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위력적인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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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3:1~26
찬양: 찬송가 80장(통101)
※ 원고 전달할 때 기도제목 아래에 있는 것 수정해서 보내야함.
할렐루야. 5월 6일 월요일 새벽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3장 1-26절의 말씀입니다.
[주의집중&문제제기&해답암시]
어벤져스라는 영화에 한 동안 참 많은 사람이 열광했다. 시리즈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어벤져스는 슈퍼 히어로들이 모인 팀인데, 인류를 각종 위기에서 구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함께 모이면 세상을 구하고, 각자 흩어진 자리에서도 사람들을 돕고, 도시를 구하는 삶을 산다. 영화지만 그런 히어로들의 남다른 삶을 보며 사람들은 위안도 얻고 기쁨도 얻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보면서, 실제로 이 땅에 어벤저스가 그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였을 때에도, 흩어져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살아갈 때에도 세상에 강력한 충격을 주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초대교회와 그 성도들이야 말로 진짜 실존하는 어벤저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교회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가를 살펴보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본문해석]
위력적인 교회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2:41~42,44~47)
초대교회는 강했다. 충격적일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설교를 하니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생겼다. 우리교회 만한 교회가 하나 생긴 것이다. 남자만 3천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1만에 육박하는 대형교회가 생긴 것이다.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은 즉시 사도들에게 훈련을 받았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에 힘을 썼다.
예배만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삶 또한 뜨거웠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서라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웠다. 사도행전 다른 곳에 보면 이런 재정적 헌신으로 인해 교회 안에 궁핍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음식 하나를 먹어도 기쁨과 순전함으로 먹었고, 늘 찬송을 불렀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교회를 칭찬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해졌다.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성도들의 삶이 회복되고, 이웃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 위력적인 성도
그렇다면 모였을 때 위력적인 교회가 흩어져서는 어땠는가? 어밴져스가 모이면 지구를 구했고, 흩어져서도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사회의 질서를 지켜냈던 것처럼, 흩어진 성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다.
1) 세상에서 해결 받지 못한 문제, 그리고 비참함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3:1~2)
미문은 청동과 금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문이다. 성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기도 했다. 요즘말로 하면 핫플 중의 핫플이다. 모두가 이 곳에서 인증샷을 찍고 SNS에 올리고 싶어했고, 이 문을 드나들 때 들어가는 사람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화려함을 만끽하며 드나드는 곳에 그 장소와 너무 어울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등증한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 되어 일어서고 걷지 못하는 경력 40년의 거지이다. 도시의 가장 핫한 곳에서 들떠 있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여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그는 그 도시에서 가장 비참한 마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ex. 근로자의 날.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니까 당연히 일하는거야 하고 출근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지나는데 이른 아침부터 가족단위로 잔디밭에 앉아 아이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음식을 먹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분명히 당연하게 여기고 출근을 하다가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어려워지려고 했다. 와 저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이 쓱 하고 마음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음카페에 들렀는데 법원, 검찰청 사람들은 공무원이라 출근해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마음이 다시 괜찮아졌다. 그런데 생각해보았다. 하루 이렇게 비교가 되는 것도 힘든데, 평생을 신체적 장애인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거지로 살면서 가장 화려한 미문 곁에서 구걸을 하며 행복에 겨운 사람들, 성전에 웃으며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성도는 위력적인 해결사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 이 장애인의 비참한 삶을 해결한다. 어벤저스급의 해결력이다. 사도들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었나? 엄청난 기금을 모으거나, 새로운 의학지식을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보자.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3:6~8)
베드로와 요한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가족도, 도시의 그 누구도, 성전으로 상징되는 유대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해결했다. 화려한 유대교의 미문도, 거지가 유일한 삶의 목적처럼 붙잡던 은과 금, 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영적인 방법이다. 하늘의 능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위력적인 능력 앞에서 크게 놀랐다.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3:9~10)
놀랍게 여기며 놀랐다는 것은 충격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또한 세상을 충격에 빠뜨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3. 어디서 이런 위력이 나오나?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위력이 나왔는가?
1) 삶을 불사르는 기도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행3:1)
첫째가 바로 삶을 바치는 기도의 열정이다. 사실 제자들은 지금 이렇게 대놓고 다닐 때가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안가로 들어가 숨어서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불과 수십일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의 공격을 받아 죽으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리더인 예수님이 권력자들의 눈밖에 나서 너무나 비참하게 찢김을 당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신들에 의해서 수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살해한 권력자들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상황이었다.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성전 미문의 거지를 일으킨 후 제자들은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 의해서 체포되고, 투옥되고, 협박을 당하고 나중에는 매질도 당한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거리를 활보했고, 그들의 나와바리라고 할 수 있는 성전에 들어간다. 왜? 기도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걸리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포고를 듣고도 창문을 열고 당당하게 기도한 다니엘의 기개를 떠올리게 한다. 제자들은 그냥 습관적, 규칙적으로 기도한 것 이상으로 기도에 헌신했다. 기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과거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간절히 애걸복걸하듯 몇 번이나 기도를 요청하셨는데도 쿨쿨 잠만자던 모습은 간데 없다. 과거에는 기도하면 잠만 자던 제자들이, 이제는 기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다.
