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8. 주일오후설교 (누가복음 15:25-32, 두 아들 비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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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주일 오후 예배 (5일)에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아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주일학교에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 간식도 먹고/ 아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중등부는 “피자 파티”를 하였습니다.
매 주일 마다 / 피자 파티를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은? 어린이 입니까?
중학생은 어린이 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린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낀 세대라고 담임목사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등부는 오늘 피자 파티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맛있는 것 먹을때에 참 행복하잖아요?
교회 식구들과 교제를 나눌때에도 참 행복합니다.
우리 영도교회 안에/ 이런 성도들간의 교제의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님 안에서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것을 보고 / 굉장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 본론-------------
오늘 말씀은 우리가 “탕자의 비유”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이 누가복음 15 장의 말씀을 “탕자의 비유”라고
잘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예수 믿기 전의 모습과 집 나간 아들(작은 아들)의 모습이 너무 닮아서 집 나간 아들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전체적으로 본문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1.누가복음 15 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죠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하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지금 “누구”에게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3 (NKRV)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여기서 그들은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간과하고/ 말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 예수님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지금 /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배경 설명)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굉장히 화가 나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누가복음 15:1–2 (NKRV)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
우리도 화가 나면 어떻습니까? 이 사람 보소? 이런 표현 쓰잖아요?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맞아 들여서 + 음식을 지금 같이 먹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래새인들이 생각하기에?
왜 이 사람(예수)이 이런 죄인들과 같이 음식을 먹는거야?
예수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선지자 처럼 보이는데?
왜 이렇게 율법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라고 생각을 한 것 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1) 죄인들과 이방인들과는 식사를 하면 자기들이 더러워 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2) 부정한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 자신들이 부정해 진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는 일로 생각을 한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왜 주셨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소망이 없음을 알고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런 상태에 있다 보니까/
예수님이 죄인들과 음식을 먹는다고 화가 나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잘 못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잡아 주어야 하겠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 가지 비유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를 들어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비유”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사실에 빗대어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을 빗대어서 /
15장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목자와 양의 관계
2)신랑과 신부의 관계
3)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를 보면 / 이런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1) 첫 번째 비유를 잠시 살펴보면/ - 잃은 양 비유입니다. (4-7절까지)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보면 예수님은
1) 바리새인들을 목자에 비유하고 / 세리와 죄인들을 “잃어 버린 양”에 비유하면서/
예수님 자신이 참된 목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목자라고 가정해보자.
4 “Suppose one of you has a hundred sheep and loses one of them. Doesn’t he leave the ninety-nine in the open country and go after the lost sheep until he finds it?
목자가 양이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찾아 나서지 않을 목자가 있는가?
라고 예수님이 말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열심으로 찾아다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너희들(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데?
실상은 이렇게 세리와 죄인들을 욕하고 있는 것이 옳으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을 실상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하지만/
너희들은 가짜 목자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34 장을 같이 보겠습니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에스겔 34 배경)
에스겔 33장이 예루살렘이 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에스겔 34장 -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책망하면서 /
하나님께서 내 종 다윗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낼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성취하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통해서
지금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 자신을 참된 목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두 번째 비유(잃은 드라크마 비유)를 통해서도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한 드라크라 - 하루 노동자 임금이 한 드라크마인데요
열 드라크마 - 10일 치/ 노동자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100만원 정도 되겠네요.
그런데/ 10 드라크마가 가치가 있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결혼할 때에 /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자는 신랑이 준 결혼 선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신랑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우리가 심하게 싸우면/ 결혼 반지를 버린다거나/ 결혼 반지를 깬다거나 뭐 그러잖아요?
지금 비유 속에 여인도 신랑과의 관계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여자가 애를 쓰는 장면을 예수님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이것을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주님께서(예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인데/
그 깨진 관계를 예수님께서 회복시킨 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만나QT 본문이 요한 복음 8 장이었습니다.
음행중에 잡혀온 이야기죠?
거기에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긴관들이 나오죠?
예수를 책잡기 위해서 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모두 돌을 내려놓고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받아야 하는 정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음행중에 잡혀온 여인 - 세상에 빠져 사는 우리를 대표하는 여인이죠?
이 여인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사는 관계로 새롭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두번째 비유 (잃은 드라크마)도 /
참된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먹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냐?
