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세상,나를 사랑한 그분!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9 views
Notes
Transcript
내가 사랑한 세상,나를 사랑한 그분!
[하나님의 말씀을 교독하여 읽겠습니다: 요3장 14절-21절]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인사말-서론]
우리 서로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눈을 한 5초 동안 마주보고 한주간 수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항상 우리 가슴이 벅차 오르게 합니다. 제목이 어떻습니까? 한 번 읽어 볼까요? 내가 사랑한 세상, 나를 사랑한 그분! 이 제목을 쓰고 나서 저는 가슴이 뭉클해 지더라고요!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후에도 한동안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세상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수없이 배반하고 세상을 사랑한 나같은 자를, 주님이 끝까지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깊은 울림이 마음속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지은 어떤 죄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들려 주신 음성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의 제 삶은 여러분이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사는게 힘듭니까? 대학을 가기 위해서, 또 좁은 취업문을 넘어서려고 얼마나 많은 경쟁과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까? 그뿐 인가요? 결혼을 하려고 집을 장만하는 문제부터 자녀 사교육비까지 매 순간이 전쟁입니다. 우리 청년 중 지금도 진학을 위해서 애쓰시는 분 있지요! 일단 대학은 가고 이야기 하자! 대부분 부모님이 그러십니다. 대학 졸업하면 이제 취업만 하자! 결혼만 하자! 자녀를 낳자!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항상 차선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분들은 거기까지만 경험하고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우리는 행복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않고 평안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왜 그렇죠!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종교의 씨앗)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렇다고 합니다. C.s 루이스는 그것을 ‘본향을 향한 갈망’이라고 표현했고 초대 교회의 어거스틴은 ‘안식을 향한 갈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그 뜻은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없이는 진정한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누릴 수가 없는 존재로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던진 세번의 문답 내용을 저자가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는데도 니고데모가 못 알아듣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알아 들지 못하자, 니고데모에서 민수기 21장 4-7절 말씀을 들어 세번째 설명을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여기서 ‘들리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휘포소우’인데 위로 높이 들리다는 뜻입니다. 즉, 손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 들어 올려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리는 때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단어가 네 번 사용되며 십자가에 목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14절중간에 이와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가 개혁개정 번역에서 빠졌는데 ‘16절 ‘이처럼’에 사용된 단어와 같은 단어인 ‘후토스’입니다. 따라서 14절의 원문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이와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가 더 정확한 의미입니다. 14절의 ‘이와같이’와 ‘16절 ‘이처럼’ 은 같은 주어를 받고 있는 부사입니다. 사람들이 16절의 ‘이처럼’을 너무도 많이 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후토스’는 많고 적음의 뜻이 아니라 ‘어떤 방식’을 의미합니다. 16절을 이런 방식으로 재해석을 하자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이러한 사랑의 결과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가 되는 것입니다. 또,이러한 사랑은 바로 대속의 사랑, 값을 치루어 주신다는 뜻인 속량의 사랑을 말합니다. 제가 언젠가 대속의 사랑을 설명 드리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대신 아파하거나 죽어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대신 죽으실 수 있으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요3:16절 이 말씀은 복음중의 복음이고 요절중의 요절입니다. 우리 함께 암송해 볼까요? 시작~~!
또 오늘 본문의 구조를 보면 14-15절이 16절을 꾸며주고 17-21절이 16절을 부언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16절 말씀인 것입니다. 16절에서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영생’입니다. 그 뜻은 생명’(조에, zōē)과 ‘영생’(조에 아이오니오스, zōē aiōnios)이라는 표현으로 요한복음서에 광범위하면서도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32구절에서 36회 등장합니다.
이 표현들 대부분은 복음서 전반부인(1-12장) ‘세상에서 예수님의 행위’, 즉 ‘표적의 책’에 등장하는데, 이곳에서 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 표적을 서술합니다. 복음서 기자가 나중에 말하듯이 이 표적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요20:31). 따라서 영생이라는 주제는 예수님의 표적 및 복음서의 목적 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생의 본질을 요17:3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만 구약성경 에서와 같이 이 지식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응답과 순종 및 교제를 포함하여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영생은 문자적 뜻인 영원한 생명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영생과 관련하여 세 가지 주요 은유들을 사용합니다. (1) 출생: 사람은 성령으로 남으로써 영생을 경험합니다(3–8절). (2) 물: 영생은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에 비유합니다(4:14; 참조, 7:37). (3) 떡: 영생은 주림을 채우는 떡으로 비유합니다(6:27, 35, 48, 51, 53–54).
