 거절을 했어요. 그리고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못 가게 막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피해서 멀리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에돔을 형제로 대했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을 원수로 대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다윗 왕 때 에돔을 공격해서 자신의 통치 아래에 두게 됩니다. 에돔을 지배하게 된 것이죠. 형제가 형제를 지배하게 된 겁니다.
에돔은 또 에돔 나름대로 기회만 있으면 반역을 일으켜서 계속 이스라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먼 훗날 바벨론이 남유다를 공격할 때 바벨론 군대에 합세해서 같이 유다를 공격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남유다가 멸망을 당할 때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본래는 한 형제였던 두 나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서 서로를 공격하고 지배하고, 그리고는 결국에 상대방의 멸망을 기뻐하는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고, 남유다를 멸망시키신 하나님이 이제 에돔을 멸망시키셔요.
자, 이제 오늘 본문 7절을 가서 봐 볼까요?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
에돔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면서 데만이 등장합니다.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데만은 에서의 손자예요. 그 이름이 에돔 땅에 그대로 남아서 성읍의 이름이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지혜는 인간의 지혜를 말합니다. 에돔이 자신의 이간적인 지혜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어요. 그런데 이제 그 지혜가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이어서 밑에 8절에 보면, 드단이 나와요. 드단은 아브라함의 손잡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두라라고 하는 후처를 맞이하였는데, 그두라가 욕산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어요. 그리고 욕산이 드단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드단하고 야곱하고 항렬이 같아요. 똑같이 아브라함의 손잡니다. 다만 할머니가 다르죠. 그런데 야곱은 택함 받은 민족이 되었고, 드단은 에서의 후손들에게 흡수되어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살게 된 겁니다.
자, 그러면 과연 드단은 어떻게 되는가? 8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8절 시작,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 내가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닥치게 하여 그를 벌할 때가 이르게 하리로다.” 아멘.
드단도 역시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요. 특별히 “에서의 재난”을 드단에 닥치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에서의 재난. 이것은 무슨 재난일까요? 여러분, 에서가 당한 재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에서의 재난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 17절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아멘.
에서에 대해서 아주 냉정하게 말씀을 하고 있죠. 에서는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다. 그는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그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서의 재난이에요. 바로 이 재난이 드단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9절에 가서 보면, 에돔 땅에 임하는 재난이 얼마나 철저하게 에돔을 파괴하는가를 묘사하고 있는데요. 9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아멘.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에돔이 옵니다. 이들은 누굴까요? 바로 바벨론이죠.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는 겁니다. 예레미야 48장에 보면 모압의 여름 과일과 포도 수확을 탈취하는 자가 나오는데, 바로 이들이 에돔에까지 와서 포도를 거두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두어가는가 하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않고 다 거두어가요. 다시 말해서 에돔을 약간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한다는 겁니다.
애굽과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을 멸망시킨 바벨론이 에돔도 모든 도시를 하나하나 파괴하고 철저하게 멸망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결국에 어떻게 되냐면, 공포의 대상이 돼요. 17절 말씀인데요. 17절에 보니까,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에돔이 너무나 참혹하게 파괴되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는 자마다 놀라고 탄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밑에 18절도 봐 볼까요? 18절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아멘.
에돔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멸망했죠? 유황불에 타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멸망을 당했어요. 그리고 그 땅을 유황이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랄 수가 없어요. 풀 한 포기도 자랄 수가 없는 땅이 됐습니다.
에돔이 이와 같은 땅이 된다는 겁니다. 완전히 멸망해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런 땅이 되는 겁니다.
본래는 이스라엘의 형제 국가였던 에돔의 끔찍한 최후입니다. 에돔이 이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형제 국가인 유다를 공격하며, 유다의 멸망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형제를 넘어트리는 자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셔요.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 형제가 어려워하면 도와주고, 내가 자랑할 것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돌봐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아멘.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는 겁니다. 형제에게 원만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에게 가서 화해를 하고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라는 거예요. 형제에게 원망을 들으면서 제사를 지내봤자 유익이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화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말했어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형제하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본을 따라서 이웃들과 화목해야 돼요. 우리가 이웃들과 화목하고,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웃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위해서 태신자를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 행축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태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안부문자도 보내시고, 관심을 주십시오. 그리하여서 정말로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에돔의 모습을 교훈삼아서, 형제를 돌보고, 이웃과 화목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에서의 재난이 아니라, 야곱의 축복이 임하는 그런 복된 인생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