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바톤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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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바톤 터치의 중요성 1. 주님의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들 2. 주님이 전해준 바톤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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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 1-11
들어가면서
우리 교회에서 전교인 체육대회를 할 때 마지막에 주로 하는 경기가 이어달리기입니다. 이어달리기 할 때 정말 중요한 게 바톤 터치입니다. 세계적인 대회에서 바톤 터치 때문에 경주를 망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바톤 터치 때문에 경기를 망친 걸로 유명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남자 400m 계주 경기에 출전했던 미국팀은 3번 주자가 4번 주자에게 바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떨어뜨리는 바람에 레이스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9년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 때는 바톤 터치 구간인 테이크 오버 존을 벗어나서 바톤을 전달하는 바람에 실격 당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우리 나라 대구에서 벌어진 대회에서도 3번 주자가 바톤 터치를 하기 직전에 넘어지는 바람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미국에서는 ‘바톤 터치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계주 경기에서는 빨리 달리는 것 못지 않게 바톤 터치를 잘 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톤 터치의 중요성은 비단 계주 경기에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대기업의 회장이 바뀔 때 전임 회장과 후임 회장 사이에 바톤 터치가 잘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서 실패하는 바람에 무너진 기업들이 많습니다. 한 가문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바톤 터치가 제대로 안 되면 그 가문이 몰락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때는 우리 동네에서 우리 땅 밟지 않고는 길을 갈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아버지 대에 와서 노름하다가 다 말아먹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반대로 바톤 터치가 잘 이루어져서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간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멋진 바톤 터치 덕분에 이스라엘 민족의 기초가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잘 마무리하고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을 맡겨서 멋진 바톤 터치를 이루어 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세워 자신의 사역을 잘 계승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어떤 의미에서 바톤 터치를 하는 현장의 장면을 묘사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사역하셨습니다. 그 사역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로 사역을 마무리 하신 주님은 이제 하늘로 올라가시려고 합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자신이 감당하던 사명을 다음 리더들에게 이양하시고 있습니다.
1. 주님의 바톤을 이어받는 사람들
그렇다면 주님의 바톤을 이어 받아 달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복음서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이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서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주로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마태 같은 사람은 그 당시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서 고개를 쩔래쩔래 흔들던 세리였습니다. 자격 없는 그들을 불러서 제자로 세워 주시고 3년간 데리고 다니면서 열심히 가르치셨는데 정작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전부 도망 갔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도마는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 보기 전에는 예수님 부활을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문제투성이 제자들에게 주님의 바톤을 넘겨 주신 것입니다.
보통 축구 경기를 할 때 전반전에 너무 못한 선수는 후반전 때 감독이 빼 버리고 다른 선수를 투입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경기를 못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똥 볼을 찼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자기 골대에 자살골을 넣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가능성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다시 부르시고 그들에게 바톤을 넘겨주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주님의 바톤을 이어받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왜 이렇게 문제 많은 사람들에게 바톤을 넘기는 걸까요? 주님에게는 어떤 대책이 있었던 걸까요?
1) 예수님의 부활
제일 먼저 주님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마음 제일 깊은 구석에 있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던 겁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은 더 이상 죽음이 주님을 누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마귀가 더 이상 주님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다음에 이전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마귀가 아무리 방해해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부활이 예수님에게 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처음에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 이들은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만 해도 그들은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들을 품어 주시는 걸 생생하게 경험한 뒤로 그들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제자들을 놀랍게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도 그런 고민을 하실 겁니다. 나는 잘 못 하는데 나는 자격이 안되는데 내가 주님 일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하시게 될 겁니다. 그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마귀를 밟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부활의 능력이 바로 지금 내 삶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주님으로 인해 내 삶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두려움이 떠나가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가 떠나가고 생명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하시고 계신 것을 삶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그때 가장 약한 내가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강한 용사가 되고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성령을 부어주심
두번째 연약한 제자들을 변화시킬 주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비록 제자들을 떠나가지만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 주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같이 4-5절을 읽어봅시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불렀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상담자, 돕는 자, 그런 뜻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자들의 보혜사였다면 이제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는데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떠나는 대신에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같이 요 16: 7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주님이 떠나시는 것이 왜 유익이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 주님과 직접 얼굴을 뵙고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떠나시고 성령님이 오시면 직접 가까이 가서 만나지 않아도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이 곳에 있는 우리를 만나 주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지역, 심지어 우리가 갈 수도 없는 아주 어려운 지역에 있는 성도들과도 함께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주님의 백성들을 만나주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성령님께서 때로는 바울의 전도 여행 경로를 바꾸어 주셨습니다.때로는 침몰해가는 배에서 두려워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격려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 학자들이 사도행전이라는 말 대신에 성령행전이라고 하자고 주장합니다. 실제적으로 주님께 바톤을 이어받은 분은 성령님이시고 사도들이 그 성령님과 함께 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은 약하고 부족한 자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고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하면서 자신들의 약함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해주신 바톤이 2,000년간 전해져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 귀중한 바톤을 이어받는 우리도 우리 스스로 생각할 때 너무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가 주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약점을 우리 자신이 더 잘 압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사는 부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면서 성령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이 전해 준 바톤은 사명
