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계명 - 다른 신과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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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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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계명 – 다른 신과 우상
말씀 : 출 20:1-6절
오늘은 ‘십계명 두 번째 시간 다른 신과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인사할까요. 예수님만 사랑합시다. 하나님만 섬깁시다. 이번 한 주가 우리 주님만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믿음의 삶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 📷 📷 📷 📷 📷 지난 주에는 저와 이 십계명의 원리와 정신에 대해 배웠습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은혜 다음 계명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너희가 이거 잘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천국에 간다라는 의미로 주신게 아니에요. 오히려 구원해 주신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신 후에 주신 것이 십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 십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향이자, 주신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어요. 그럼 이제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요, 그 골자가 이 십계명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십계명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되는겁니다. 이것은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가 있을 겁니다. 오늘부터는 구체적인 각 계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제 1계명입니다.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한번 더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이 계명은 우리가 잘 외우기도 하고 내용도 간단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지키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건 아닙니다. 그런데요 제대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목상의 성도로 살아갈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 계명을 들을 때 우리의 양심이 스스로를 일깨웁니다. 이 1계명은 결코 녹록하게 볼 수 없는 계명입니다.
제 1계명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의 왕좌에는 누구만 앉으셔야 합니까? 하나님만 앉아야 됨을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만 우리의 주인이 되셔야 하고요, 하나님만 나의 인생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인생의 왕좌에 앉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계명이 왜 첫 번째 계명일까요.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첫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을 관통하는 계명이에요. 1계명은 우리가 누구를 섬기며 살아갈 지를 못박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무엇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 되든지, 아니면 가족이 되든지, 아니면 이 땅에 다른 신들이 되든지, 아니면 돈이 되든지, 명예가 되든지, 무엇을 추구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만을 섬기는 사람들일까요? 자신도, 가족도, 이 세상의 것들도 아닌,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 계명을 첫 번째로 말씀하신겁니다.
📷 📷 그런데요 이 계명은 조금 특이하게 들립니다. 이 계명을 긍정으로 바꾼다면요, 너는 오직 하나님만을 네게 두라 라고 말하면 될거에요. 그런데요, 이 계명은 하지 말라라는 부정의 의미로 계명을 주고 계시다는 사실이에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라는 거에요.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왜 부정의 의미로 이 계명을 주시는가?
먼저는 이 계명을 부정의 의미로 주고 계시는 것은, 그만큼 죄인들의 마음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에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늘 죄인들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세상의 안녕과 풍요를 허락해줄 것 같은 것들을 마음에 두려고 해요. 그리고 그것이 시도 때도 없이 획획 바뀝니다. 뭐 인생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말이지요. 돈이 그렇게 해줄 것 같아 그럼 돈을 섬기고요, 돈이 좀 있다, 그럼 명예를 섬깁니다. 아니면 쾌락, 아니면 뭐, 아니면 뭐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너무 세상에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계명을 부정의 명령으로 주시는거에요. 세상에 눈에 보이는 수많은 나의 안녕과 평안을 허락해줄 것 같은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 두 번째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른 신들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 계명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했으니깐, 다른 신들이 있다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분명히 다른 신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출애굽 했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기도 하고요,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도 하고요, 암몬 족속은, 밀곰, 모압 족속은 그모스라는 신을 섬기기도 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시대 때에는,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들이 등장합니다. 황제를 신상으로 만들어놓고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마다 나름대로 다 신을 섬기고 있어요, 우리나라 유교에서는 조상신을 섬기기도 하고요, 불교는 석가모니, 이슬람은 알라, 등등 각기 다른 토속신앙까지 합치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신을 섬기는 모습을 지금도 우리는 살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신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 고린도전서 8:4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이 말씀의 맥락이 뭐냐면, 고린도교회 안에 문제가 생긴거에요,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도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스도인들이 생활하면서 우상숭배 하면 안되니깐, 파가 나뉜거에요, 한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우리가 어떻게 사먹을 수 있냐! 명백한 말씀에 불순종이라는거에요, 한 입장은 뭐냐면, 도대체 우상이 어딨냐! 이 세상에 참신은 하나님 밖에 없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는 입장이 있었어요. 바울도 인정합니다. 우상이라는게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고, 없는거고 하나님밖에 없는거 맞다. 그러나 결론은 그래도 상대방이 시험에 들 수 있으면 그깟 고기 나는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내용 중에 나오는 말이에요. 이 말씀을 근거로 한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존재한다는거에요? 아니에요 실상은 없는 겁니다.
물론 악한 영의 역사, 귀신들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존재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난 사탄의 하수인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사실은 우상이나 신은 아니에요, 피조물들이며, 하나님의 권한 아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됐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이 참신이시며, 그분 외에는 사실상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요, 이런 가짜신들 우상에 대해 엄격하게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니 어차피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실까요? 그만큼 이 죄인들의 욕망이라는 것이, 다른 신들을 통하여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상숭배의 역사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였어요. 하지만 너무나도 자주, 너무나도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민족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에 늘 빠져 살았고요,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고자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등장하잖아요.
