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사역
이길수
컨퍼런스 - 선교적 교회의 소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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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에 대한 관점은 각기 삶과 인생에 대한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관점으로 일하느냐는 정말 다르다.
대로우 밀러 - 라이프워크
오늘날은 성속의 분리가 심각하다.
우리가 우리의 일터를 생계의 수단, 자아 실현의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갈 수 없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것이든 다하고 싶은 열망과 사모함.
먼저 아침부터 주님을 찾으라.
창조 - 타락 - 구속
창조
창조의 동역자
1)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물질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를 ‘그가 하시던 일’이라고 표현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일은 저주가 아니라 선한 것이다.
2)하나님은 창조의 동역자로 인간을 일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결혼 명령이다. 창조 명령.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경작하고 지키라는 말이다. 관리하고 돌보는 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이 땅을 선하고 완벽하게 지으셨지만, 더 개발해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맡기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일을 통해,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 땅에 실현하는 대리 통치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준엄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인간의 사명이다.
또한, 이것은 거룩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cultivate -> culture
이 사명은 정말로 복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따를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삶의 전 영역이 주님께 드려진 자.
2. 성경적 세계관에서 보는 일의 의미
1)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아바드)와 보호(샤마르), 정복과 통치
->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하다.
원형적 예배는 삶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을 소위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성속의 분리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행해지는 모든 일은 거룩한 목적이 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해야 한다. 눈 가림하는 수준으로 하면 안 된다. 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기업의 상도 주님께서 주신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일의 현장을 밥벌이로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일이 저주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일은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통로이다.
농부, 의사, 교사, 주부 등
3)일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다.
일은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창조주께서 낙원에 일을 두셨다는 것을 보라!
3. 타락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관점의 왜곡이 생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노력과 자기 의지로 살아가려 하며, 일을 하려고 함.
타락의 결과로 일이 타격을 입었다.
형벌로 인해 일터 환경이 변화됐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노동에 대한 저주가 아닌, 노동 환경에 대한 저주이다.
이로 인해 일에 고통과 수고가 동반되게 되었다.
타락으로 인해 일을 밥벌이 정도로 축소, 왜곡시켰다.
일의 소명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일의 소명이 사라진다.
즉, 일은 그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위한 수단, 밥벌이나 명예를 위한 수단이 된다.
너무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해 있다.
어디에서 진정한 생명을 누리는가?
우리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아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일을 통해 양식을 공급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우선이 되면 안 된다.
일터에서 우리는 자신을 혹사시킨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착취한다. 정당한 대우와 마땅한 보수를 주어야 하는데, 자기 목적을 얻는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대우한다.
밥벌이의 삶은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살 수 없다.
4. 회복
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일해야 한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모든 창조 세계가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고, 그 안에서 통일을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의 주인이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나님의 백성은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코람데오는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사람은 삶 전체를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 아래서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