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8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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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분! 오늘도 함께 한자리에 모여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다들 한주간 잘 지냈죠? 물론 모두가 다 좋게 지내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 곧 시험이 있기 때문이겠죠.
아마 지금쯤 여러분들의 마음 속은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할 것 같아요. 특히 우리 14기 친구들은 하늘고 와서 첫 시험이다보니 더욱 그렇겠죠.
그래서 저도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시기이다보니 오늘만큼은 본문을 잠시 이동해서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여러분들 앞에 놓여진 시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일들을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작년에도 바울 사도가 기록한 성경말씀을 보았지만, 오늘 보는 빌립보서 역시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된 말씀입니다.
즉,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 우리가 읽은 4장의 말씀은 그 말씀의 거의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편지글에서 후반부 내용이겠죠.
자 그럼 읽었던 말씀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처음 4절을 보면 바울이 성도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무엇을 하라고 하죠? 그렇습니다. 기뻐하라고 해요. 심지어 2번 기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바울이 기뻐하라고 이야기를 했을까요. 방금 제가 여러분들께 이 말씀이 빌립보 교회를 향한 편지글이라고 했죠. 그렇다는 것은 이 글을 읽을 화자인 빌립보 성도들의 상태가 어땠다는 것이죠? 기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맞아요. 당시 빌립보 교회는 기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읽은 말씀 바로 앞부분을 통해 살펴볼 수가 있는데요,
2절을 봅시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죠,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런데 그들에게 뭘 권하고 있죠?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바울이 그 두 사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다는 것은 지금 그들이 같은 마음상태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요. 2절에 나온 두 사람은 당시 빌립보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격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못했던거에요. 그러다보니 교회가 그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나뉘어져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교회가 분위기도 냉랭하고 기뻐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그런 교회의 상황을 잘 아는 바울이 그 두 사람에게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하고, 이어서 성도들에게는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기뻐하라고 말을 한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한번 해봅시다. 여러분, 우리 한번 10초동안 웃어볼까요?
어때요, 좀 기쁨이 생겼나요? 요런걸 예전에 군부대에서 했었어요.
종만 치면 자지러지게 웃어야 하는 건데, 그 때문에 생긴 말이 웃음벨이라는 단어이죠.
물론 요렇게라도 잠시 웃는 시간을 가지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모든 상태가 온전히 기쁨의 상태가 되지는 않을거에요. 나에게 놓인 상황이 해결된 것이 아니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바울이 그냥 대책없이 기뻐하라고 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당시 바울이 편지를 통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의 심정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남다른 감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울이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거든요.
사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했을 당시, 바울은 옥에 갇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옥중에서 편지를 기록하여 보낸것이죠.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기쁨이 있을까요? 그러기란 쉽지가 않죠. 원해서 감옥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기쁨보다는 분노나 억울함이 더 많겠죠.
그러면 바울이 내가 지금 여기 있으니까 너네라도 좀 즐거워해라! 라는 이야기로 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이지만, 이 순간이 그에게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전도의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죠. 또한 바울은 옥에 갇혀있으면서 누구의 방해 없이 편지를 작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상황이 이러했기에, 그 상황을 잘 아는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이러한 권면에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 곳에서 기뻐하고 있는데, 우리도 기뻐할 수 있어!’ 라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뻐할수가 있느냐는 거에요. 기뻐하려고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상황이 해결이 안되어있으니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을 기록해줍니다. 5절 하반절을 보면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주께서 가깝다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께서 오시는 날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힘든 일들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곧 오셔서 믿는 여러분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주실 것이니까 기뻐하라! 라는 것이 될 수 있겠죠.
두번째는 실제로 거리가 가깝게 계신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크신 주님께서 지금도 네 곁에 계시는 너는 기뻐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 둘을 모두 의도하여 적었을 것 같아요. 어떤 뜻이던지 성도들에게는 기쁨이 될 수가 있으니까요.
이어서 바울은 6절과 7절에서 기뻐하며 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바로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기뻐하기 전에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걱정과 염려들을 먼저 해치워야 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성도들에게 지금 마음속에 가득한 염려를 다 버리고, 그 염려의 제목들을 다 주님께 맡겨라.
그러면 7절에서 나온 것처럼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들을 지켜줄 것이다.
우리는 여기 7절에서 등장하는 지켜주신다라는 것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굳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라는 말을 한 것은요, 당시 빌립보라는 도시의 특성이 담긴 측면이 있습니다.
빌립보는 당시 로마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군인들과 군사 시설들이 도시를 촘촘히 지키고 있었겠죠.
강한 군사적 힘이 빌립보라는 도시를 감싸고 있었기에 도시 안의 백성들이 평안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교회의 성도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이미지를 차용해서 마치 군대가 빌립보 도시를 지키는 것처럼, 그 힘으로 도시가 평안한 것처럼, 모든 것을 아시는 강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을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염려라는 적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죠.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정말 수많은 염려들이 있죠. 당장의 시험도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많은 염려가 있을거에요. 기숙사 룸메가 맘에 안든다는 생활적인 염려에서부터, 내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할까라는 비젼에 대한 염려가 있을 수도 있겠죠.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 염려를 제어하려고 합니다. 학업에 대한 염려가 있다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로 인해 염려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뭔가 할 수 있는 공부들은 한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한 것 같고, 그러다보면 또 연장을 끊어서 졸려 죽겠는데도 일단 앉아서 뭐라도 하는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이죠.
