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중에도 기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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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은 꽃 주일 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인 아이들을 축복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날 입니다. 오늘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안전하고 인격이 존중 받고 사랑 받는 환경에서 자라야 합니다.
아직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많은 부분이 부족하기에 실수도 용납 해주며 성장 할 수 있게 기다려 줘야 하고 가르침과 돌봄이 필요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어떤가 보니,
이삭, 요셉, 다윗, 요나단, 사무엘 등 아이들의 환경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부모의 보호를 받거나 사랑의 돌봄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의 어린 시절은 어뗐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어김 없이 부족한 어른으로 자랄까요?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결핍이 꼭 좋지 않은 요소 일까요?
오늘 성경을 통해 아이들이 훌륭한 인품과 신령한 영성으로 자라나는데 필요한 환경과 결핍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 볼때,
신앙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대해 큰 깨달음과 은혜가 있으시길 축원 합니다.
외적내적 결핍
외적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
결핍과 가정의 회복

1. 외적, 내적 결핍

오늘 본문은 사울왕과 그 아들 요나단의 이야기 입니다.
두 캐릭터는 공통의 환경 속에 아주 상반된 성향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그 왕의 왕자, 왕족 이라는 공통의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풍요로운 궁정의 삶을 살고 있고
사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 달리,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소위 잘나가는 지도자이고 왕가 였습니다.
사무엘상 14:47 NKRV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사무엘상 14:48 NKRV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백성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왕이 있을까요?
사울왕은 백성을 귀히 여기고 언제나 백성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후계자인 요나단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를 도와 외적을 무찌르러 전장에 나가기를 꺼리지 않는 용맹하고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왕위를 계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왕자였습니다.
사무엘상 14:14 NKRV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이렇게 사울과 요나단 부자는 외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성군으로 칭송을 받고 왕위계승 문제도 해결이 되면 남은 것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외적인 많은 좋은 조건 중에도 사울왕이 항상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의 외적인 완벽함에 비해 내적으로는 결핍된 것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사울왕은 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전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사울왕은 용모가 빼어나고 안정적 가정 환경에서 자란 준수한 청년 이었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때 까지만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의 내면의 문제가 붉어지기 시작 합니다.
재임 2년 차가 되서야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재단을 쌓습니다.
사무엘상 14:35 NKRV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어떨땐, 백성의 말에 따라 행동 합니다.
또 어떨땐, 왕으로서 신중하지 못하고 이해 할 수 없는 맹세와 명령을 내립니다.
사무엘상 14:24 NKRV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전쟁 중에 병사들에게 금식을 선포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명분도 없고 신앙적인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권위를 뽐내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4:27 NKRV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이 명령을 듣지 못한 요나단은 의도치 않게 사울왕의 명령을 어기게 됩니다.
자신이 내린 명령을 자신의 아들이 먼저 어기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갑자기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의뢰 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제서야 하나님께 재단을 쌓고 여쭙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14:37 NKRV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자, 이제는 사울왕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누구 잘못인가 투표를 하자고 제안 합니다.
어차저차 하여, 투표 결과 최종적으로 왕과 요나단만 남고 백성들은 요나단을 죽이라고 결정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사무엘상 14:44 NKRV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울의 무엇인가 잘못된 리더이고 주관도 없고 신앙관도 어딘가 잘못되고 더욱이 아들에게는 본이 되는 아버지는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왕족이라는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하여 외적인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지만, 가장이며 아버지인 사울의 모습은 일종의 “롤모델 결핍”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요나단과 같이 어린 시절의 결핍을 경험한 인물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나단과 신앙 안에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게 되는 다윗도 마찬가지로 잘난 7명의 형들이 있었고 막내인 다윗은 어린 나이에 항상 들에서 노숙을 하며 양을 키워야 했습니다.
가정의 보호와 돌봄면에서 많이 부족한 환경을 경험 합니다.
사무엘은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서 부모와 집을 떠나 엘리 제사장에게 맡겨 집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만 형들의 질투로 부터 보호 받지 못합니다.
이 성경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결핍이 있었습니다.
부모라면 내 자식에게 부족함 없이 교육의 기회와 좋은 환경을 제공 하고 싶습니다.
내 힘이 되는 한 최선의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입니다.
부모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한국에서 길을 지나가는 어린이들을 붙잡고 학원 몇개 다니냐고 물어보면 10개 가까이 다닌다고 대답합니다. 10 넘게 다니는 아이들도 찾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아빠 보다 자녀가 용돈이 더 많은 집이 대부분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있을 정도 이고
이렇게 자녀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들고 큰 희생이 따르다보니 자녀를 아예 갖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이 정말 이런 것들 밖에 없을까요?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이 이런 외적인 이유들과 등가로 교환할 만큼 가치 없는 일일까요? 그저 희생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찌되었건 이렇게 까지 희생하여 키운 아이들이 다 잘되다는 장담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성공한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요?
외적으로는 남들 하는 만큼, 남들 보다 풍요한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어떤 결핍이 있는지 살펴 볼 여유는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적으로 영적으로 잘 자라고 있는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해 보아야 합니다.

