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1 / 사사기 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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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1-28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반을 구원한 위대한 사사 입다의 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 강을 중심으로 해서 요단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겼을 때 요단 동편과 서편 모두 이방 민족의 공격으로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단 동편 사람들을 길르앗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암몬 족속들이 쳐들어 와서 18년 동안 약탈을 하고 착취를 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가 살던 땅에서 떠나라고 통보를 한 것입니다. 이때 길르앗의 장로들은 과거에 기생의 아들이라고 해서 자기들이 추방했던 입다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자기들의 머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입다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청빙합니다. 여기서 길르앗의 장로들이 잘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을 찾아내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그를 부른 후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무조건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기들을 쳐들어온 모압을 물리칠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다 정복할 정도까지 이기게 된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1–3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의 아버지의 이름도 길르앗이었습니다. 아마도 길르앗 지명에서 그 이름을 따 온 것 같은데 길르앗 땅에 오래오래 살려고 그런 이름을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다의 아버지는 그렇게 행실이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길르앗은 기생과 관계해서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리고 길르앗의 본 부인 밑에서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르앗의 본처의 소생들은 그곳의 장로들과 의논해서 입다를 길르앗 땅에서 영구 추방해버렸습니다. 그들이 입다를 내어 쫓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입다 같은 기생의 아들이 이스라엘 안에 있으면 이스라엘의 물을 흐린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단지 기생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 집에 있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집에서 쫓겨난 정도가 아니라 길르앗 땅에서 쫓겨나서 다시는 이 땅에 들어 올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 땅 돕이라는 곳에 가서 살았는데 이곳은 북쪽에 있는 수리아 땅으로 생각이 됩니다. 입다는 그곳에서도 특출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잡류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었는데 이유는 입다가 아주 큰 장사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잡류’라고 하는 것은 불량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입다처럼 사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우리는 전혀 어떤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얼마든지 본부인의 아들들이 서출을 싫어해서 내어쫓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입다는 서출도 아니고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아들을 집안에 두지 않고 내어쫓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의 성격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엄청난 우상숭배와 입다의 너무나도 분명한 여호와 신앙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나 아스다롯 신도 부족해서 시돈 사람의 신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나 모압이나 암몬 사람들의 신까지 섬겼습니다. 입다의 아버지 길르앗이 기생과 관계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기생은 바알 신전의 기생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전체가 엄청난 우상숭배와 음란에 빠져 있었는데 입다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분명한 여호와의 신앙을 붙들고 있었고, 사실 입다의 능력은 그의 믿음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입다는 돕 땅에 갔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고,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입다는 성장 과정에서 형제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괄시와 천대를 받는 가운데 마음이 가난하여져서 철저히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입다를 만나주셨고 놀라운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입다를 추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겉으로는 사생아인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내어쫓음으로 이스라엘을 도덕적으로 정결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기심이요 질투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은 바알이라든지 다른 이방의 신을 섬기는데, 입다는 서출이요, 기생의 소생이었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시기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정통 교회가 타락했을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정통 교회가 타락했을 때 평신도들 중에서 누군가가 너무나도 복음적이며 성경적일 때 그들은 그를 두려워합니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것을 두려워해서 말도 되지도 않는 오명을 뒤집어 씌워서 교회에서 내어 쫓아버립니다.
그러면 입다가 돕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그는 그곳에서 정말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빋는 사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결국 그 소문이 길르앗까지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규모가 아닌 것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성경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믿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관계를 붙들고, 믿은 경륜이나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암몬 족속들이 처음에는 약탈을 하고 탈취를 하더니 이제는 아예 길르앗 땅을 내어놓고 떠나라고 통보를 하나 것입니다. 이제서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길르앗 사람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길르앗 땅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자기들에게서 암몬 족속을 물리칠만한 용사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키운 사람들은 자기 말만 잘 듣는 피라미들만 키웠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입다를 내어 쫗은 진짜 이유는 바로 그의 바른 신앙때문이었습니다. 기생의 아들이 너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보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가 기생의 아들이기 때문에 내어쫓은 것은 오직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사를 통하여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온갖 더러운 우상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고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먹칠할 때 교회에서 추방되어 가정이나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던 소수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일으키셔서 교회를 완전히 갱신하시곤 하셨습니다. 루터도 그리하였고, 존 웨슬리도 그리하였습니다.
