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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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27-33(NKRV)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오늘 본문 부터 예수님의 사역가운데 뚜렷한 변화가 한 가지 일어 납니다. 그것은 전에는 해변 지역을 뱃길을 통해 이동 하시면서 사역하셨다면, 이제는 길을 따라 걸어서 여행을 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은 길을 따라 여행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길은 목적지가 있고 그목적지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길이라 많이 표현합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 납니다. 수많은 생각들과 질문들이 끊이지를 안습니다. 길은 목적지가 있으며 그 목적지 까지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요즘 네비게이션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목적지만 정해주면 네비게이션이 최적화되어 있는 길로 인도 합니다. 전에는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요즘은 여간해서 틀리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이 틀린 것이 아니라 네비게인션 보고 따라가는 내가 틀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목적지를 정해두고 네비게이션을 보며 정확하게 그 길만 따라간다면 얼마나 쉽고 간단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인생이 또는 신앙의 여정이 네비게이션을 보는 것 마큼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여정은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해와 달을 보며 목적지를 찾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쉽게 갈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목적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정확한지 질문 해야 합니다. 그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의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떠나십니다. 팔레스타인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과 160KM 이상 떨어져 있는 먼 지역이었습니다.
향해 떠나셨다.
목적지와 방향이 같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란히 함께 걷고 있다.
27절 중반절에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길은 단순히 발을 디딜수 있는 땅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길은 예수님의 여정을 의미하고, 제자들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주의 길을 걸어가시는 분이며,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실 분을 소개합니다.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도 길을 떠나는 것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길은 예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삶이고, 사명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길 위에서 제자들에게 지금 까지 걸어오신 자신의 대해 질문합니다. 지금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대답과 지금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제자들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들 중 하나로 본다고 말합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부활한 세례요한이라고 말했고, 갈릴리 지역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마태 복음에서는 이런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칭찬 하시지만 마가복음에서 잘했다고 하시지도 못했다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게 경고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나의 고백이 있습니까?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닌 나의 마음속에 있는 고백이 있습니까?
제자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고백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침묵하기를 명령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합니다.
인자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고난을 받고 장로와 대제사장 서기관 들에게 버림을 받고, 공동체의 지도자 들에게 쓸모없는 존재로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 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고 3일만에 부활 하실것을 예언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의 방응이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하자 붙들고- 예수님을 한쪽으로 데리고 간 후 꾸짖었다. 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들어나는 것은 베드로가 말한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길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기대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력한 통치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쓸모없이 버림바 되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었을 것입니다.
이말을 듣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어떤 말을 했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가려고 하는 길을 잘못되었다고 가르치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실이 잘못된 것입니까? 베드로의 길이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기대하고 바라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길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말씀에 맞춰야 할까요? 말씀을 나의 생각에 맞춰야 할까요?
우리는 나의 생각에 말씀을 맞춰 보려고 할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꾸짖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나의 기대와 소망이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대표로 말하고 있지만, 제자들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이 거기서 거기 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생각이 어리석어 보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베드로를 돌아 보시며 예수님께서는 꾸짖습니다. 베드로를 제자들을 33절에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뒤로 내 뒤로 물러가라고 명하십니다. 제자들이 있어야 하는 곳은 예수님의 앞이 아니라 뒤에 있어야 했다.
베드로와 제자들을 향해 사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하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 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만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요구되는 조건을 말씀하신다.
첫 번째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중심성, 자신의 희망과 계획, 자기의 유익과 개인적인 욕망, 자기 영광 자기 과시, 누가 더 높은가 나를 위해 사는 것, 자신을 위해 사는 것 ,
또는 어떤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어떤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나의 생명을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 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는 소명, 사명, 인내와 참음, 소극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하지만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할때 어떤 것이 떠올랐을 까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곳까지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리기 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처형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행동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내 처는 내 자녀는 내 삶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 산을 넘어 하나님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맞겨 드립니다. 라는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터져 나와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를 따를 것입니다.
끝까지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변덕스럽지 않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행동이 한번이 아닌 계속되어지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예수를 따르면서 끝까지 견디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신실하게 고백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초대 하실때, 예수님께서, 제자로 살아가라고 여러분을 부르실때, 우리는 왜 응답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8:35 NKRV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목숨은 나의 영혼이고, 나의 자아 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여러분은 지금 무엇이 필요 하십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가르키는 세상입니다. 살고 싶어 그럼 부자가되어야 한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돈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명을 위해 살아 갑니다. 생존을 위해 살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의 생명을 위해 하는 내가 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코 나를 살릴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의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복음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위하여 사는 사람 그것을 위해 목숨 잃는 사람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온세상을 가지는 것이 이익입니까?
구원을 얻는 것이 이익입니까?
우리는 온 세상을 다가지면 좋겠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이룬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아 갈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38절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음란은 성적인 타락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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