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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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15–16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그래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무엇으로 심판을 받느냐의 질문에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양심이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심이 송사하고 변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이 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양심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 받은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에게 불효하면 잘한것으로 압니까? 잘못된것이로 여김니까? 잘못으로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살인을 하면 잘못된 것으로 압니다. 자기에게 선을 배푼사람에게 악으로 대하면 옳지 않다는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될것입니다.
시편 53:1–5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 하였으니..
두려움이 없는 곳인데..왜 크게 두려워할까요?
다 보고 계시니깐 그러는것이 아닐까요?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판 형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 42:21–22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아우 일로 우리가 범죄 했는데.. 이 괴로움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추궁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사람이 온 세상이 보지 못하도록 죄를 짓는것을 숨긴다 할지라도 오히려 자신 스스로에게서는 도망칠수가 없는것입니다.마음의 새긴 율법..즉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제 3대 황제.. 악명 높은 칼리굴라도 천둥이 칠 때 두려워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선교사가 어떤 외딴 섬에 전도하러 가는데 거기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진짜 도덕성의 수치가 낮아서 하나님의 법을 알까 그렇게 함으로 죄를 깨달을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그 원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어떤것을 죄로 생각하는가 하는 설문조사였는데요.. 놀라운 답변을 적은것이었습니다.
도둑질 하면 죄, 부모를 때리면 죄다. 간음하면 죄다 이런것을 적은것이었습니다.
정리해 보니깐.. 십계명안에 다 들어있는것 이었습니다. 사람들 안에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적을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다.
우리 안에 양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온 양심인것입니다.
그러한 양심은 무엇입니까? 죄를 지적하는 소리입니까? 양심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반응하는 기능인것입니다.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실때. 이 말의 뜻은 양심이 있는자는 들으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것입니다.
양심의 뜻은 헬라어로 쉬네이데세오스 인데요. 그 단어의 원형인 쉬네이데시스 는 함께라는 의미와 전치사 쉰과 보다, 인식하다 에이도의 합성어로 함께 보는것, 공동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 양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선한양심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9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믿음이 있을때.. 구원받은 믿음이 있을때.. 착한 양심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은 육체의 더러운 죄성은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양심은 이제 선한 양심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한양심은 누굴 찾아 가느냐 베드로전서 3:21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선한 양심은 순전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알려고 소원하며, 그 뜻에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알기 원해야 하며 알았다면 복종하는 마음이 바로 선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지 않은 이들이 구원받은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 말씀대로 고난을 견디며, 산 만큼 상급으로 보상을 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죄와는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것이며, 나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추구하며 사는 삶들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에 복종하는 삶이 바로 선한양심을 갖는 삶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양심의 특징은 충성심입니다.
고린도후서 1:12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바울사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썻습니다. 그리고 실제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고, 고리도 성도들을 대할때
거룩함과 진실함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는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사도행전 24:16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양심에 이기며 살고 있습니다. 양심대로 살고 있습니까?
양심대로 사는 삶이 바로 선한양심으로 사는 삶이며, 양심에 이기는 삶이 죄를 짓고 사는 삶이 될것입니다.
-결론-
선한양심의 기본 베이직은 믿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영어로 faith 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성실.. 선항 양심인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영어로는 faithfulness 입니다.
충성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주어진 일을 성실히 완수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 선한양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하루살이에게는 오늘이 인생의 전부다. 하루살이에게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습니다.
오즉 오늘 밖에 없기에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도 하루 살이 같은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할것입니다.
토마 칼라일 사람은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후회 없이 대하라, 오늘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은 오늘
우리는 선한양심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바탕위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위해서 충성되이 살아야 합니다.
시편 61:8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우리는 선한양심을 가지면서 주님을 위해서 충성되이 살겠다고 서원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 기자 처럼 이행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것입니다.
믿음은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냥 명사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