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시7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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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5월 1일 수요일
제목 :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본문 : 시편 73편 1-14절
1. 수요예배 NEW 시리즈, 교회 안의 거짓말
1) 서프라이즈 진실 혹은 거짓
주일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 동안 ‘교회를 갈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들던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고 또 시청해 보셨을 겁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스터리한 사건들, 역사나 음모론이 있던 이야기들을 다루며 결국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판별해 내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진실과 거짓을 잘 분별해 내시는지 게임을 해보려 합니다. 먼저, ‘눈물의 여왕에 나오는 김수현은 잘 생겼다.’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의심의 여지 없이 진실입니다.
두 번째는 ‘눈물이 참 많은 이민혁 목사님은 잘 생겼다.’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판단에 이 질문을 맡겨보려 합니다.
2)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이 세상에는 진실도 많지만 그만큼 또 많은게 거짓입니다. 그리고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진실만큼 많이 발견되는 것이 거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희는 수요예배를 통해, ‘거짓’ 시리즈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바로 김형국 목사님이 저술하신 ‘교회 안의 거짓말’ 을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첫 번째 거짓말,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를 가지고 ‘진짜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은 무엇인가’를 다루려 합니다.
2. 혼란의 아삽 :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쟤가 누린다!”
1) 세상‘도’ 인정하는 성공, 나‘도’ 누리고 싶은 성공
종종 간증집회를 듣다 보면 “과거의 못된 저의 모습은 예수님을 만나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니 삶이 회복 되었고, 어려웠던 저의 재정도 부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예배의 자리를 찾게 하셨고, 그 결과 저는 감사하게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며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심기는 간증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결심합니다. “그래! 나도 나도 저 장로님처럼, 나도 저 권사님처럼, 나도 저 집사님처럼 예수 잘 믿고 성공한 삶을 살아야겠어!”
이 결심의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도 인정하는 성공’에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나의 성공을 위해 예수를 그저 도구로 보는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결과가 도출되는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성공’을 싫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월 1,000억으로 살기, 아무런 조건 없이 월 10만원으로 살기. 당연히 월 1,000억을 선택하는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간증을 듣고 ‘예수 믿고 성공하라’는 개념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울림을 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거죠.
그런데 저와 같은 목회자들을 보면 의문점이 생깁니다. 만약 예수 믿고 세상도 인정하는 성공을 누린다는 개념이 진실이라면 목회자야 말로 부유의 아이콘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회자들이 부유하지 못함은 제대로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까? 목회는 가난하다는 말이, 이 시대의 목회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어려워 부유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은 몇몇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 목회자들이 부유하지 않은 겁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은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예수를 믿고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편 73편을 통해 그 복이 무엇인가를 나누려 합니다.
2) 아삽 왈 :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한 나, 고난 중에 있음이 맞나요?"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이 누굽니까? 레위인이자 다윗 왕 시대의 악사였습니다. 그러니 아삽의 주 업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교회로 보면 김민승 전도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삽은 찬양으로 예배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김민승 전도사가 앞에 나와서 찬양을 하는데, 설마 묵상 하나 없이, 기도 없이 이 자리를 준비하고 서겠습니까? 아삽 역시 당연히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주어진 시간을 준비해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삶 가운데 평안이 임하길 기대했으나 정작 본인이 처한 환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절입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아삽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니, 예수는 내가 믿고 왜 평안은 쟤가 누리는거지?” 본문을 계속 보면 아삽이 딜레마에 빠질 법 합니다. 아삽 입장에서 평안을 누리는 쟤네는 어떤 존재입니까? 6절부터 9절을 보니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아삽이 본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교만과 강포함과 욕심과 악함과 거만함과 거짓이 끊임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누리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4절,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흔히 우리는 주무시다 돌아가심을 ‘호사’라 표현합니다. 아삽의 입장에서 이들은 호사를 누리는 겁니다. 그러니 아삽은 충분히 딜레마에 빠져 이렇게 말함이 자연스럽습니다. 13절,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결국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한 아삽을 보며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고생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평안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삽이 처한 환경은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까지 징벌을 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3. 아삽의 깨달음 : “아! 이미 나는 복을 누리고 있었군요?”