아마도 모든 상황이 정상적이었다면 입다는 돕 땅에서 잡류들과 한평생 어울려서 살다가 인생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그곳에서 끄집어내셔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되게 하셨습니다. 4-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4–6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하나님께서 이런 위기 가운데서 장로들로 하여금 입다를 생각할 수 있게 하신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소의 길르앗 장로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그들에게 바른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믿음이 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은 반드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더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쟁은 사람 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장수 한 사람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들이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안 것이 하나님이 세운 한 사람만 있으면 어떤 전쟁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길르앗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돕까지 입다를 찾아갈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돕 땅에서 입다의 소문을 길르앗까지 퍼졌던 것 같습니다. 돕 땅에서 입다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그곳에서 장수였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무도 임명하지 않은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간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길르앗 장로들이 돕에서 입다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께서 입다를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한 것 같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자기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대 이것이 입다에게 얼마나 의외이고 충격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위기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사람을 등장시키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길르앗 땅에 위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길르앗 사람들은 영우너히 입다를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암몬 자손들이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려고 하니까 결국 준비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입다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정도로 준비되면 이런 위기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남들은 놀고 자기 멋대로 살 때 하난미 앞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야 큰 용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한 일을 할 때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갈까요? 산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 있는 그것만 보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배를 안전하게 이끌어갈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야 하고 그런 가운데서 가장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길르앗 로들이 자기를 찾아와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 준다고 말하여도 믿을 수 없는 일인데, 자기에게 장관이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이 한순간에 입다의 눈앞에는 지나간 모든 읻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기생의 아들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복수밖에 몰랐습니다. 그는 힘으로 다른 아이들을 두들겨 패면서 분노를 풀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더욱더 핍박은 심해졌습니다. 더욱이 길르앗 장로들이 부르더나 장로들의 결정이라면서 너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쫓아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쫓겨나 돕 지방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지냈습니다. 지금 자기를 쫓아낸 바로 그 장로들이 자기 앞에 찾아와서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입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는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왜 쫓아내었던 자기를 또 찾아왔느냐?’고 다시 한 번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대답은 동일하였습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8–9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기서 우리가 입다에게서 보게는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길르앗의 장로들의 부름이 진정한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여러번 걸쳐 확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장로들에게 과연 자기가 암몬을 이기면 이제는 더 이상 자기를 기생의 아들이라고 버리지 않고, 머리를 삼겠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이들의 부름이 진정한 하나님의 부름이라면 암몬 자손들도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그들이 대답하기를 ‘이긴 후에도 한번 생각을 해보겠다’든지 아니면 ‘그 문제는 일이 끝난 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잘한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돕 땅에서 입다에게 나타난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 소문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곳의 입다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문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 군데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면 그 부흥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돕과 길르앗은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부흥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부흥이 일어나고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르앗의 장로들이 잘한 또 한가지는 사실 입다는 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자격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직함이 없는 사람이었고, 잡류들의 우두머리였고 오히려 자기들의 기생의 자식이라고 해서 추방을 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입다를 쓰시는 것만 믿고 자기들의 머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길르앗을 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 장로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들이 입다를 발탁했다고 무슨 권리를 주장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장로들이 할 일은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그를 찾아내면 그에게 전권을 위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일단 사람을 부르고 난 후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자기 뜻대로 해달라고 하면 길르앗은 스스로 망하는 것입니다. 입다가 묻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일단 내가 버리가 되고 난 후에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약속하니까 입다는 어떻게 합니까?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보고합니다.
