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에 빠진 아이러니한 기드온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6 views
Notes
Transcript

금요기도회

Judges 8:22–28 NKRV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말씀제목을 보게되면 ‘자가당착’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은 아니기에 생소할 수 있다. 무슨 뜻인가? 그렇다. 스스로가 앞뒤가 다른 모습일 때 자가당착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게 될 때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두 반응이 나타난다.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은 되게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행동이 아주 따뜻할 때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감동하게 된다. 대부분 경상도 남자에게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엊그제 담임교수님과 점심식사를 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 산미 높은 커피나 다크로스팅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니까 다음날 교수님이 조교에게 “이거 김영건이 가져다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커피콩을 주셨다는 것이다. 무뚝뚝한 분인 줄 알았으나 따뜻한 행동에 감동을 받게 되었다.
두 번째로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이야기하면서 신념과 반대로 행동할 때 아이러니함을 느끼거나 실망하게 된다. 보통 정치인, 종교인, 무언가 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서 많이 넘어지게 된다. 정치인도 당선되기 전에는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정작 당선이나 낙선이 되고나서는 약속과 전혀 관계 없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종교인 중에서는 어떤 스님이 자신이 무소유를 보여주겠다고 떵떵거리다가 고가의 물건과 자산을 풀소유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일본에 유명한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쓴 작가는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장애인으로 ‘다섯 육체로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의 오체불만족의 책이 흥행했다. 그러나 5명의 여자와 불륜이 난 사건이 발생하여 오체풀만족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번에 공부 제대로 한다고 말을 해놓고 유튜브나 SNS에 시간을 쏟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자가당착한 모습이라고 한다. 나도 여러분에게 설교하면서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하면 내가 말한 것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1차적으로 나에게 선포하는 말씀이기에 늘 설교가 끝나고 스스로 삶을 점검하게 된다. 설교하는 나도 선포하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나는 자가당착하는 사람인 것이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순종하여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완전한 대승을 거두었다. 이에 감동받은 이스라엘은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세습하여 자기들을 다스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봤을 때,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약속을 듣고 기드온이 순종하여 대승을 얻은 것은 누구 덕에 전쟁을 승리한 것인가? 그렇다. 기드온이 실력이 좋고 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이 완벽하게 셋팅하신 계획대로 기드온은 간 것뿐이다. 마치 어떤 장군이 완벽한 전술로 이겼을 때 장군이 칭찬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지만,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했으니 왕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감동했으면 기드온의 후대까지 왕위를 이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 제안이 굉장히 놀라운 이유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인간이 통치하는 인간 왕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기 전에 애굽 왕 밑에서 종노릇을 했던 노예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은 인간 왕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해방자였고 그러한 이스라엘에는 인간 왕이 없었을 뿐더러 인간 왕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셨는가? 오직 여호와 한 분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스라엘 상황에서 기드온은 아주 멋있는 신앙고백을 한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다스릴 것이다. 나와 내 아들은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23절).” 이 고백은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를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주셔서 홍해에서 애굽 군대을 완전히 수장시키시고,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누구이신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드온은 인간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인간 왕정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신정정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의 이야기 끝이 사사기의 중앙에 놓여있다. 사사기 전체 스토리에 핵심 중앙에 기드온과 다음 이야기로 등장하는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두면서 이런 질문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은 누구인가?”이다. 우리에게 적용을 한다면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분은 누구인가라는 도전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딱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기드온의 멋진 신앙고백으로 끝난다. 그러나 갑자기 기드온이 아주 특이한 행동을 한다. 첫 번째로 기드온은 왕권을 거부한 대가로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탈취한 귀걸이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취한 귀걸이를 모으니까 무려 ‘금 천칠백 세겔’이다. 감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계산을 해보았다. 1세겔 당 11.42g이다. 거기에 7100을 곱하니까 대략 81kg의 금이 나온다. 요즘 금시세를 검색해보니 81kg은 현재 가치로 84억이다. 그외에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에게 장식품과 패물들, 그리고 미디안 왕들이 입던 자주색 옷과 낙타 목에 둘렀던 목걸이도 주었다. 그러면서 그 81kg의 금을 에봇을 만들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옷이다.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이 담겨 있는 흉패가 달려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데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종교의식을 할 때, 신들이 ‘금 옷’을 입는다. 이러한 의식은 신의 임재와 접근을 하기 위해 예식 중에 신에게 금 옷을 입힌다. 어쩌면 이스라엘에서도 특별한 금 옷을 예식에 사용할 때 이러한 이유와 목적으로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제사장이 이렇게 금 에봇을 차려입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나타내게 하려고 한 것으로 보게 된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기드온은 꼭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기드온은 양털시험할 때 여호와의 영으로 옷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금 에봇은 상징적으로 기드온이 세상적인 가치를 추구한 것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영을 금 에봇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에봇이 있어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기드온은 금 에봇을 만들어서 여호와의 전에 가져다 두어 기념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드온은 이 에봇은 그가 사는 성읍 오브라에 두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이 에봇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이 아닌 에봇을 섬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에봇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된 것이다. 