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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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마음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5-28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순절을 맞이하고 계신가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가요? 제가 평일에 사역하는 밀알선교단에서 사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순절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역자는 ‘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자기가 보고있는 유튜브나 인터넷 사용을 좀 줄이고,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내 주위에 힘겨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 ‘한가지’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말을 나눴습니다. 억지로 시간내서 하는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단 한가지 말입니다. 그래서 문자로 아픔 가운데 있는 친구에게 전화나, 위로의 말씀 카톡 보내기!, 등 섬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나눴습니다. ‘섬김’의 실천을 해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섬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이 절기인 사순절을 보내야 할까요? 바로 섬김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8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 스스로가 ‘나는 왕이니까 나를 따라와!’ 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한사람 한사람 소중한 존재라고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섬김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섬김의 왕이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며 나아가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셨던 2000년 전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것과 똑같이, 로마도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당시 로마는 아주 큰 나라였습니다. 이런 그림들 많이 보셨을 거예요. 로마군인은 투구를 쓰고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한 힘을 가지고 로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며 다스렸습니다. 미국처럼 큰 나라였던 로마, 거기에 비교하면 작은 이스라엘은 늘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아갔습니다. 또 우리가 일제 강점기때 일본의 눈치를 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로마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힘이 강했던 로마인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도 찾아왔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땅에서 유명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순수한 동기로 따라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난 예수님이 참 좋아!, 그분만 있으면 나의 삶은 만족해’라는 올바른 목적으로 예수를 찾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도 예수님께 능력을 받아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핍박 아래서 국회의원, 장관 이런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바로 옆에 앉아서 모든 권세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예수께 부탁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베대의 아들들 이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절하며 이렇게 구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겉으로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자 했으나, 진짜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권력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했던 일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두 아들들과 그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마20:22a)
예수님은 두 아들들과 어머니에게 ‘너희는 지금 잘못 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욕심대로 나에게 구하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정말 진실한지, 아니면 나의 이익 때문인지를 금방 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혜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20:22b)
사람들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많습니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이 많고,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더 눈독을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앉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서도 고난을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권한은 갖고 싶지만,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우리 모습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도 따르는 법입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운 훈련을 했을까요? 얼마전 손흥민 선수의 축구 영상을 봤습니다. 다른 축구 선수들은 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갔는데, 혼자 남아서 슛 연습을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자기도 다른 선수처럼 연습을 마치고 쉬고 싶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훈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 고난의 십자가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6-27)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보다 좋은 위치,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섬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정성껏 섬기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권면 드립니다.
저는 지난 2월 초에 태국 치앙마이 선교지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기도해주시고 관심주셔서 태국 치앙마이 선교현장에 잘 다녀왔습니다. 치앙마이는 태국에 북쪽 지역의 이름입니다. 총 20명의 사람들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밀알선교단의 사역자들과 봉사자들. 그리고 휠체어를 탄 6명의 지체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버스를 오르내리느라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도와주는 사람들도 참 많이 힘이 들었지만, 서로 격려하며 또 섬기는 마음으로, 선교지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그곳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을 잘 위로하고 돌아왔습니다.
특별히 특수학교를 방문했었는데요. 지체장애인학교, 발달자폐성 장애인학교, 그리고, 농인학교도 방문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의 태국 농인학생들과 대화했습니다. 자신의 꿈과 비전을 찾아 공부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태국나라에 가면 정말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불상’들입니다.(사진) 이미 아시다시피 태국나라는 불교를 믿는 나라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불상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집 앞에도 있고, 우리가 잘 가는 마트에도 학교에도, 모든 정부기관마다 불상이 놓여있었습니다. 정말 불상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학교의 크고 작은 모든 행사에 스님들이 함께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태국 전 인구가 7000만명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겨우 1퍼센트가 안되니,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인을 정말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선교지 탐방을 통해 아주 적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들을 만난 곳의 이름은 바로 ‘태국 치앙마이제일교회’라는 곳이었습니다. 156년전 태국 치앙마이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어떻게 불교만 믿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까요? 바로 한 사람의 ‘섬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맥길버리 선교사님’이 예수님을 태국에 전한 것입니다.(사진) 그 한사람의 태국사람을 향한 ‘섬김’으로 인해, 태국 치앙마이 땅에 복음의 문이 열렸고, 그 곳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맥길버리 선교사님이 태국이라는 낯선 땅에 왔을 때, 많은 태국 사람들은 불교의 영향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맥길버리 선교사님은 참 안타까워 했습니다. 태국은 마을 축제가 있으면 불교식으로 해야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항상 모든 행사에 스님이 동행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맥길버리 선교사님은 예수님을 전했고, 복음전도로 몇몇의 태국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태국의 그리스도인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불교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스님을 초청해 마을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0명의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맥길버리 선교사님이 복음전도를 하기 전까지는 태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국왕이,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바로 한 사람의 태국사람을 향한 섬김이 복음의 씨앗이 열매맺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맥길버리 선교사님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누가 태국에 갈꼬?”
바로 자신의 태국사람을 향한 섬김이 있었기에 태국선교가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 선교사님이 태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곳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섬기기 위해서 그곳에 온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우리는 누군가를 섬기는 태도로 살아가나요? 내가 당신보다 더 높아! 라는 우월감에 다른사람을 보고 있지는 않나요? 성경은 또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3-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섬김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낮은 자세로 섬기며 사랑하며 아껴주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사랑하는 성도 한분 한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참 감사드립니다. 실수 많고, 죄 많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섬김을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위해 섬기러 오셨습니다. 에수님의 그 사랑과 심김을 받은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나만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게 인도해주세요
모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