왜 우리 힘으로는 염려를 줄일 수가 없을까요? 우리의 지각이 딱 그정도까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까지밖에 알수가 없어요. 그나마 더 할 수 있는 것이 과거를 통해 반추하는 정도일 뿐이죠.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줄여줄 뿐이지, 완벽하게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남아있는 가능성 안에서 계속적으로 염려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뭐라고 권면하고 있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염려를 맡기라고 합니다. 왜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들에 다 방비할 수 있겠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에요? 완벽하게 그 염려에 대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영화 산업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랜차이즈가 있죠. 마블이라는. 물론 지금은 좀 삐끗하고는 있지만.
그 마블 프랜차이즈가 최정점을 찍었을 때가 있어요. 바로 타노스라는 빌런이 등장하는 인피니티워와 엔드게임으로 이어지는 때였죠.
그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있죠. 닥터스트레인지. 그래서 그는 타임스톤으로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고 단 한가지 이길 수 있는 완벽한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인피니티 워 마지막에 어떤 행동을 하죠? 목숨처럼 지킨다던 타임스톤을 넘기고 토니스타크를 살립니다.
모두가 그 선택에 의아해하죠. 왜 넘겨줘서 건틀릿을 완성하게 하냐 라는 생각인 것이죠.
그런데 그 선택의 이유가 몇년뒤에 엔드게임에서 밝혀지죠. 토니스타크가 살아야 시간을 돌아가서 스톤을 모을 수가 있고, 마지막에 스냅으로 타노스를 없앨 수가 있었던 거에요.
이 모든 미래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닥터스트레인지는 그 계획대로만 가면 되는 거에요. 그러니 아마도 염려 없이 가루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영웅들은 그걸 모르니까 염려하면서 고군분투를 했던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모르니까 염려하고 걱정하고 고군분투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고 우리가 가장 좋은 길로 향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닥터스트레인지가 굳이 스톤을 넘겼어야 했나? 하는 것처럼, 우리 시각에 맞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방법만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 일들 가운데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우신 유일한 길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겠어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선한 길, 가장 올바른 길을 알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염려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구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자리에 있는 여러분들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또 성도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8절과 9절의 내용인데요, 무엇을 하라고 하죠?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고 칭찬받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왜 갑자기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날 갑자기 어떤 것에 깊이 빠져버린 것이죠. 연예인이라던지 영화라던지 스포츠라던지 게임이라던지.
이런 것들에 깊이 빠지면 그 순간에는 머릿 속에 그걸로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죠. 결국에는 다른 어떤 것을 하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리로 향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일들을 잘 겪습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야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특히 여기 인천 연고에 있는 SSG 랜더스를 좋아하죠.
제가 요 팀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여러분들처럼 학생일 때, 여기 인천지역에 살았었거든요. 근데, 그 때가 이 팀이 너무나도 잘 나갈 때였습니다. 왕조라고 불릴 정도로 매번 우승권에 도전했던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는게, 제가 고3일때도 잘나갔던거에요. 물론 마지막 끝물이긴 했지만, 제가 수능을 봐야했던 2012년에도 이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을 했습니다.
자. 그런데 야구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국시리즈는 언제해요? 가을에 합니다. 근데 고3의 가을에는 뭐가 있죠? 수능이 있죠. 딱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한국시리즈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그팀에 빠져있다보니까 헤어나오지를 못하는거에요. 지금 팀이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 요 기로에 있다보니까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손에 안잡히는거에요.
그래서 결국 한국시리즈를 다 봐버리고 말았죠. 가족들이 차마 말은 못했지만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다고 해요.
이런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어떤 무언가로 가득하게 되면, 행동 또한 그리로 향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취미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만약 우리의 생각이 악한 것,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행동이 그리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머릿속이 염려나 혹은 좌절로 가득하게 된다면, 우리의 행동 또한 최고의 컨디션으로 가지 못하고, 똑같은 모습대로 향하고 말겁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에게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생각함으로 마지막 9절에서처럼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하죠.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바울이 성도들에게 원한 것은 다른 세상적인 염려들로 인해 잘못된 행동들을 하지 말고, 오로지 자신이 선포한 복음,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라는 그 진리들을 생각함으로 그 생각에서 비롯된 올바른 행동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이 귀한 삶을 걱정과 염려로 채우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함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하셔서 반드시 여러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담대하게 이번 시험에, 또한 그 이후에 있을 일들 가운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동요함이 아닌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저도 여러분들 가운데 한가지 권면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이번 시험이, 혹은 또 다른 염려의 꺼리들이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그 일들로 인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에 변화들이 생겨날 수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요, 그 일들이 여러분들을 완벽한 실패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요, 여러분들이 어떤 자리에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생각했을 때에는 그 일들이 우리의 전체 삶과 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모습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이끄시는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주님께 나아올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사용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알 수 있다면 복을 주시기도 하시구요, 여러분들이 주님을 볼 수 있다면 고난도 허락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주님믿는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요, 잘못된 길이란 없습니다. 잠시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이상한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주님은 그 일들을 통해 여러분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도록 만드실 거에요.
그리고 그 길은 분명 평안함이 가득한 길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무조건 시험을 잘보고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진다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잘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일들이 지나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실 것이구요, 그 일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더욱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삶은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라고 주신 삶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이 높은 자리 앉고 돈 잘버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릴 것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주님과 함께, 또한 우리 모든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이자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 오늘 이것만을 분명히 붙잡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모든 순간 가운데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