2. 문제는 결핍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보니, 문제는 외적인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나단은 이런 롤 모델의 부재와 더 나아가 아버지의 비신앙적인 모습 속에서 요나단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였을까요?
요나단은 그야말로 모범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전투에 임할때도 하나님에 대한 옳바른 신앙을 가지고 임합니다.
어려서 부터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을 저버리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갈때, 특히 대입을 앞두고 많은 유혹을 겪게 됩니다.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교회를 간다는 것은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대학교에 가면 여러 모임과 술자리 그리고 취업을 위한 공부 등으로 교회 청년회 모임에 한 번 두번 빠지다가 영 신앙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처절하게 신앙이 필요한 순간에 신앙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도움을 받으며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을 치기 위해 3000명을 거병 합니다. 2000명은 자신의 군대로 1000명은 요나단의 군대로 나눕니다. 주석에 따르면,
14.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분명 절망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저하되었고, 북쪽 동지들과 단절되었으며, 수천 대의 병거와 말, 우수한 무기를 가진 병사들을 보유한 가까운 적에게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습니다.
전세가 불리하고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인 이때 전세를 역전 시킬 전환점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과 무기든 소년 한 명을 데리고 블레셋을 치러 나아갑니다.
사무엘상 14:1 NKRV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면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사무엘상 14:6 NKRV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신앙적으로나 왕으로서나 그의 아버지는 좋은 롤모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성정이 온화 하나, 또 한편으로는 강단 있는 담대한 신앙인으로 자랐습니다.
다윗도 마찬 가지 입니다.
밤마다 따뜻한 부모님 곁이 아닌 들에서 양들과 잠을 청해야 했지만 이 아이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아이었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거나 부모를 원망하며 지내지 않았습니다.
양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맹수로 부터 그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돌팔메를 연습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아이였지만 영적으로 침체된 엘리를 대신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역할을 감당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맡겨진 일 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수행하였고 결국은 애굽의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성품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단단함이 이런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내적 단단함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조성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난리의 소문과 전쟁이 끊임 없이 발생 합니다. 이럴때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들 입니다. 내면의 단단함과 꿈에 대한 열정을 가진 아이들은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 하지 않습니다.
우간다에 사는 데니스는 야구선수가 꿈입니다. 그래서 종이글러브, 폐 타이어와 직접깍아 만든 야구베트 그리고 벽돌을 던지며 열심히 훈련한 결과 실제로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들의 도움으로 메이저 리그 드레프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19타수 무안타 3볼넷 이었습니다. 저는 왠지 야구선수 데니스도 물론 기대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데니스의 미래가 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소망을 갖고 최선을 가진 강한 의지는 교육이나 훌륭한 부모가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진정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은 서로를 돕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불안과 불행을 종식 시키는 방법은 오직 사랑이라고 역설 합니다. 이 말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외침과도 일맥 상통 합니다.
프롬은 상대방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보살핌, 상대에 대한 ‘책임’과 ‘존경’을 참된 사랑의 요건으로 들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사가 되기전에, 판검사가 되기전에 돈 잘버는 사업가가 되기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 더 나아가, 예수 잘 믿는 성도가 되라. 사랑하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 입니다.