2) 달라진 시선
제자들은 또한, 이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의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제자들은 구걸하는 거지를 바라본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행3:4)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를 주목해서 봤다.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 구원이 필요한 한 사람을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모든 고통과 문제를 녹여버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전에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과 성전을 드나들 때 제자들은 한번도 이 걸인을 바라본 적이 없다. 오히려 성전을 바라보았다. 성전의 화려한 돌들과 장식한 것들을 바라보았다.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눅21:5)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13:1)
그렇다. 제자들은 화려한 성전에 시선을 뺏기며 살았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바라보며, 자신도 그처럼 화려한 삶을 살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제 다른 것을 바라본다.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바라본다. 위가 아니라 아래를 바라본다. 성공과 성취에서 시선을 거두어 밑바닥을 바라본다.
그 밑바닥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명이다.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제자들은 이전에도 예수님과 함께 성전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 때 이 미문의 거지도 그곳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주님은 그 거지를 일으키지 않고 거기에 두셨다. 그가 계속 거지로 살아가게 두셨다. 왜 그러셨을까?
묵상하며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의 믿음의 이야기를 위해, 제자들이 거둘 승리를 위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남겨두신 것이다. 제자들은 눈은 단순히 한명의 거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사명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을 이어가지 위해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3) 큰 믿음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3:6)
또한, 제자들의 믿음은 너무나 확고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지를 일으키는 장면에서 그들의 믿음의 크기를 볼 수 있다. 성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미문이다. 제자들이 성전 미문에서 거지를 일으키는 이 장면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샤워할 때 막 노래를 부르면서 한다. 밖에서 듣고 있으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 노래를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쥐어주면 쉽지 않다.
기도도 그렇다. 혼자 기도를 잘하는 사람도, 대표기도를 시키면 떨린다. 기도문 하나도 준비 안했는데, 갑자기 공개적으로 기도할 일이 생기면 당황한다. 혹시 그 자리에 이인호 목사님이 계시면 더 어렵다.
그런데 이건 노래하거나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을 고치는 일이다. 장애를 치유하는 일이다.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다. 그러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에 손 올리고 고쳐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맘 편하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는건 정말 어렵다. 그러다가 안고쳐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제자들은 망설임이 없다.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다. 만약 이런 장애인에게 함부로 손을 대고 당겼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뉴스감이다. “예루살렘 대형교회 베드로목사 장애인에게 걸으라고 소리치며 잡아당겨 넘어져. 전치 3주 진단”
과거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놀랠 노릇이다. 변화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해서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 책망당하는 모습이 간데 없다.
[비극적 적용]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새벽에 말씀을 묵상하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초대교회의 모습, 그리고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과 나의 현재 모습에 너무나 큰 괴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와 믿음의 선배들은 저렇게 위력적인데,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한가? 나에게는 왜 이런 권능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한 없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 저렇게 장애인을 고칠 능력이 없다. 기도에 목숨을 걸지도 않는 것 같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힘들 때가 많다. 그리고 큰 믿음으로 세상을 호령하기는커녕, 내 자녀들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 맬 때가 많다.
[그리스도의 성취]
하지만 제자들도 처음에는 나처럼 그랬다. 제자들도 기도하면 잠만 자고, 병자는 고치지도 못하고 괜히 나섰다가 책망만 들었다.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느라, 예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바라보지 못했다.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먹고, 배신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다. 결코 제자들이 대단해서 이렇게 위력적인 삶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 제자들을 바꾸었는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변화시키셨다. 오늘 사도행전 3장 11절 이하의 메시지를 보라. 제자들이 이렇게 외친다.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2)
무슨 말인가? 제자들이 나에게 이렇게 외쳤다. 너 왜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착각하니. 우리가 한 것이 아니야 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우리가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고 우리가 이를 본 증인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나고 경험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외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
의심하고, 배신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겪으며 이제는 정말 증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말 아는 복을 주셨다. 믿음을 주셨다. 그 진정한 믿음이 그들을 변하게 한 것이다.
초대교회와 믿음의 선배들을 위력적인 교회로, 성도로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령님이신 것이다.
[희망찬 적용]
오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한가? 괜찮다. 홀연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는 새로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열심히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 것이다.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 사랑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 그 예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주권자이시다. 그 예수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성도 한 사람을 크고 아름답게 사용하시는 부흥의 때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우리의 할 일을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베풀자.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 말고, 내게 주신 시간과 공간에서 나의 작은 몸을 드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자.
새벽 기도를 하고 초대교회의 위력을 묵상하다가 조금은 의기소침해져서 나오는데, 새벽기도를 마치고 운동을 나가는 시니어 어르신들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날과 달리 그날은 어르신들의 손에 집게와 비닐이 쥐어져 있었다. 어르신들은 마당에 모여 함께 사진을 함께 찍고 흩어지셨다. 얼마후 다시 뵈니 봉지마다 각종 쓰레기들이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장애인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수 천 명이 회심한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영향력이 있었다. 오늘 하루 그렇게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마무리 기도]
주여! 주의 몸 된 교회가 하늘의 권능으로 충만한 위력적인 공동체가 되게하소서. 아멘!
오늘 우리에게 기도의 불을 주소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게 하소서. 큰 믿음으로 담대히 행하게 하소서. 아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삶을 보이소서. 예수님과 복음의 향기가 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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