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4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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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453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헌금명단호명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새벽을 허락하시고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더욱 생각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주님의 몸 된 교회ㅗㅜ 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사오니 그 부르신 뜻에 합당한 열매들로 주님께 영광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온전히 주장하사 더욱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된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함께 찬송하며 고백했던 가사의 내용처럼, 우리의 평생에 대속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더 알길 원합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더욱 알길 원합니다.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날마다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을 더 의지하는 복된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흠향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왕상 16:29-34
오늘 함께 봉독한 본문부터 왕상22:40 까지는 오므리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이 되어 22년간 북왕조를 다스렸던 아합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합 왕은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꽤 괜찮은 리더십을 갖춘 왕이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 오므리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왕권을 잡았었고, 아합의 통치기간까지 어떤 내부의 저항도 없었을 정도로 나라를 잘 다스렸던 인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남유다의 아사왕은 41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아사가 남유다를 다스리는 동안 북이스라엘은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까지 여섯번 왕이 바뀌게 된다. 그만큼 북이스라엘의 왕조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아합은 22년이나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이는 불안하기 그지없던 북이스라엘이 아합의 시대에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아합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아람의 공격을 소수의 군사력을 동원하며 격퇴했던 인물이기도 했고, 점점 거세어지는 아람의 위협에 대해서는 시돈과 동맹을 함으로서 극복하기도 했었다. 또한 아합이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했던 시돈은 당시 페니키아 지역의 주요도시들을 정복하여 통치했던 막강했던 왕이었다. 당시 아람은 남유다와 동맹을 맺고 북이스라엘을 자주 침략하곤 했는데, 북이스라엘이 시돈과 동맹을 맺으면 아람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의 바다를 이용하여 여러 나라들과 무역까지도 손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볼 때 아합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정말 열심이었던 유능했던 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다른 왕들과는 달리 무려 일곱 장이나 할애하며 아합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대가 북왕조 역사상 가장 우상숭배가 심각했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악이 또 다른 악을 부르는 것처럼, 아합은 이전의 왕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우상숭배자였다. 예전에는 악의 기준이 여로보암 왕이었다. 그래서 어떤 왕이 악을 저질렀다면, 성경은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 라고 평가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준이 아합이 되어서 “그가 아합의 집과 같이 행했다” 라고 하며 악의 기준을 새로이 쓰게 된다.
이러한 악행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며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은 “바알과 함께 하는 자” 라는 뜻이며 그의 딸 이세벨의 이름의 어원은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열렬한 바알 숭배자” 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야말로 바알을 열심히 숭배하던 집안, 바알에 사로잡힌 나라였다. 아합은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하며 여호와 신앙을 바알 신앙으로 대체하고자 사마리아를 바알 숭배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32-33절을 보라. 그는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고 바알을 위한 제단을 쌓았으며, 고대 셈족이 섬기던 다산의 여신 아세라까지 북이스라엘로 들여와 우상숭배를 아주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합을 지지하던 귀족들의 지지와 함께 북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그야말로 우상숭배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여러분, 지금 북이스라엘을 보라. 그들이 가진 재력, 그들이 가진 강인한 군사력, 정략결혼을 통해 확보된 탄탄한 외교력, 아합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인해 지금 북이스라엘은 최고의 번성기를 맞이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의 부요함이 바알과 아세라가 가져다 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풍요 속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고 있던 그 때였지만, 성경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버렸다고 평가한다.
함께 읽진 않았지만 25절을 보면 아합의 아버지였던 오므리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한 왕이라고. 그리고 성경은 29-30절에서 세번이나 아합을 가리켜 “오므리의 아들 아합”을 강조하며 마치 오므리와 아합이 동급수준의 악한 자임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더 나아가 30절을 보면, 오히려 아합이 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더욱 악을 행했다고 말한다. 그 아버지를 뛰어넘는 악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북이스라엘의 죄악된 길을 표현할 때는 관용적으로 “여로보암”과 비교했었다. “그가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행했다,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걸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합이 등장하고는 모든게 달라졌다. “그가…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라고 하면서 이제는 아합이 악인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여러분, 아합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어째서 아합은 여로보암보다 더 큰 악을 일삼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패했는가? 30절을 보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라고 말한다. 그가 행했던 악은 무엇인가? 여로보암이 행했던 우상숭배를 이세벨로 인해 더 본격적으로 북이스라엘 가운데 장려했던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저들은 한순간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섬겼던 것이다. 이러한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30절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평가하신다.
여러분, 우리는 아합의 행태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고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기는 참 쉽다. 그러나 막상 돌아보면 아합의 혼합주의적인 신앙이 나에게도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이 땅을 움직이는 돈이라는 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나에게 더 좋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 같이 보이는 인맥이나 스펙들을 함께 섬기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성적이나 자격증과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더 즐거워할 세상적인 것들이 우리 안에 있지는 않은가.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삶”은 다른게 아니다. 하나님만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함께 올려두는 삶이다.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과 찬송과 경배와 믿음의 자리에 다른 어떤 대상을 함께 올려두는 것이다. 우리의 신뢰의 대상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수단들도 함께 신뢰하는 것이다. 아합에게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였고, 곧 그것들이 상징하던 나라의 부, 권력, 외교력, 군사력이었다.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우리의 믿음의 자리에는 하나님만이 홀로 계시는가? 오직 하나님만 계시기를 축원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하루의 시간동안 가장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가 되시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베푸신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기뻐하는 우리가 되자. 우리의 인생길 가운데 찾아오시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께 최고의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함으로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사랑스러운 주님의 몸된 교회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주기도문
하나님,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금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넘치는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 올려드리는 삶 되게 하옵소서. 다른 세상적인 것들 의지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고 붙드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