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에 관한 말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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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8:1-10
“모압에 관한 말씀”
2024. 3. 1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모압에 관한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 블레셋에 이어서 세 번째로 모압에 관하여 심판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모압도 사실 이스라엘과 뿌리가 같습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이에요. 아브라함이 동생이 두 명 있었죠. 나홀과 하란, 이렇게 두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란이 롯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롯이 나중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겨우 두 딸만 데리고 도망을 쳤어요. 그런데 이 두 딸이 배필이 없으니까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아버지와 동침을 해서 임신을 합니다. 그래서 큰딸과 작은딸이 각각 아들을 하나씩 낳았는데, 큰딸이 낳은 아들이 바로 모압이에요. 그리고 작은딸이 낳은 아들은 벤암미입니다. 벤암미는 다른 이름으로 암몬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모압과 암몬이 모두 롯에게서 나온 것이죠. 오늘 본문인 48장은 그 중에 형인 모압의 자손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다음데 49장은 그 동생 암몬에 대한 예언이에요. 자, 먼저 모압에 관한 예언을 오늘 볼 텐데요.
모압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나랍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밑으로 좀 내려가면 있어요. 아주 가깝죠. 그래서 이스라엘과 대체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의 왕 발락이 점술가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고 한 사건이 있죠.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에 빠져서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다.
사사 시대 때는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18년 동안이나 압제했어요. 또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솔로몬이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하면서 모압의 신을 들여오게 되는데, 그 신이 “그모스” 라는 신입니다.
그모스.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본래 이스라엘과 같은 뿌리를 가진 모압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모스를 섬겼기 때문에, 그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모스는 전쟁의 신이에요. 그모스의 이름 뜻 자체가 “정복자”라는 뜻입니다. 그모스를 모압에서도 섬기고 암몬에서도 섬겼어요. 그런데 암몬에서는 그모스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암몬에서는 그모스를 “몰렉”이라고 불렀어요. 몰렉, 또는 몰록, 또는 밀곰. 여러 이름으로 그모스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몰렉이라고 하면 낯이 익죠?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유다 백성들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뭘 했습니까? 자기 자녀들을 불에 태워서 인신공양을 하잖아요. 이것이 몰렉 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입니다. 자녀를 불에 태워서 죽여요. 우상숭배에 미쳐서 자기 자식들을 불에 던지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죄가 모압으로부터 들어왔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압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내용인데요. 이제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모압에 관한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오호라 느보여 그가 유린 당하였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이 말씀에 보면, 모압의 여러 성읍의 이름이 나오는데요. 느보는 유린을 당하고, 기랴다임은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고, 미스갑은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먼저 느보는 모압 북쪽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 근처에 느보산이 있어요. 느보산은 모세가 죽기 전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본 산이죠. 하나님께서 이 느보를 유린하셔요. 지난 시간에 유린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들었죠. “완전히 말살하다”라는 뜻이었어요. 느보를 완전히 말살해버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기랴다임은 느보 아래 쪽에 있는 성읍이에요. 그런데 기랴다임은 어떻게 됩니까? 수치를 당하여 점령됩니다. 또 미스갑은요? 미스갑은 수치를 당하여 파괴돼요. 이처럼 모압의 성읍들이 철저히 하나하나 말살되고 파괴되고 맙니다.
밑에 2절도 마찬가지예요. 2절에 보니까,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조용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뒤쫓아 가리라.”
여기도 보면, 헤스본이 나오고 맛멘이 나오죠. 다 성읍 이름입니다. 헤스본은 느보산보다 더 북쪽에 있어요. 그리고 맛멘, 맛멘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어디에 있는 성읍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어쨌거나 성읍 중에 하나였고, 똑같이 멸망을 당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밑에 3절에는 호로나임이 나오는데요. 호로나임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요. 다만 남쪽 어딘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그리고 역시나 호로나임도 멸망을 해요.
자, 이렇게 여러 성읍들을 하나하나 언급을 하면서 그 모든 성읍들이 다 끔찍하게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파괴, 완전한 말살이죠.
