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2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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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사랑의 실천
가정에서 사랑의 실천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중고등부 친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중고등부 학부모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 가정, 공동체
1. 가정, 공동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영향력을 주고 받는 공동체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태도, 습관, 성격, 가치관을 형성하며, 자신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추억들을 돌아보면 가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경험들은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의 경험은 나의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나의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때론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면서, 때론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정 공동체를 주시는데,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고, 여자를 본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내 뼈요, 내 살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내 뼈요, 내 살이라는 말은 “너는 나와 같은 존재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짧게 말하면 “너는 나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게 되면 선악과 사건으로 타락하기 전까지 아담은 여자의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는 동식물들의 이름을 모두 지었지만, 타락하기 전까지 여자의 이름은 짓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에게 동등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돕는 배필은 남자와 여자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다. 돕는 배필은 ‘동등한 동력자’이며, ‘부부는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동등한 존재로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최초의 부부의 관계는 곧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어느 공동체에 있든 본 받아야할 공동체의 가치이자, 리더가 갖춰야할 덕목이자 태도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동등히 여기며, 서로를 나와 같이 ‘사랑’하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자 공동체와 공동체의 리더, 인생의 선배가 품어야할 마음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가 품어야할 마음입니다.
2. 독선과 아집을 조심하라.
2. 독선과 아집을 조심하라.
세상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이러한 말들은 단 한권의 책을 읽은 사람은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이러한 말들이 있을까요? 이 말들은 어떠한 지식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자신이 전부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선’과 ‘아집’을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태도가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한 사람은 세상과 타인을 흑백논리로 보게 됩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독선과 아십으로 교만해진 사람들은, 점점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생각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니 비난적이게 되고, 자기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니 지적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와 틀리다고 지적하고 비난하려는 생각과 마음이 들 때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타인을 변화시키고 타인을 세워주지만,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한 사람은 타인을 향해 지적하고 질책하며 비난만 할 줄 알기에 그러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상처받지 말고 들어!”,
“너 기분 나쁜 건 알겠는데 할말은 해야겠어!”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러한 말들을 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함입니다.
직설적으로 “나는 지금 너에게 상처를 줄거야”, “나는 너를 기분 나쁘게 할 거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냥 내가 기분 나쁘고 이해가 안가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이며,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부로 타인을 비난하고 질책하려고 하지 마세요. 타인을 비난하고 질책할 때를 돌아보면, 대부분은 자신이 기분이 나쁘거나 자신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입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3. 용납하다.
3. 용납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3절에 “용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드려다 보려고합니다다.
“용납”은 ‘참고 견디다.’와 ‘허용하다.’라는 두 가지 뜻이이 있습니다.
‘참고 견디다.’의 의미는 내가 불쾌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참고 견딘다는 것입니다.
‘허용하다.’는 동의하고 허락한다는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허락한다는 것은 선배가 후배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형이나 오빠가 동생에게, 누나나 언니가 동생에게 사용되어 집니다다.
한마디로 용납은 불쾌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즉시 표출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용납은 나보다 나이가 적다고 나보다 연약해 보인다고 힘이 없다고 함부러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다.
4. 사랑과 선행으로
4. 사랑과 선행으로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 속에서 신앙 공동체로 모이고, 세상으로 다시 흩어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가 모일 때에 신앙안에서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말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것에만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모임인지가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지적하고 헐뜯는 다면 그 공동체와 모임은 없어질 것입니다.
방금 읽은 히브리서 본문은 이 반대로 하면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과 같이 된다는 경고와 권면의 말씀입니다.
결론. 가정에서 사랑의 실천
결론. 가정에서 사랑의 실천
오늘의 설교 제목은 “가정에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에서 우리가 품어야할 마음들과 경계하고 조심해야 되는 태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는 “나는 부모이니깐”, 자녀는 “나는 자녀이니깐”이라는 태도로 쉽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정 공동체는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서로에게 유익이 되며, 서로를 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은 부모의 헌신을 당연시합니다.
또, 자녀에 대해서는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따르면 효자, 효녀, 착한 자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괜찮은건가요? 건강한건가요?
자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 공부만 해!
공부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건강한 모습일까요?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 뒤에는 어떤 말씀이 나올까요?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말씀을 남자를 위한 메시지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25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자신의 영광을 모두 버리고 피조물의 모습으로 와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25절의 말씀의 핵심은 그 전 구절인 21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건 없습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자녀도 가정의 일원입니다. 가정의 일원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이든 밖이든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했을 때에 공동체를 함께 이끌어 나가려 하지 않고 타인에게 무언가 받을려고만 하면 공동체의 일원이라 생각하나요? 비난과 질책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동체에서 좋아하나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만 듣고 스스로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모습인가요? 직장에서 맡겨진 일은 생각안하고 주는 월급만 생각하면 회사에는 뭐라고 할까요?
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서로를 질책하고 비난하는 가정은 깨어진 공동체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 비난하고 질책하며 부정적인 모습만 가득하면 그건 깨어진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함으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힘이 되고 격려가 되며 편안한 마음을 주는 가정은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먼저는 가정에서부터 사랑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사랑을 배우고 경험하게 될까요? 깨어진 사랑을 가진 세상의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을 배우면 깨어진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가정에서 삶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깨어진 사랑의 모습이 만연한 우리 가정을 우리 공동체를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변화시킬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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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랑은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땅에 적극적이고 의지적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