라고 반문을 하시고/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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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 예수님은 /
“세리와 죄인들”을 “작은 아들”에 비유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을 “맏 아들”에
“예수님 자신”를 “아버지”비유하면서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깨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였고
아버지는 그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그 돈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떠나 버렸습니다.
거기서 아버지가 준 재산을 다 탕진하고
인생의 바닥까지 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돼지를 치면서 + 돼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나락까지 가서야/ 아버지가 생각나서 /
아버지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이 작은 아들을 위해서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풀고 즐거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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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맏 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왔습니다.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님은 맏아들의 반응을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28절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28 (NKRV)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맏아들이 화가나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예수님이 같이 음식을 먹고 있는 것에 화가 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음식을 즐기는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꼬집는 것이죠?
2) 그리고 29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긴다고 하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섬겼는지? 예수님이 가르쳐 줍니다.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29 But he answered his father, ‘Look! All these years I’ve been slaving for you and never disobeyed your orders. Yet you never gave me even a young goat so I could celebrate with my friends.
맏아들이 아버지를 부를때에도/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이것 보시오!!!! 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Look) 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섬기다”는 단어도 / slave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섬긴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은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처럼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시키니까 억지로 말씀 순종하는 척 하고/ 해도 하는 척 마는 척 하고/
내가 일을 했으니까 / 당연히 보상 받아야 하고/
이런 마음으로 섬겼다는 것 입니다.
3) 또 29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쁨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속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29 (NKRV)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천국 잔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지금 말하고 있을까요?
누가복음 15:31 (NKRV)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누가복음 15:31 (ESV)
31 And he said to him, ‘Son, you are always with me, and all that is mine is yours.
아들아!라고 부르면서 /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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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몇 가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오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두 유형의 사람 (세리와 죄인/ 바리새인)은 두 가지 유형의 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비종교적인 사람의 죄와 종교적인 사람의 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 하나님을 떠나 제 멋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1절 보시면,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예수님 당시의 세리들은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죄인 이었습니다.
율법에 보면 -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리 들은 로마의 앞잡이로/ 세금을 과하게 거두어서/ 자기 배를 채웠습니다.
세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리 뿐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 두 번재 부류의 사람들 - 율법을 지키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이런 사람들은 -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1) 세리와 같은 죄인들은 -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식이라고 하는데
2) 이 2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 두부류의 사람들로 묶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비 종교적이던/ 종교적이던/
모두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는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종교란- 초월적 존재를 의지함으로/ 자기가 원하는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3:20–21 (NKRV)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의롭지도 못하면서 의롭다고 착각을 하고 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 내가 없어지는 것 입니다.
내 안에 내가 없어지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내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여기 나오는 세리들 처럼/ 자신이 철저히 죄인인 줄알고/ 내가 없어지고 하십니까?
아니면/ 나는 하나도 바낄것이 없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의 비유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세리는 구원을 받았고
2)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2 가지의 죄의 유형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1) 잠시 잠깐이라도 예수님을 떠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 죄
2)나는 이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죄
2. 예수님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
우리의 신랑 되시는 주님,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심판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세상 속/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헤매된 우리들에게/
주님이 손 내밀어 우리를 건져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유산 다 쓸때까지/ 다 탕진할때까지
아버지께서 기다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떠나 살면 힘들게 살걸 아버지가 몰랐습니까?
아니죠.
그런데도 / 우리가 떠나는 것을 / 아버지가 허락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파 다 겪을때까지/ 아버지께서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치고 힘들고 도저히 의지할 곳 없을때에 /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돌아온 줄 알고/
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속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이제 우리가 아버지께로 돌아온 사람들로서/
아버지와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 겠습니다.
바른 관계의 출발점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 입니다.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이 작은아들의 “마음과 말투”를 보십시요.
이 작은 아들의 마음은 낮아질때로 낮아져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할때 처럼 호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아버지 아들로 불리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ut/ 맏 아들을 보십시요.
아버지한테 대들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유산 나누어 달라고 하는 것 처럼/
맏 아들이 지금 아버지한테 대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존재로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태어 날태부터 악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으면 한시도 못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절대 교만할 수 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악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더러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지금 구원받지 못하고/
떳떳하게 예수님 앞에서 대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자신은 의롭고/ 자신 떳떳하다는 것 입니다.
-자신은 다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정작 자신들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우리가 우리 속을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사는 우리들의 첫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내가 제일 부족한 자로 압시다.
내가 잘 났다는 사람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때문에?
지금 잔치가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