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계명 -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0 ratings
· 160 views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Notes
Transcript
제목 :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말씀 : 출 20:7절
오늘은 ‘십계명 네 번째 시간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인사할까요. 하나님을 진실되게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합시다. 이번 한 주가 우리 주님만을 진실되게 사랑하며, 그분을 전심으로 존경하며 경외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주에는 저와 두 번째 계명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제 2계명이 뭐였죠? 따라해보겠습니다.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한번 더요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줌을 배웠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가리키는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섬겼듯, 우리 역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우상단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여겨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그 크신 사랑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올려드리는 그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살펴볼 계명은 제 3계명입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한번 더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이 계명에 대해 조금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불러선 안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망령되게’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망령이라는 말은, 원뜻의 의미는, 사악, 범죄, 재난, 거짓, 허위, 허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을 위하여, 범죄를 위하여, 순결하지 못한 악의적인 의도로, 거짓을 위장하려고, 또는 허탄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공허하게, 분별력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금방 사라져 없어지는 수증기, 의미 없고 차이 없는 개념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무가치하게, 변덕스럽게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2절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쉽게 말하면, 나의 진실됨을, 거짓 없음을 주장하려고,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내 신앙을 걸고 약속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사실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서, 진실되게 보이기 위하여, 그 이름으로 맹세하며 망령되게 부르는 것을 하나님은 금하시고 계시다는 거에요.
쉽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러 부르지 말라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는 함부로 부르면 안될까요? 그 이유는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양적인 윗 사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에, 이게 너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보통 부모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어른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어떻게 말합니까? 저희 아버지 이름은, 송, 하자, 호자 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바로 부르지 않고 존칭을 쓰잖아요. 왜냐하면 그 이름은, 나보다 윗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이름도, 하물며 이 세상의 어른들의 이름도, 이렇게 존칭을 써가며 부르는데요, 세상을 창조하신 만왕의 왕 되신 그분의 이름을 어찌 우리가 함부로, 아무런 의미 없이, 거짓 맹세 하는 태도로 부를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제가 시골에서 사역을 하다보니깐요, 조금 신기한 것이 있었는데요. 그게 뭐냐면, 여자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는,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더라고요. 광주댁, 순천댁 이걸 제가 찾아보니깐, 시집 간 여성이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여부르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또 보통 우리가 엄마들은, 누구 엄마 누구 엄마 이렇게 부르기도 하잖아요. 우리의 출신이나, 자식들로 인하여 여성들이 규정되는 시대에 살았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우리에게는 다 누가 지어준 이름이 있다는거에요. 이름이 의미하는게 무엇일까요? 이름은 누구를 부르기 위한 호칭으로서의 기능도 하지만요, 사실은 이름 그 자체가, 그 사람, 그 사람의 존재를 뜻하는거에요.
만약에 제가 이름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라는 사람 존재 자체를 규명할 단어가 없는거에요. 송호정이라는 이름이 뭘 말하는거에요? 저라는 사람 자체, 존재를 뜻하는거에요. 성경에서는 더 그렇게 쓰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그 사람의 존재와 인생, 더 나아가 사명까지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막 바뀌는 모습들이 보여져요. 창세기 17:5절에 보시면요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99세 때에 다시금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바꿔주셔요. 이제 너가 정말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게 되게 하겠다. 이제 진짜 네 후손 이삭을 허락하겠다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창세기 32:28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삭의 아들이었던 야곱이 인생의 위기 가운데, 얍봉 강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뒤에,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이 뭐에요? 이스라엘, 결국 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이 나중에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는 12지파가 되어지게 되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의미로 하나님이 이름을 바꿔주시는거에요.
이 일이 성경에 끊임없이 보여져요. 게바를 베드로라 부르고요, 예수님의 이름의 뜻 역시, 예수님이 이루실 이 땅에서의 사명을 보여주잖아요. “모든 민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잖아요. 즉 성경에서 이 이름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지는거에요.
그렇다면 이 이름이라는게 중요함을 알았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즉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일 자체는, 그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고요, 그분에게 돌려야 할 합당한 영광을 무너뜨리며 폄하하는 일이 되어진다는거에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질문해볼게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생각해본적 있으세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일까? ‘하’ ‘나’ ‘님’일까요? 이건 그냥 영어로 GOD 신이라는 말과 똑같은데 한국에서 독특하게 붙인 이름이 하나뿐인 님이라고 해서 하나님이라고 붙인 것 뿐이에요. 이건 이름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들을 알려주셔요. 이것은 사실 한 가지가 아닙니다. 원래 구약이 다른 언어로 되있으니깐요. 그 이름들은, 엘, 엘로아흐, 엘로힘, 엘엘룐, 엘 샤다이, 뭐 각각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이름이 뭐냐면, ‘여호와’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보통 야웨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의 뜻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신약에 넘어오면요, 이제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시죠.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에요? 예수, 잖아요. 예수는, 히브리 말로 한다면, 여호수아, 호세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뜻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할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은 뭐냐면,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믿는 그 분을 부를 때에도요, 이 하나님이라는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 예수라는 그 이름 자체가 존귀하신 그 분을 뜻하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아무런 의미 없이, 존경하는 마음 없이, 그 이름을 마구 부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해볼게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이름들을 망령되게 부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전 없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의미는요 어디까지 나아가게 되냐, 그분의 존재가 드러나는, 그분의 손길이 스며있는, 그분을 드러내는 모든 피조물들을 향해서도 모독과 저주를 결코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그분의 이름도, 그분의 영광과 존재를 드러내는 피조물들을 향해서도, 결코 모독이나 저주의 말로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실추하는 일들을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것이 가장 잘드러나는 것이 어떤 상황이냐면, 바로 예배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표현은 주로 ‘예배를 드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예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0절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절 말씀입니다.