올무가 무엇인가? 새를 잡는 미끼로 곡식을 잔뜩 내어두고 위에 바구니를 달아놓고 새가 들어오면 꼼짝 못하게 잡는 도구이다. 처음에는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파멸로 이끄는 유혹이 ‘올무’이다. 재밌는 것은 성읍 오브라는 기드온의 아버지 집에 우상들이 있었던 장소였다. 기드온은 이곳에 다시 에봇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기드온이 첩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아비멜렉이다. 아비멜렉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로 지어준다. 기드온은 왕의 자리를 멋지게 거절해놓고 아들의 이름을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고 지어준다. 금 에봇으로 인해 아들 아비멜렉에게도 올무가 되어버렸다. 이름과 반대로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될 계획을 세운다. 아비멜렉은 70명의 기드온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비극인가? 기드온의 아내가 얼마나 많았으면 70명의 아들이 있었겠는가. 이것은 곧 기드온이 왕의 자리를 거부했지만 ‘왕 같은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기드온은 금 에봇이 상징하듯이 풍요 속에서 주변 국가의 왕들의 삶의 모습 그대로 많은 아내를 두고, 많은 아들을 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심지어 기드온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영으로 옷 입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에봇을 입고 싶은 욕망에 굴복되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Romans 13:14 NKRV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도 바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구원의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낮에 활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난잡한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생활을 버리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란함은 성적인 죄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음란함의 의미는 하나님보다 더 좋다고 여기는 마음이 음란하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만, 돈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직장생활할 때 재테크도 공부도 해보고, 달러투자도 해서 이득도 봤고 금 투자도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는 행동이 무엇인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내 전부를 드려도 하나님은 나를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고백한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것이 없다면 내 인생 망할 것 같은게 있는가? 시험 성적이 바닥을 치면 인생이 망할 것 같은가? 재산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인생 끝날 것 같은가?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등등 여러 가지로 내 삶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 없어지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우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라진다면 드는 감정이 무엇인가? 두려움이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소망한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옷을 입기를 소망한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옷을 입으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은 무엇인가?
Ephesians 4:22–24 NKRV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뒤가 다른 모습, 자가당착의 모습을 버립시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행동은 세상의 가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나 또한 중고차를 구입한 이후로 새 차나 비싼 차를 타보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올 때가 많다. 그럴 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성령 충만하지 않구나’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유혹의 욕심, 세상의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구하며 기도하기를 소망한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은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 욕심이 없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을까 생각해보면 수련회 때, 예배할 때, 성경공부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기쁨을 누릴 때 은혜를 깊이 깨닫고 은혜를 받으며 누릴 때 세상의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쉽사리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에게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거룩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거룩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여러분은 교회에 왔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는가? 우리는 무언가를 하거나 섬길 때의 기준이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섬기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보기 힘들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날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기도한다. ‘이곳에서, 이 공동체에서, 앞으로의 나의 진로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이다. 그리하여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은 이 밤에 드려지는 기도가 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고 칭찬받는 복된 인생들 되어지기 간절히 소망한다.
<기도제목>
나의 삶의 기준이 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말씀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기분과 마음과 정욕대로 살아가려는 거짓되고 더러운 욕망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새사람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을 힘써 지키게 하셔서, 말씀 안에서 사랑의 교제와 서로를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가 되어 영적 가족으로 서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이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공동체되게 하여 주옵소서.
광주 땅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문이 열리고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드림인 중고등부 아이들이 학교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 용사로 세워지게 하여주시고, 그리하여 복음전도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대학생 그리스도인들이 방탕한 음주 문화와 축제 문화를 건전하고 복음적인 문화로 바꾸는 일에 앞장서게 하셔서 캠퍼스 복음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