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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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베드로는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 바깥에는 당연히 거짓이 주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 바깥에서는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한 가지 기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 거짓인지 진짜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인터넷에서 재밌는 현상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만 하더라도 유명 브랜드를 너무 좋아했었고, 혹시라도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낸 짝퉁을 가지고 있으면 챙피하게 생각하곤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유명 브랜드를 패러디 한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짝퉁을 더 즐겨찾는 현상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이키와 나이스, 푸마와 파마 …)
이런 것들은 재미로 넘길 수도 있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경계를 흐리고, 가짜도 문제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우리의 삶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삶에 관한 문제라고 해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저 북한 사람들을 보세요. 김정은 정권이 자신들을 위한다고 속고 살면서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이단에 속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평생을 속고 살아오다가 나중에라도 진실을 알아도 돌아서지 못합니다. 자신의 평생의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자신들의 과거의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원에 관련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또한 가짜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짜를 추구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짜를 진짜라고 속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이단에 대해서도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들은 단지 종교 권력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사는 강자들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정통이라는 것들은 단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역사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단 사상은 사회적 약자로서 배제되어 왔으나, 이제는 그들의 권리와 의도들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오늘 날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흐름 속에서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반영한 것입니다. 모든 권위를 어떤 특별한 권력의 결과물이라고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견 어떤 부분에서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너무 쉽게 판단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단에 대해서는 언젠가 금요 찬양예배 때에 또 다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단지 교회의 지도자들 목사나 장로들만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거짓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따르라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자,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기보다는 자기 제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자기 제자를 만든다면 좀 낫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추종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자기 추종자를 만든다는 것은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을 조종하면서 자기가 무엇인가 된 사람인양 으스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양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무엇인가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거짓 선지자를 주의하는 것과 내가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것을 동시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거짓 선지자들도 착하다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secritly, 가만히, 슬그머니
대놓고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이단의 뜻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것입니다. 아까 말한 짝퉁과 같은 것입니다. A급 짝퉁은 진품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진품보다 짝퉁이 품질은 더 좋다는 말도 있기도 합니다만...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심스럽습니다. 금방 탄로가 나서 배척 당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스럽고 심지어 착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위장한다고 바울이 말합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두 번째 거짓 선지자들은 주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이 말을 해석하는데에는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주라고 부르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신분의 변화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정한다고 생각하나, 내 삶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사실 이 삶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라고 할 때에 저도 거기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구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주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삼고자 하나, 자주 넘어지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마음으로 주를 주인으로 삼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제멋대로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호색하는 자들입니다.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들입니다. 당시에 성에 관련한 기준은 오늘 날과 조금 다르기는 했습니다. 혼외에 성적으로 문란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있는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아니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도 했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계명 7번째 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적인 타락을 말씀하시는 것이었고,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위하여 무분별한 성적 욕구를 추구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적인 타락은 다른 종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고,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것과 구분되어진 진리의 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방을 받게 만듭니다. 예수 믿는 무리들도 결국 똑같구나. 처음에는 뭔가 달라보이는 듯 했으나, 결국은 똑같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지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방입니다.
그들은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 지어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을 위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듣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말입니다. 항상 자기가 칭찬을 받고 높임을 받는 말들을 하는데, 더우기 지어낸 말을 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거짓말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예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말하거나, 있던 일을 없던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작은 일을 크게 말하거나 큰 일을 작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들입니다.
<기도제목>
토랜스 선한목자교회가 말씀의 반석 위에 올바르게 세워지게 하옵시고, 모든 성도가 말씀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리더십을 위한 기도: 성령충만하여 바른 말씀을 전하며 범사에 본을 보여 충성하게 하옵소서.
고난과 시험 중에 있는 지체들을 위한 기도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교회 성도님들의 각 가정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주시고, 화목하고 복된 가정들이 되게 하옵소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이스탄불 아프간 난민교회 조베이르 사역자, 무지개 선교회 이지혜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