지금까지 저는 주님께서 전해주신 바톤이 제자들에게로, 더 나아가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사도들과 우리에게까지 전해 주신 바톤은 구체적으로 뭘까요? 그 바톤을 다른 말로는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뭘까요? 그 사명을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죽음의 모든 권세를 밟으시고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시고 승리의 깃발을 꽂으신 주님은 이제 우리에게 주님께서 하시던 그 일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처음 주님으로부터 바톤을 전달받는 제자들 조차 그 사명이 뭔 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오늘 읽은 1: 7말씀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부활하신 주님께서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에게 독립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칼빈은 제자들의 이런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걸 잘 담고 있는 말씀이
사도행전 1: 8입니다. 우리 같이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담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 증인
일단 제자들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증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증인이 뭡니까?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마르투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다른 뜻은 순교자입니다. 그러니까 증인은 자기 생명을 걸고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증인이 되려면 자기가 먼저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요즘 어디 맛있는 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카메라를 꺼냅니다. 그리고 자기가 먹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 식당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열심히 자기 sns에 올립니다. 가게 주인이 돈 10원도 안 주는데 이걸 혼자 알고 있기가 너무 아쉬운 겁니다. 이건 알려야 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해. 이런 생각으로 올리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정말 예수님 덕분에 여러분이 구원 받았고 그 주님으로 인해 어두운 내 삶에 빛이 찾아오고 그 주님께서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경험했다면 이걸 전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먼저 은혜를 사모하고 식은 가슴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 배신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오셔서 못 자국 난 손을 보여 주시면서 부활을 확인시켜 주셨던 주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다시 한 번 은혜의 각성을 일으켜 주시기 원합니다.
2) 성령
두 번째 생각해 볼 단어는 성령입니다. 주님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보다 앞서지 말고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은 끊임없이 감독과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감독이 주는 사인을 보고 그 사인에 충실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야구 경기를 예로 들면 1루 주자가 있는데 그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감독이 번트를 대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홈런이나 안타를 치고 싶은데 감독이 번트를 대라고 하는 겁니다. 번트를 대면 1루에 있던 주자가 2루로 가게 만들고 대신 번트를 대는 선수는 거의 다 아웃 됩니다. 그때 그 감독의 작전을 무시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선수는 절대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는 내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께서 내게 어떤 사인을 주시는지 거기에 우리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홈런 타자가 되라고 하시기보다는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서로 서로 자기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그 사인을 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성령께서는 그냥 사인만 보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그래서 가장 연약한 사람 같은데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으면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한낱 어부에 불과했던 베드로가 설교하는데 5천명,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성령님 없이 혼자 달려가면 더더욱 안됩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 제목 1번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는 겁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3)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
마지막으로 살펴볼 단어들은 지명입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이라는 단어들을 살펴봅시다. 사도행전은 우리가 읽었던 행1: 8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먼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다가 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해집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줄 알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막혀있던 장벽들이 모두 허물어지는 겁니다. 이제 갈릴리 시골에서 시작된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 은혜로 변방에 있던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라는 말씀은 마치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파문이 돌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점점 퍼져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들 안에서도 이렇게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때 처음에는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 갑시다 정도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두움 가운데 있던 우리 사람이 갑자기 빛으로 나아오고 고약한 자기 성질대로 살던 사람이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고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가족을 배려할 때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분이 전하는 복음이 힘이 있는 겁니다.
경제적으로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자녀들이 우리 아빠 자살하면 어떡하지 걱정할 때 아빠가 주님 손 잡고 힘있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자녀들이 우리 아빠가 믿는 주님을 나도 믿어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남편에게 소리 빽빽 지르던 아내가 갑자기 착해져서 아니 당신 갑자기 왜 이래? 남편이 물을 때 오늘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라고 했어. 그렇게 말할 때 남편이 교회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가정에서 내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다면 그 파문이 조금씩 밖으로 퍼져가야 합니다. 회사에서 남들보다 먼저 가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른 분들을 섬기십시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긴 것처럼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그 때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눈은 저 멀리 땅끝까지 향해야 합니다. 오대양 육대주에 주님의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님과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단기 선교를 통해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가지 못하는 분들은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분들이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이라면 우리는 모세처럼 멀리서 두 손들고 기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 동네에는 땅끝에서부터 온 수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한글학교가 그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요즘 100명이 넘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나라별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 중에 하나인 우리 교회 곳곳에 주일날 10개의 외국인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기도해 주시고 이 일을 위해서 애쓰시는 우리 성도님들과 동역하는 선교사님들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예수님 믿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미 그런 소식들이 곳곳에서 많이 들립니다.
사실 오늘부터 우리가 시작하는 사도행전은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쓴 책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한 회심자를 위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글이라는 도구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한 사람에게 보낸 이 책들이 여러 사람에게 필사되어 전해지다가 성경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문자 하나, 책 한 권 선물,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 전도해 봅시다. 교회나 다락방에 여러분의 VIP를 초청해 봅시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결론
주님은 이렇게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천사가 말했습니다. 천사들은 주님께서 지금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때까지 이 사명 감당하면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선배들을 통해서 전해주신 바톤을 이어 받아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달려가시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기도
말씀을 생각하면서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증인의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두려움 없이 복음 전하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게 하시고 내 뜻이 아닌 성령의 뜻을 따라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런 제목으로 합심해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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