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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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8:26-30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2024. 3. 1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도 역시 모압에 대한 말씀인데요. 모압이 포도가 많이 생산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포도주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계속 등장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모압이 마치 오래 숙성시킨 포도주처럼 오랫동안 평안을 누렸지만, 그 포도주를 옮겨 담는 자가 와서 포도주를 옮기고 술병들을 다 깨버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포도주에 대한 말씀이 또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 26절에 보니까,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영어성경에는 “make him drunk”라고 되어 있어요. 그를 취하게 만들어라. 이런 말이죠.
모압은 본래가 포도주와 같이 평안을 누리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포도주는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이 와서 옮겨버려요. 그리고 그것을 대신해서 다른 술을 가지고 모압을 취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 술은 무슨 술일까요? 바로 진노의 술이죠.
예레미야 25장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레미야 25장 15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아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 진노의 술잔을 가져가서 모든 이방나라에게 마시게 하라고 명령을 하셨어요. 바로 이 진노의 술을 오늘 모압에게 마시게 하는 겁니다. 이것을 마시게 해서 모압이 취하게 만들어라.
그러니까 모압은 좋은 포도주, 평강은 빼앗기고, 진노의 술, 심판의 술을 먹고 취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압이 술에 취해서 어떻게 됩니까? 26절 끝에 보니까,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 거리가 되리로다”
진노의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인사불성이 돼서 막 토를 하고, 그 위에 자빠져서 뒹굴어요. 남들이 그것을 보고 조롱을 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이것이 바로 모압에 임하는 심판이에요. 바벨론이 쳐들어오니까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 스스로 넘어져서 몸부림을 쳐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밑에 27절에 가서 보면,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나오는데요. 본래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지난 시간에 나왔었죠. 48장 13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 모압이 그모스 신을 섬겼기 때문에 심판을 당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그것은 모압의 교만이었어요. 48장 7절에 보면,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했어요. 모압 네가 너의 능력으로 업적을 만들고 많은 보물을 모은 것을 자랑하고 교만하였기 때문에 네가 정복을 당할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두 가집니다. 그모스를 섬긴 것과 교만한 것.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에 보니까 또 한 가지의 이유가 나와요. 27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아멘.
자,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세번째 이유가 뭡니까? 이스라엘을 조롱한 것이죠. 과거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때, 모압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조롱을 했어요. 바로 이것이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윱니다.
그런데 가운데 보니까 “그가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라고 질문을 하셔요. 이스라엘이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이 도둑이냐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도둑이냐? 왜 이런 질문을 하실까요? 그 이유는 모압이 이스라엘을 도둑 보듯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도둑이 아닌데, 마치 도둑을 보듯이 멸시했다는 거예요.
또 뒤에는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여기서 머리를 흔든다는 것은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머리를 흔들면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멸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압이 하나님의 진노의 술을 마시고 쓰러지는 겁니다. 28절에 보면, 그래서 모압이 어떻게 됩니까? “모압 주민들아 너희는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살지어다 출입문 어귀 가장자리에 깃들이는 비둘기 같이 할지어다.”
모압 주민들이 성읍을 떠나게 되죠. 그리고 바위 사이에 가서 삽니다. 마치 출입문 어귀 가장자리에 깃들이는 비둘기처럼 황폐한 땅으로 가서 사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비둘기가 도시에서 살죠. 하지만 본래는 천적을 피해서 높은 바위 틈이나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사는 동물입니다.
그러니까 출입문 어귀 가장자리에 깃들이는 비둘기 같이 한다는 것은, 비둘기처럼 험한 곳에 가서 숨어산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위 사이에 살지어다”
자, 그러면서 밑에 29절에서는 모압의 교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요.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두 번째 이유죠. 교만. 29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모압의 교만이 일반적이지가 않아요. 심한 교만입니다. 여기서 심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메오드”라는 말인데, 이 말은 히브리어에서 최상급의 표현이에요.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어땠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 같은 말입니다. 메오드. 무언가를 표현할 때 최상급의 수식업니다.
모압의 교만도 마찬가지예요. 심한 교만. 최악의 교만입니다. 그러면서 그 교만을 네 가지로 나열을 했어요.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네 번이나 반복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교만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숫자 4는 동서남북 사방, 온 세상을 상징해요. 이는 곧, 모압이 사방으로 교만하다는 겁니다. 빈틈이 없이, 온통 교만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교만한 모압이 어떻게 됩니까? 30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의 노여워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모압의 노여워함의 허탄함을 아신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말씀이 사실 문맥상 부자연스러워요. 모압의 교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모압의 노여워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거든요. 여기서 노여워함이 히브리어로 “에브라”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분노”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또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바로 “오만”이라는 뜻이에요.
개역개정에는 분노라는 뜻으로 “그의 노여워함”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사실은 “그의 오만함”이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NIV나 ESV 같은 영어성경도 다 “그의 오만함”으로 번역을 했어요.
자, 그렇게 번역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그의 오만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
모압이 그들의 오만함으로 인해서 허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허탄합니까?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탄해요. 본래 그들은 그들의 업적과 보물을 자랑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읍에서 쫓겨나 비둘기처럼 바위 틈에 숨어사는 신세가 됐어요. 좋은 포도주와 같던 그들이 평화를 빼앗기고 진노의 술에 취하여 넘어지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압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하였고, 스스로 교만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조롱과 교만. 이것을 오늘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돼요.
조롱과 교만은 사실 같은 말입니다. 조롱은 남을 깔아뭉개는 것이고, 교만은 나를 높이는 거예요. 이 두 가지는 본래 하나의 감정에서 비롯된 겁니다. 내가 남보다 높아지고 싶은 욕심이죠. 그래서 남을 조롱하고 멸시하면서 나를 자랑해요. 내가 높아지려고.
이것은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 땅에 섬기러 오셨어요. 우리는 그 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조롱하거나 나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로, 우리는 남을 높이고 나를 낮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가 높아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낮추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낮추고, 이생의 자랑 다 내려놓고, 섬김으로 남을 높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높이십니다.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에게 성취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겸손과 섬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