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 저주받다(막 15:16-32)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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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군인들의 희롱을 받은후 골고다로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처형은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냥 십자가에 못박힌 것도 모욕적인 일인데, 십자가 위에서조차 예수님은 지나가는 자들과 종교지도자들 심지어 함께 못박힌 강도들에게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16-20절은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희롱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무릎을 꿇고 경배했습니다.
이 당시 자색옷은 사치스러운 옷으로 주로 왕이 입었습니다. 여기서 가시관은 왕관을 상징하고요, 군인들은 마치 왕을 대하듯 예의를 갖춰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불렀습니다. 군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계속해서 때렸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계셨기에 머리를 때리면 가시가 머리를 찌르게 됩니다. 여기서 ‘갈대’는 왕이 지니는 ‘홀’을 상징합니다.
로마군인들은 이같은 행동을 통하여 부지 불식간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왕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왕이 아니라 세상의 시작부터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 왕이되십니다. 그런데 그런 왕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의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몸소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은 사랑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에 온갖 수치와 모멸을 참으시고, 조롱을 견디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과 희생을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예수님의 사랑을 입으로 떠든다 한들 우리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가면서 우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 특별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비와 사랑을 베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감동을 주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21절은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다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가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제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 시몬이 진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자원해서 십자가를 진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십자가를 지도록 지명 받은,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억세게 운나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이날은 가장 재수좋은 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짜증부터 나고 화가 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느냐고 하나님께 따져묻고 싶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고통이 우리에게 은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오히려 복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요?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면서 최후의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기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도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시련과 고통은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복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날수 있고, 이 일들을 통해 믿음이 더욱 굳건해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이길수 있는 맷집도 얻을수 있다면 고난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고마운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 혹시 머물러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이 고난이 나에게 양약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합니다. 먼저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는 분입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부러 참으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깍아내리고, 비아냥대는 모욕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조롱합니다. “그나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역시 비슷한 모욕을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들은 그동안 해왔듯이 예수님의 능력을 폄훼하고 깍아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같이 못박힌 강도들도 모욕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를 보고 믿게할지어다”
이런 모욕을 예수님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것도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정말 짜증나고 견디기 힘든 모욕은 힘이 없어 당하는 모욕이 아닙니다. 내가 충분히 이길수 있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아야 할때 당하는 모욕이 정말 더 자신을 화나게 만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심정을 직접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단번에 심판하실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끝까지 참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모욕과 참으심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중세 시대에는 죄중에 특별히 무거운 7가지 죄를 구별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분노’ 즉 화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쓸데없는 분노로 일을 망치는 일을 죄없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화를 내지 않고 인내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모욕하는 자들과 다투어 싸우지 말고 참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욕하고 우리의 화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참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 처럼 인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하루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가운데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양약으로 삼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를 통해 상대방과 다투지 말고, 오히려 인내함으로 그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감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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