이 모습들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를 표현할 때에,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거에요.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가장 대표적인 일은 예배입니다. 실제 예배의 거의 모든 순서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치는 것이 기도입니다. 찬송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 그분의 행하심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설교 역시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행하신 일들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잖아요.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대표적인 행위는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예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가르치는 태도는 먼저, 예배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결코 망령되게, 즉 헛되게, 공허하게, 진실되지 않게,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3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인 예배에 있어서, 아주 신중한 태도와 엄숙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바른 태도로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대표적인 일이 무엇이라고요? 바로 예배에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 삼위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면, 이 3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예배하고 있다면 3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옆 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거나, 주보의 오타를 찾거나, 멍하니 다른 생각을 품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일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시간에 마치 우리 아이들처럼 입을 닫고 멍하니 있다거나, 입술로는 찬양하지만 정작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3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려드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다면 그 역시 이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된다는 거에요.
저 역시 설교자이지만, 저조차도 이 계명을 어길 수 있다는거에요, 이 말씀이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고 증거하는 시간이기에, 이 일에 있어서 신중한 마음과 태도로 준비해야 하고요, 연구해야 하는거에요. 내가 그분의 이름을 잘못부르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진지하고 신중하게 말씀을 전할 책임이 있는겁니다.
말씀을 드는 회중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선포되는 시간인 이 설교 시간에,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 계명을 어긴거에요. 주보에 무슨 내용이 적혀져 있는지 보구요, 다른 급한 일과 즐길 거리들이 머리 속에 떠올리고요, 그저 인간적인 마음으로만 설교를 평가하고 트집잡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 역시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되어진다는거에요.
우리 정산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예배에 바른 태도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우리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예배자들을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주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우리 모두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배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도 이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합당하게 부를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잘못된 예시를 살펴보고 바른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요? 제 3계명이 뭐에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거에요. 그런데 이 계명을 어떻게 지키려고 애썼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그냥 아예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예 부르지 않으면, 망령되게 부를 일도 없기 때문에, 아예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을 하지 않았어요. (ppt 7번그림)
이것이 원래 지금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는 원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요 예전에는 인쇄라는게 없고요, 성경이 전해져 내려오려면 다 손으로 써야만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쓰다가요, 저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면요, 글 쓰는 일을 멈추고, 손을 씻거나, 목욕을 하고 와서 다시 쓴거에요. 그리고 히브리어는 자음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밑에 대충 저 글자의 소리나는 발음을 적으면 저거에요, 이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불렀다고요 안불렀다고요? 안부른거에요. 수 천년 동안 부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어떻게 읽는지 모르게 되는거에요. 그래서 나름대로 번역한게, 여호와다, 야훼다 이런식으로 모음을 붙여서 읽게 된 것이 요즘 우리가 받아들이는 이름이에요.
이 3계명을 대하는 한 가지 극단적인 모습은, 유대인들처럼 아예 부르지 않는 모습인 거에요. 그럼 이 계명을 유대인들이 잘 지킨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의미는, 아예 입에도 담지 마라 절대로 하지 말라라는게 아니라, 반대로 바꾸어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합당하게 부르라라는 거기 때문에, 아예 부르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거에요.
또 한 가지 극단은 뭐냐면, 너무 자주,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을 부르고 주여 습관처럼 외치는 것입니다. 입버릇이나 추임새처럼, 주여, 아버지, 예수님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의 언어를 보면요 이렇게 많이 있어요, 오 마이 갓, 보통 놀라거나 감탄사로 사용하는 저런 내용들 역시 사실은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욕설을 사용하면서 Jesus Christ라는 말을 서스럼없이 사용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선뜻선뜻 주저 없이 하나님이 그러시더라,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더라, 자신만이 마치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처럼, 또는 하나님의 뜻을 다아는 것처럼, 너무 서스럼 없이 말하는 모습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이루려는 사람들, 교회를 앞세워서,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거에요.
저도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보면요, 정규적인 신학과정만 학부 4년 신대원 3년 또 신학석사 2년 거의 10년가까운 세월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성경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거에요. 너무나도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 깊이 파면 팔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거에요. 모든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정말로 깊이 심취하고 파고 들면 들수록 어려워지는거에요.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분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분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럽고 놀라운 분인지, 알면 알수록 겸손한 마음과 경외심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마땅한 모습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고요, 그분의 영광에 합당한 모습으로 그분의 뜻에 확신을 얻을 때가 정말로 매번 그럴 수 있습니까?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는 아주 진지하고도,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거에요. 그러면 어떤 자세가 그분의 이름을 합당하게 부르는 모습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을, 존경하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6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분이세요.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단 하나님을 부르되, 바르게 불러야 합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마음 가운데 항상 하나님에 대하여 주의하고 그분을 부르는 우리의 삶과 태도에 대해 신중히 고려하며 늘 민감하게 그분께 반응하고 진실되게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는거에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첫 문장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그 이름을 부르셨고,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사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외쳤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우리가 살아갑시다. 주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을 합당하게 부르며, 사랑하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한 주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