종말론적으로 말해서 ‘영생’은 (오는) 시대의 생명인데, 이는 ‘조에 아이오니오스’(zōē aiōnios)의 문자적 의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이것은 기독교 종말론의 성격과 일치합니다. 즉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 및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예수님이 인자로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종말론은 구원으로 표현되는데, 즉 신자들이 이미 구원받았고 현재 구원을 받고 있으나 완전한 구원은 아직 아니라는 거이지요! 요한복음서에서 이러한 기독교 종말론은 지금 경험되면서 부활 때에 완성되는 영생으로 표현되며 이는 바울의 종말론과도 일치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은 영생이라는 용어로 말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6:33). 그러나 영생을 부여하는 이러한 임무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그 수혜자들을 위해 버리는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6:5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예수님이 제공하시는 영생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중재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5:24).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요6:68).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실 때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요6:40,요20:31).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에 영생을 얻습니다(요1:13).
[적용]
이상으로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살펴보았는데요!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은 우리를 포함한 인류를 말씀하고 있는데요! 내가 사랑한 세상은 ‘자기’ 라는 자아를 말합니다. 요즘 세상을 흔히 자아팽창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 구호가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동의하시나요? 저는 사실 이 구호에 전도되어 살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자아실현’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거듭난 교인이 되어 교회에서 예배 드리며 살아도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같이 섬기며 살수가 있습니다. 1998년 ‘앤드류 매튜스’ 의 자기계발서인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입니다.그 책에서 나오는 ‘멋대로 살면서 성공하기 10계명’ 은 매우 매력적 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 드릴 테니 우리 신앙과 충돌되는 점이 있으면 한번 말씀해 주세요! (1) 시련을 두려워 하지 말자! (2) 만나는 사람 모두를 삶의 스승으로 여기자 (3)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버리자 (4) 집착할수록 멀어 진다. 얻으려면 집착하지 말자 (5) 세상일은 생각대로 된다. 상황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6) 삶은 투쟁이 아니다. 마음가는대로 살며 삶을 즐기자 (7) 사랑의 눈으로 이웃과 세상을 보자 (8)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 오직 현재를 소중히 여기자 (9) 사랑한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자 (10)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키자! 어떠세요? 저자가 성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할 정도로 성경적인 가르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10계명의 정신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가는대로 살아가라! 입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모두 자기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궁극적으로 이러한 믿음은 가짜이고 인생의 불안과 방황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가는 대로 하라! 는 신앙은 번영신학과 함께 한국 교단을 뒤흔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니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삶, 첨단 생활방식, 마음의 해방, 독창성, 관용, 모험, 내적 깨달음, 진정성, 꿈의 실현 등을 약속하지만 결국 오늘날 문화가 말하는 것은 진리의 파편이고 하나님 없는 행복, 즉 자아를 숭배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인생의 비전이라고 말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만 물거품 같은 신기루만 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내 마음이 삶의 기준이 되면 내 인생보다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행복과 의미는 나보다 더 큰 대의를 만나서 인생을 살아갈 때 생깁니다. 사람에게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대의가 필요합니다. 또 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를 희생할 때 참된 의미는 따라오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인생의 행복은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희생함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시종일관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참된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이기에 인생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종교의 씨앗'이 있는 피조물은 반드시 무엇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든지 다른 우상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섬기게 됩니다. 인간의 자유란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치즈 버거와 감자튀김을 즐기면서 왕자 복근을 꿈꾸는 어리석은 삶이 바로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최근에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라는 책을 봤는데요! 사디어스 월리엄스라는 조직신학자가 쓴 책입니다. 내 마음을 따라 살아가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진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담과 하와라는 옛날 조상들이 저질렀던 죄를 반복할 뿐이며 가장 최선의 유행을 따라 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가장 진부한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책에서는 “오케이 부머', '츄기'를 외치지만 뱀이 소개하는 진부한 종교 '너 자신을 믿어라'는 종교를 따르는 것 뿐이다.<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는 결국 자신의 마음에 충실 하라고 외치는 이 시대의 문화 내러티브가 완전히 잘못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앨런 노블은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를 통해서 그토록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내가 신이 된' 시대이기 때문이라 평가합니다. 인생의 행복(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복(사랑)으로 시작되었고,그 관계적 행복(사랑)을 나눠 주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면 인생은 참된 행복(사랑)을 누릴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사나 죽으나 사람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나의 것이 아니오,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고 고백합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삶은 불안하고 두려움 가운데 무엇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알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모든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이 내 인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복음을 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러한 사랑의 결과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도 가슴 벅찬 말씀이 아닙니까? 내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났지만 나를 사랑한 그분은 자기 아들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고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영생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음 같이 우리가 주님안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공유하는 생명인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가는 대로’ 살아가라는 인본주의 자아 팽창의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충만하시길 축복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함께 찬양 드리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 세상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 너의 삶은 너의 것이야! 너로 충만한 삶이 행복이야! 그러나 주님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밝혀 보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 기쁨임을 잊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소서! 하나님의 주신 영생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주님 오실 그날에 완전히 완성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이 소망을 가지고 주여 한번 부르시고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