그래서 밑에 4절에 보면, 그 멸망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안타까운 모습으로 표현을 해요. 4절에 보니까,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어린이들의 부르짖음. 이것은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모든 어른들이 다 죽어버리고, 어린이들만 남아서 울부짖는다는 것을 표현한 겁니다. 길거리에 엄마 아빠가 다 죽어있고, 어린 아이들이 그 시신을 붙잡고 울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참혹하고 슬픈 장면입니까?
또 밑에 5절을 보면, 이번에는 피난민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5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5절 시작, “그들이 루힛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호로나임 내리막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아까 3절에 나왔던 호로나임이 다시 등장하는데요. 호로나임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아마도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루힛도 마찬가지예요.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역시도 남쪽에 있었던 도시예요.
그래서 지금 5절의 내용은, 모압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남쪽으로 도망가는 장면입니다. 루힛은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언덕으로 올라가고, 호로나임은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내리막 길을 가요.
그런데 그렇게 도망을 쳐도 결국에 어떻게 됩니까? 도망쳐도 신세가 처량해요. 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6절 시작,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도망쳐도 노간주나무 같은 신세가 될 뿐입니다. 여기서 노간주나무는 히브리어로 “아로에르”라는 말을 번역한 건데요. 사실 아로에르가 정확하게 어떤 나무를 가리키는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아로에르가 도대체 무슨 나무일까?
여기서 아로에르의 뜻이 “발가벗다”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아로에르는 잎이 별로 없고 앙상하게 마른 나무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노간주나무가 그렇게 생겼거든요. 잣나무랑 비슷한데 그보다 더 작고 빼빼 말랐어요. 잎도 밤가시처럼 빼족하게 생겼습니다.
모압의 피난민들의 신세가 이런 빼빼마른 나무와 같이 처량한 신세가 된다는 거예요. 마치 발가벗은 것처럼, 수치스럽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에 닥친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왜 온 겁니까? 그들이 그모스를 섬겼기 때문이죠. 그모스를 섬기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해서 같이 그모스를 섬기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밑에 7절에 보면, 이번에는 그모스에 대하여 심파을 내리셔요. 7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아멘.
이 말씀에 보면, 모압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는데요. 그들이 그들의 업적과 보물을 의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들이 이룩한 업적과, 그들이 쌓아 올린 보물들. 그것을 의지했어요. 이는 다시 말해서 그들의 교만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자기들 잘난 맛에 사는 교만이 그들에게 멸망을 불러온 겁니다.
그리고 그 멸망의 때에 그모스와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이 함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진짜로 포로로 끌려간다는 말이 아니에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모압이 칼에 죽고 끔찍하게 멸망을 당하는 그 때에, 그들이 그동안에 믿고 의지하던 그모스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거예요. ‘봐라, 너희가 너희 자식들을 불에 태우면서까지 섬기던 너희 신이 정작 너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지 않느냐?’ 이런 말인 것이죠.
결국에 모압은 허망한 것을 믿고 의지하다가 허망하게 멸망을 당하는 겁니다. 본래는 아브라함의 조카 손자였던 모압이었지만, 그 후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엉뚱한 신을 찾고, 교만하게 살다가 완전하게 말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압의 최후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우리는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혹시라도 우리도 교만하고 허망한 것을 따르다가는, 모압의 성읍들이 하나하나 말살을 당한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사라져버릴 수 있겠구나.’ 이런 경각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각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 인생이 노간주나무 같은 인생이 될 수 있어요. 물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구원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굴곡이 없을 수는 없어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죠.
은혜를 받을 때가 있으면, 낙망하고 넘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리막 길이 길어지면 안 되잖아요. 기왕이면 우리 인생이 올라가는 인생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린 모압은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동일하게 처량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올라가는 그 길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내리막 길이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금세 바닥을 치고 일어나 회복을 경험하고, 그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모압의 최후를 기억하며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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