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5 빌3:13-16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Notes
Transcript
완주
완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Hook
이곳은 어디? 체육관운
이 곳에서 운동함.
목요일에 조금 일찍 오면 이 곳에서 체대입시를 하는 학생들이 훈련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됨.
날이 더울때면 땀에 쩔고 진짜 힘들어보이는데 포기하지 않음.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것은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지금의 힘듦을 이겨낼 힘이 된다.
이곳에서 열심히 땀흘려 운동하는 입시생들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대학 합격’이다.
대학 합격이 보장되어 있는가? 그냥 운동만 하면 다 갈 수있을까?
아니다.
확실한 미래가 아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이토록 열심히하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지만, 실현되어지지 않은 목표임에도 열심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대’와 ‘희망'이다.
오늘 이렇게 하면 원하는 목표에 닿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Book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의 신앙인의 삶을 ‘운동경기’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스스로 아직 ‘결승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신은 아직도 결승점이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말한다.
그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가 아직 ‘부름의 상’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이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달라기를 멈출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비난했다.
성공의 길을 버리고 나선 곳이 고작 그리스도교 이단 집단이냐?
결국 너도 실패한 자칭 메시야를 따르려느냐?
지금까지 삶을 벗어 던질만큼 가치가 있냐?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울의 귀에 울렸다.
심지어 자신과 함께했던 유대인들에 의해 갖은 핍박과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에요.
그 목표가 무엇일까요? 부름의 상입니다.
이 곳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친구들과 같아보여요. 아직 결과를 가지진 못했어요. 그치만 기대함으로 오늘을 살아내죠.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달려가는 길 즉, 부름의 상은 명확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어요.
바울이 말한 부름의 상이란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은 하나님 나라의 독립이었고 이스라엘 나라의 부강함은 하나님 나라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으로 깨달은 하나님의 나라는 고작 이스라엘 나라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포함한 온 세상, 온 세상을 넘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가 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 부분으로써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임을 바르게 깨달았다. 아무리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곳은 더이상 하나님 나라가 아녔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믿음은 바울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눈이 떠지자 이스라엘 나라의 실상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이 난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무 쉽게 상처를 주고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바울도 자신이 이 나라의 일원이었을때는 결코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모습은 ‘모순 덩어리’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없던 자신과 이 나라의 실태를 발견했다.
하나님 나라마저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물들여 하나님을 위한것인지 아닌지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함을 깨달았다.
—————
바울에게 일어난 변화는 두 가지다.
첫째, 삶의 방향을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진리라 믿고 따라왔던 길은 죄에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앞에 ‘푯대’가 세워졌다. 이 푯대만 따라가면 삶의 올바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둘째,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게 되었다.
바울은 이것을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 표현한다. 자신을 ‘부름의 상’을 주시기 위해 ‘불러주신’ 예수님이 진정한 자신의 삶에 상급이라 이야기 한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왔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
신앙생활은 정도와 단계와 수준이 아니라 ‘방향’과 ‘훈련’이다.
삶에 고단함이 있다면 감사하다.
하나님께로 믿음의 한 걸음을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