3. 결핍과 가정의 회복

이 모든 교육의 시작점은 바로 가정 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청지기 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이 땅에 보내졌지만,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 어떤 부모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 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 하면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듯, 훌륭하게 자라주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 세대는 생각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내 속에서 낳다고 다 나와 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그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 주고 성장 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과 잘 연결 시켜주는 일 입니다.
요나단도 다윗도 사무엘도 요셉도
모두 하나님과 동행 하였기에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나 다윗 처럼, 신앙생활과 사회적 성공이 꼭 비례 하는 것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긴밀한 연관성은 있는 것은 분명 합니다.
아이를 신앙 안에 키우면, 또 부족한 중에라도 신앙 안에 자라면, 분명 쓰임 받기 때문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부모로서, 또 교회가 아이들의 신앙 교육에 더 열심을 내고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가정의 신앙교육, 인성 교육의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더 이상 학교에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맡기기에는 공교육은 너무나 멀리 가버렸습니다.
사회도 마찬 가지 입니다.
얼마전에 디즈니사의 한 임원이 5살 짜리 트렌스젠더 아이와 7살 짜리 범성애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이민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거의 강제적으로 동성애 교육에 찬성해야 하는 사회분위기도 한몫 했다고 합니다. 펜타닐 이라는 냄새만 맡아도 출동한 경찰이 기절할 정도의 맹독성 마약이 미국 전역을 점령 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세상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고요. 말도 안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더 이상 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그들의 신앙교육을 미룰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먼저 각성 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우리 함께 공부한
예수님의 삼직
선지자, 제사장, 왕의 역할을 성도들도 이 시새대에 수행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선지자로서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고 자녀를 위해 대표해서 기도하고 왕으로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옳은 길로 이끌고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 해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하나님 떠나지 않게 잘키워서 구원 받게 도와주는 역할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심고 물만 줘도 저절로 생명이 움터서 싹이 나듯, 잘 관리해주고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병충해를 막아주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우리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제사장으로서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주고 동시에 자녀들을 대표하여 기도하고 왕으로서 옳은 길을 알려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것으로 그들을 잘 인도해주면 하나님께서 분명 그들을 옳게 인도하시고 생명을 주고 구원 하십니다.
교회는 이 일을 목숨 처럼 여기고
가정의 부모들도 교회와 연합하여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도로 헌신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결론

가정 환경이 많은 면에서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님이 헤어지거나, 가정 형편상 조부모 손에 자란 분들도 있습니다. 넉넉지 않아 남들 다 다닌 학원 한번 못다녀보고 악기 하나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도 여러분은 가장 귀한 것을 소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 입니다.
오늘 혹시라도 성장 과정에서 결핍과 어려운 형편 때문에 상처 받고 아픔을 겪은 분들이 있다면 오늘날 내가 주님을 믿고 천국행 예약된 인생 이라는데서 가장 큰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잘 가르치며 가장 중요한 신앙을 지키도록 노력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자녀로서 지난 날의 아픔과 눈물과 상처를 보듬어 주시는 주님을 만났다는데서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만약 자녀가 있다면, 외적인 결핍에 더 이상 미안해 하기 보다는 그들의 내적 결핍에 더 관심을 가집시다.
무엇보다 자식을 살리는 것은 부모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그 자녀를 맡기고 오직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달라 기도하는 모습 입니다.
덛붙여서, 내 자식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남의 자식에게도 자비와 사랑을 나누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원래 아이는 부모 둘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함께 키우는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 키워도 주변 환경과 분위기가 교육적이지 않고 부도덕 하면 결국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신앙적이고 선하고 의로운 환경을 힘합쳐 만들어 간다면 아이들 교육은 저절로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아이들은 우리 교회의 신앙의 어른들이 본이 되어 줍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서
결핍되어 있는 남의 자식들에게도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을 나눠주시기를 권면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그 선행과 의로움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돌아가게 하실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동네와 우리 지역과 우리가 속한 나라가
아이들이 신앙 안에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기르심을 받아 올바르게 자라는 신앙의 결핍이 없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게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축복이 여기 계신 모든 권속들의 가정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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