이제 입다는 암몬 사람들과 싸우기 이전에 왜 그들이 길르앗 땅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지 사신을 보내어 길게 설명합니다. 옛날의 전쟁은 명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명분에서 밀리면 한 수 밀리는 것이었습니다. 입다는 암몬 족속의 왕에게 그들이 길르앗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잘 설명합니다. 12-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12–13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암몬 왕은 아주 품위 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올라와서 내 땅인 이 길르앗 땅 알논에서 얍복까지의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애굽에서 올라왔고 우리는 여기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여기에는 원래 너희 땅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좋게 말할 때 순순하게 내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입다의 풍부한 성경 지식은 쏟아지고 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애굽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14절부터 보시면 입다는 몇 가지로 암몬 왕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경계선인 가데스까지 왔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에돔과 모압에 길을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억지로 길을 우회하여 아주 먼 길을 돌아서 요단 동편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길르앗 땅의 왕인 시혼에서 길을 부탁하니까 그들은 거부했을 뿐 아니라 군사를 끌고 나와서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은 암몬 사람의 것이 아니고, 아모리 사람들의 것인데 전쟁으로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것을 적용시킵니다. 너희들도 그모스 신을 믿는데 그모스가 싸워서이기게 하면 그 땅을 가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이기게 해서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결론을 내립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물론 암몬 왕은 억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길르앗 땅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입다가 암몬 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이 긴 설교에 가까운 반박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암몬 왕이 입다의 말을 듣고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입다의 이 말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한 말이었습니다. 입다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하여도 그것 때문에 암몬이 하나님께서 주신 길르앗 땅을 빼앗으려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생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문제이지, 여기에 암몬 왕이 끼일 자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연단을 받아서 사글세 집에서 살고, 변변한 월급도 받지 못한다 하여도 그것 때문에 악한 자가 그의 재산이나 소유를 넘어 볼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괜히 누군가가 약하게 보이면 그를 집어 삼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리 연약해져 있고 낮아져 있어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들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넘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격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은 암몬 왕을 부추기고 있는 악의 세력에 대한 선포입니다. 악의 세력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교만하고 혈기 있는 자들을 충동질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의 역사가 회복되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겸손을 회복하고 신령한 눈을 되찾아서 입다를 데려왔을 때 이들은 이미 회개의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입다는 이 사실을 선포함으로 악의 세력을 내어 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회복되고 있을 때 악의 세력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악의 세력은 우리가 무지하고 혼미한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악의 세력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악의 세력은 우리가 무지하고 혼미한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설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역사가 회복되면 악의 세력은 힘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겸손을 확인해 보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로부터 책망 받는 것을 싫어했거나 혹은 그의 신분 때문에 그를 거부했다면 그들은 도저히 소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겸손한 체 하다가 입다를 이용하고 암몬 사람들이 물러 간 후 그를 다시 배척했더라면 길르앗은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게 하실 때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 안에 있는 불신앙과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척하면 안 되고, 철저하게 맡기고 입을 다물어야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입다는 출신 때문에 대단히 불행한 성장과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천대를 받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는 더욱더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그는 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울 때 준비된 사람은 입다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는 준비되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길르앗 사람들은 그를 내어 쫓았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성장 과정에서 많은 아픔과 상처를 겪은 분이 계십니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천덕꾸러기로 살아왔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결국 미워하던 사람들까지 다 하나 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길르앗 장로들이 겸손을 되찾은 것이 그들이 사는 길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위신이나 체면을 생각했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했을 때 무엇이 보였습니까? 입다라는 ‘히든카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교만했더라면 이런 기생의 아들이 눈에 보였을리가 없습니다. 더욱이 한때 그들이 미워하여 쫓아낸 자가 눈에 들어 올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겸손을 테스트 해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만 겸손하면 안됩니다. 이번을 기회로 해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겸손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섬기면 되지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는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확증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은 기질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과 같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족들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겸손하게 되어 실제적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길르앗이 무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지 않게 해야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이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수도승처럼 사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지만 그런 중에도 건질 것은 건져야 합니. 길르앗은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포기해야지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절대로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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