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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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나타나시는 하나님

어느 날 내 삶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뿅 하고 나타난 다면, 여러분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럽고 또 신기하겠습니까?
저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굉장히 새롭고, 또 놀랍고 신기하고 말이죠. 그리고 은결이랑 예빈이가 제 삶에 짠 하고 나타났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굉장히 놀랍고, 신기했고, 어찌 할바를 모르겠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떨기나무 가운데 불이 붙어있는데, 자세히 보니까 나무가 불에 타고 있지 않은거에요.
당연히 타야할 나무가 타지 않으니, 모세가 신기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2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나타나시니라 라고 하는 히브리 단어는 보다, 이해하다 라는 뜻으로 제일 많이 쓰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에게 보여지다. 말 그대로 모세가 하나님을 먼저 보거나, 찾아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불꽃으로 보이신 것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삶에 갑자기 보여지시고, 나타나십니다. 모세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에게도 말이죠.
여기서 아무도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나타나시고, 보이시고,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80살이 되어 노인이 된 모세에게 하나님이 대뜸 찾아오셨는데, 왜 찾아 오신 것일까요?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2장 마지막절에서도 하나님은 기억하셨다고 하시면서, 3장 7절에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너를 통해 애굽의 손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즉, 모세에게 모습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계셨고, 모세도 보고계셨는데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모세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당황 스럽습니다. 40년을 양만 치던 목동이었고 나이도 80이 되어 늙어 힘도 없는데 대뜸 어느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더니 내가 쭉 이스라엘을 기억해 왔고 너를 쓰겠다고 하시는 상황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가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로 아멘이 나오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모세가 내가 누구이기에 그런 일을 감당하겠냐고 하죠. 그런데 모세가 그런 대답을 하기 전부터 하나님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모세에게 나타내보이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보여주시는 것 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것을 말씀하시며 그 상황을 보여주셨죠, 그런데 모세가 불순종 하자 모세에게 권능을 주실 것이라면서 표적들을 또 보여주셨죠, 그런데도 모세가 입이 둔하다고 불순종 하자 함께 할 사람을 말씀해주시며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계속해서 모세에게 일어날 일들과, 또 하나님의 권능을 자꾸만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시길 원하시면서 이루실 일들에 대해서 말씀으로 보여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권능과 표적과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는 것은, 모세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고, 강물이 핏물이 되니까 그 힘이 있으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낼 힘이 있는거야 그니까 좀 이제 말좀 듣고 가! 라는 의도로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런 초 자연적인 일들 있잖아요? 이게 상식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뱀이 어떻게 지팡이가 되고 강물이 핏물이 되며, 개구리가 어떻게 사막 한 가운데까지 기어들어 가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운행하시고 그런 일들을 행할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서 순종하라는 의도로 하나님께서 이런 표적들과 기사들과 기적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으니 너는 그를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시선을 두라 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부르시고 보여 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처음에는 이런 권능을 주시고, 표적을 행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거죠. 그런데 결국에 모세는 그 비밀을 깨닫게 되어서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비결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첫번 째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실제적으로 경험한다는 거에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던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골리앗을 무찔렀고, 불구덩이에 던져졌지만 오직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해있던 다니엘은 불가운데서도 그을린 흔적 하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 시선을 둔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가 내리게 했죠. 하나님께 시선을 두었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심지어 본인도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시선을 둔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역사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 드렸던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군대로부터 바다를 갈라서 보호하셨던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시선을 하나님께 둘 때에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절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시편의 121편을 보시면 시편 121:1–3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예배하기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역 특성상 돌산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산은 가파르고 위험한 지형을 가지고 있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런 산들을 많이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산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산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 펼처진 수많은 산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는 이런 험난한 산들을 넘어가기 위해서 산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의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 이 산들도 지으신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것이죠. 그리고 여호와께서 3절에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않고 지키신다고 합니다.
이 돌산은 제가 말씀드린 것 처럼 매우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에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큰 사고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험준한 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족하게 하지 않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이지요.
언제? 우리가 시선을 하나님께로 둘 때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요 우리 삶에 먼저 나타나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에는 그리고 전 세계에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모르게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내서 발견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주셔서 그분을 말씀으로, 기도 중에 응답으로, 혹은 꿈꾸는 중에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거죠.
그러시고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제는 세상 쳐다보고 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고 살라고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인물들 처럼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삶이 차곡 차곡 쌓이다 보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보호하심을 우리가 누리면서 살게 되고,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나중에는 큰 일에도 순종 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권세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인지라, 예수 산다고 말하고 주어 동사 바꼈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못할 때, 시선을 하나님께 두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만해도 화가나거나 좀 제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들이 흘러가면 하나님을 보고 있다가도 시선이 그냥 사람에게, 상황에게 꽂힐 때가 많아요.
여러분 그런데 사람이 진짜 웃깁니다. 시선이 하나님께서 딱 벗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것들이 마구마구 눈에 쏟아집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또 마귀에게 속기 시작하는 거에요. 화가 나는 것도 결국은 마귀의 속삭임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닌데, 조금만 시선이 틀어져도 죄에 빠지고서는 후회와 자책을 반복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시선을 하나님께로 둘 수 있음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8 NKRV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 하나님은요 때로는 우리가 시선을 하나님께로 두지 못해도 결코 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깐 죄악에 빠져도 일어설 수 있음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국에 다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끝까지 Fix on Jesus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예로 모세는 결국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어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200만이 되는 영혼들을 보살피고 구원하는 사명자의 길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의 최고 롤모델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끝까지 순종하셨던 예수님은 죽기 직전에도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기가 끝까지 시선을 두었던 하나님에 의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온 인류를 구원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 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를 계속 지켜보시다가 친히 찾아와주셔서 그 아름다움을 보이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은 우리들과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지금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그를 보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시선을 하나님께로 둘 때, 우리가 때로는 시선을 놓칠 때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할 것이며, 그분의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하나님의 영혼구원의 역사를 볼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쓰임받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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