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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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22–30 (NKRV)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를 작사한 죤 뉴톤 목사님이 우리가 천국에 가면 3가지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천국에 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없다는 것과 둘째는 천국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 천국에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있다는 것 에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 받는 사람이 적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아마 이 사람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지금 각 성 가마을로 다니면서 분명하게 심판을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여러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그는 “구원받는 수가 적습니까?”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 질문에 “적도 많다”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구원받는 수가 적은지 많은지 궁금해 하지 말고 구원받기 위해 힘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안에서 우리는 ‘구원 받는 자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7:13–14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러기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원받는 사람이 적은지 많은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구원받는 무리 안에 있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만찬가지 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건지 적은 수가 구원을 받을건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 내가 구원받는 무리에 함께 있는지 아닌지를 더 궁금해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침몰하는 배에 빠져 있는데 우리를 구해주러 온 소방대원에게 “몇명이나 구조해주실건가요?” 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급한건 내가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것이 급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힘쓰다’ 번역된 원어의 뜻은 ‘최선을 다하다” 이다. 당시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만큼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본문 24절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 원한다고 다 구원 받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첫째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든 이유는 그 문이 항상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 문이 열려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 25절을 보면 주인이 문을 닫는다. 그리고 한번 닫힌 문은 절대 다시 열리지 않는다. 문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이 문이 달려 있는 집의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허락해야만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다. 본문 25-27에 집 주인은 사람들을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주 번이나 반복해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주인이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문 밖에 있는 사람이 억울해 보인다. 왜냐하면 집주인과 함께 먹고 마셨고, 길거리에서 가르쳐주시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모르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매순간 확인해야 한다.
당시 유대인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민족이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어떤 민족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혈통이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마태복음에도 나온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고 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직분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내가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내가 많은 헌금을 해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이 있기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순종은 다른 말이 아니다. 같은 말이다.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순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다. 예수님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셨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만해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를 위해 그 모진 핍박과 조롱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순종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꺼이 순종하셨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 길이 예수님이 가신길이고 그 길이 좁은 문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용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삶인 것이다. 이 삶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려 할 때, 다시말해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 갈 때 주님께서 힘도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도 깨닫게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 은혜를 맛본사람은 그 길을 포기할 수 없다.
주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주님을 아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그 믿음이 증명이 되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주님안에 거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누리는 정말 행복한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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