📷 📷 📷 왜 이렇게 죄인들은 쉽게 우상숭배에 빠질까요? 하나님과 다른 신들 사이의 경쟁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이미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이유는 다른 신들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마음 때문입니다. 아무 거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서 복을 받으려는 기복적인 본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이 부분에 취약하기 때문에, 경고를 하고 계시는거에요. 로마서 1:21-25절 말씀입니다.
📷 이 말씀은 죄인들의 실상과 세상에 일어나는 만연한 우상숭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마음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모양들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요, 만들어진 것들, 즉 자연과 피조물들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죄인들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알이라는 신은,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은 비, 우레, 열매 맺는 나무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경시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꼭 필요한게 무엇이에요? 바알 아닙니까? 비, 열매 맺는 것 그게 정말 필요하잖아요. 사람들은 농사가 잘되고자 하는 욕망이 바알이라는 신을 만든거에요.
정말로 비와 우레를 주관하며 열매 맺게 하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눈에 보이는 것에 자극 받기 쉬운 사람들은요, 비와 우레 그 열매 맺는 것 자체를 숭배하면서, 눈에 보이는 바알이라는 신을 만들어내는거에요. 그리하여 인간은 그 피조물에 신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형상을 만들어주면서 섬기는겁니다.
📷 여러분 오늘날에는 어떤 신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는 바알 숭배는 사라졌습니다. 예수님 당시 때, 제우스신도, 올림푸스 신전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상숭배는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는거에요. 우리의 욕망을 투여하며, 눈에 보이는 우상 신은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마태복음 6:24, 골로새서 3:5, 빌립보서 3:19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을 더할 수 있습니다. 명예욕, 이성, 자연, 전통, 양심 등등, 요한의 경고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라는 말은 구시대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얼마든지 요즘 시대에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추악한 욕망을 투영한 수많은 것들이 우상숭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일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되는 것처럼, 우리 일상의 모든 일들이 우상숭배와 관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우상숭배에 빠져서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섬기며 숭배하며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며 주인 삼고자 하는 것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 📷 📷 📷 📷 📷 다른 신들이 존재합니까? 우리 예, 그리고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신의 이름은 존재하니까 예라고 답하지만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5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상숭배란 참 하나님 대신 다른 존재를 만들거나 지니고 거기에 우리의 신뢰를 두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면 우리는 웃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마음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에 신뢰를 두려는 죄인의 본성말입니다.
📷 여러분들은 어디에 신뢰를 두고 살아가십니까? 돈입니까? 자식들입니까? 명예 입니까? 높은 자리입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의 삶에 안녕과 평안을 가져다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명백한 우상숭배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한번 더 1계명을 따라해보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 외에 어떤 신도, 우리의 마음에 두어선 안됩니다.
📷 📷 📷 여기서 우리는 선택의 문제를 만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냐, 다른 신들이냐 사이에서 늘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1계명은 신처럼 보이는 수많은 것들과 하나님 사이에 어느 쪽에 신뢰를 두고 선택하며 사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해보겠습니다. 어느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한다고 대답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 선택은, 오직 하나님만 참 신이며 참 주인으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15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게 남겼던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뭐라고 답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여호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들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의 신들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애굽의 신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금송아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돈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비등한 존재로 놓일 수가 없습니다.
📷 📷 📷 📷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선택이 강압적으로 느껴지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계명전에 뭘로 돌아가야해요? 은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은혜 다음 계명이에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들은 인도해 낸게 누구입니까? 참신이신 하나님이시잖아요. 여러분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신분이 누구세요? 우리 예수님이시잖아요. 우리는 이제 예수님만을 사랑하며,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는 마음은요, 강압이나 억지가 아닙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 우리는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와만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그 선택에 계속 머무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성경은 결혼의 관계로 묘사를 합니다. 결혼은 사랑의 언약입니다. 결혼은 사랑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약속입니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을 넘어선 약속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감정이 식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따라서 결코 이 언약은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 📷 이 두 사람이 맺은 결혼 언약은 제 3자가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결혼은 서로만을 남편 혹은 아내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3자가 끼어들 틈이 있어선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과, 그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사랑, 둘만의 사랑만이 존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는 영생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너 계명에 대해 잘알지? 십계명을 말씀해주시면서 이 계명을 잘지켜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건 이미 다 지켰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그래? 그런데 네게 부족한게 딱 한 가지 있다. 네가 가진 모든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와라.
그 청년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성경에 명확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여러분 예수님이 그 청년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것같으세요? 아닙니다. 그 청년은 영생에 대해 관심이 있어보이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잘 순종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꿰뚫어보신 것입니다.
📷 이 젊은이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과 함께 돈도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 둘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와 하나님 사이에는 여전히 돈이 3자로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교인이며 성도였을지 몰라도, 그의 내면에는 다른 신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 전부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이런 사랑을 주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나와의 사랑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라. 그 끈을 놓아버리라, 여러분 이번 한주간의 삶이, 우리의 사랑을 갈구하는 수많은 우상의 홍수시대에서 주님만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분만을 모시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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