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하나님의 아들(막 15:33-37)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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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극한 고통속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담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을 대신 당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여기서 말하는 제 육시는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를 의미합니다. 즉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중 가장 밝아야 할 날이 어둠으로 덮이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연히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 모스 8:9-10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에는 대낮에 어두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바 있기 때문입니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연히 세상에 어둠이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때 나타난 자연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였고 하늘의 언어였습니다. 첫 이스라엘이 탄생할때 임했던 애굽의 흑암처럼, 하나님 나라 새 이스라엘을 위한 흑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바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선동하고 모욕한 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곧 죽게 될 예수님을 보면서 승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껏 모욕도 퍼부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들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33절은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승리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뜻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제 구시에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치셨다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이 외침은 마지막 절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고, 절망의 부르짖음도 아니었습니다. 이 절규는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우리를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버림을 받았다고 외치실 만큼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크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것은 시 편 22:1절 앞부분인데, 여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 편 22편은 다윗이 고난 가운데 노래한 시편입니다. 다윗은 사람들로부터 심한 조롱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잡아먹으려는 듯 그를 잡아 먹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밤낮으로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 편 22편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22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고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진 고통 속에서 시 편 22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결코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속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기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거나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셔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며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는지 지켜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여 예수님께 마시게 했다는 언급은 시 편 69편 21절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신 포도주는 물로 희석한 포도주 식초를 말하는 것으로 이 당시 값싼 갈증해소음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예수님께 누군가 베푼 자비였습니다.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긍휼을 베푸는 종교적 의무의 하나로 사형수들에게 진통제 역할을 하는 향신료 술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인해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착각했습니다. 아니면 말 라기 4: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했기 때문에 엘리야가 와서 무죄한 자신을 구해 달라고 예수님이 간구한 것으로 오해를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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