1) 성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빛을 발견하다
지금까지의 내용만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삽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복’이었음을 발견합니다. 17절 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아삽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깨달게 됩니다. 성소, 곧 예배당 아닙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이 자리에 나아오시면서 깨달은 점이 있으십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예배당에 들어온다고 깨달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럼 아삽이 들어간 성소는 어디일까요? 그는 어디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됩니까? 그가 들어간 성소는 곧 ‘하나님의 임재’ 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의 결말은 곧 멸망과 공포
그리고나서야 깨달게 됩니다. ‘내가 연약한 존재구나. 나는 고난도 역경도 평안도 평화도 어느 것 하나 컨트롤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구나.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이해할 수 있고, 아니 눈에 보이는 것마저도 다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비루한 존재구나’를 깨달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자들이 걷게 될 결론도 깨달게 됩니다. 18절부터 20절 내용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이 구절을 두고 담임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다 불현듯 아엘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좀 걷고 뛴다고 욕심을 좀 냅니다. 특히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려고 하는 거지요. 올라 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 못올라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하지요.
아빠 입장에선 걱정도 됩니다. ‘미끄럼틀을 못올라가네?’ 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친다거나 옆으로 떨어져 낙상사고가 날까 걱정이 큽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어 올라오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파멸 가운데 던져지도록 하셨습니다. 아삽은 이 사실을 깨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삶이 맞이하게 되는 결말이 절망임을 말입니다.
3)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복이다
그리고 아삽은 깨달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멸망과 공포가 아닌 다른 결말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3절과 24절 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이 내 오른손을 붙드사 나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심보다 더 큰 축복이 있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 메세지가 체감적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좋은 메세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체감이 크지 않기에 여전히 우리는 목 마릅니다.
그래서 아삽은 복의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갑니다. 26절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아삽은 하나님이 나의 손을 붙드심에 이어 하나님이 내 몫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몫’을 원어로 볼 때 ‘전쟁이 끝나고 나누어 가는 분깃’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는 곧 모든 싸움 다 이기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전리품을 우리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 나눠주고 싶으신 겁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 누구 누구야, 내가 널 지켜줄게. 내가 너의 필요를 채워줄게.’
우리게 다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아삽은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진정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세상이 요구하는 권력과 권세, 명예와 성공 또 부귀영화에 있지 않음을, 우리가 진정 누려야 하는 복은 이런 복이길 28절을 통해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복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라는 말이 틀립니까? 틀림은 없습니다. 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복을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임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임을 가르치고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 자체가 복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믿었기 때문에 물질이 주어지기를, 환경과 상황이 압도적으로 바뀌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복이며, 하나님을 우리 삶에 얻었음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복이어야 합니다.
4. 정리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내 주변이 바뀌지 않습니다. 고난이 사라지지 않고 내가 겪는 아픔과 질병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고난이 사라지고 질병이 치유되고 원하던 것을 얻어야 내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믿고 아는 것 자체가 복이었음을 말입니다.
복을 받으려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이미 받은 복에 자족하며 복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복 아니겠습니까?
또 ‘그래, 그래야지.’ 생각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아는 것에서 결코 끝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계속해서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요?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누린 것처럼, 우리도 예배하고 기도하며 깨달아 누려야 합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는게 우리의 신앙에 있어 옵션이 되면 안됩니다. 목숨을 다해 말씀 읽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내가 받은 복을 계속해서 깨달아 알게 되고, 복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제대로 믿어서 내 평생에 가장 복된 일이 예수님을 만난 것임을, 내 평생에 가장 잘 한 일이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는 것이었음을 날마다 묵상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 내 평생에 최고의 복,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복은 예수를 만난 것, 예수를 주님으로 섬긴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함께 기도합시다. 내 안에 연약함 때문에 주님보다 세상이 말하는 복을 추구했던 지난 나의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아는 복에 자족하는 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예수를 믿는 자로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사수하는 자 되게 하소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이름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 되게 하소서. 그렇게 주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복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2.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후렴)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후렴)
- 내 삶이 간증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나의 삶이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찬송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를 통하여 복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음이 선포되고 간증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과 주변에 복음이 필요한 지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함께 기도합시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