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유대인을 통한 나의 신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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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28–29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를 보면 2장의 내용은 유대인의 죄악상에 대해서 설명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금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유대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무슨 말입니까?
표면적이라는 뜻은 겉으로, 바깥으로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면적은 안으로, 속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겉모습 유대인이 참된 유대인이 아니고 몸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가 아니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것이 유대인이고 할례냐.. 그것의 대한 답을 29절에 하고 있는데요..
율법을 생활 속에서 지키며 사는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이며, 마음의 할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가 중요한것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 주고있습니다.
진정한 할례를 받았는지. 할례의 의미를 알고 지금 생활하고 있는지 사도 바울은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할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최초 할례를 행했던 자가 누구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7:1 “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99세에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17:2–4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창 세기12장에서 최초 세운 언약을 17장에서 다시 세우십니다.
2-8절까지 자세히 읽어 보면요. 내가 내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운다.. 내가 내가 … 전부다 내가 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십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께서 내 언약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건 그 언약은 아브라함이 지킨 게 아니고요..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을 지킬수 있는 분은 누구 십니까? 바로 하나님 이신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되질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이 12장에 최초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을때.. 하나님이 도우심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100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이를 낳습니까?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약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99세에 완전해 지라고 말씀하시고.. 무엇을 행합니까? 바로 할례를 행합니다.
그리고 나서 완전해 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할례를 행하고 나서 이삭을 주시는것입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이 웃음이지 않습니까?
완전해 지다.. 그것이 바로 할례.. 거룩해 지다 그것이 바로 할례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할례는 죄의 몸을 벗어 버리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는 할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무엇을 말할까요? 죄를 벗는다는것이 무엇이죠.. 네 거듭남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남자 아이는 7일 동안 부정하지만 8일째 할례를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었다합니다. 하나님은 이 할례의 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전의 율법은 그림자 이지 않습니까? 죄인이 거룩해지는 방법은 할례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를 두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은 분입니다. 사무엘상 16:7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명기 10:16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육신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에게는 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9:25–26 “2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할례받은자와 할례받지 못한자를 내가 다 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았을때는 할례받은자는 벌할것이 없을것 같은데 왜 이러한 말씀을 했는지…이해가 되지 않은데요..
그의 답이 26절에 있습니다.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벌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멸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6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15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이 두구절 모두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고 효력이 없다는것을 말씀하시고.. 오직 사랑을로써 역하는 믿음만 효력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자 만 효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가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회장단 형제 자매님은 진실한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이 누구일까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그리스도인.. 주님이 나의 전부이자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인것입니다 .
즉 참된 할례는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든지, 새로 지으심을 받은자,, 새로운 피조물이 된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참된 할례를 행한자가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했다는것은 하나님께 난 속했습니다. 그것을 선포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럼 신약시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침례를 말할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 되었고 이제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므로 이제 내가 사는것은 주님을 주인을 모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을 믿는 자가 바로 진정한 할례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이 할례는 이세상과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을 단절할 것을 결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양피를 베는 것은 성결의 상징인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표식인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의 구별을 말하고 있으며 자신을 이 죄많은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최초 할례는 아브람이 99세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100세이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다음 할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출애굽기에 모세에 시대입니다. 모세가 40세에 광야로 가지 않습니까? 그때 얻은 아내 십보라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할례를 행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리고 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애굽왕 파라오 앞에 서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나안땅에 가게 허락해달라고 선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할례에 대해서 나오는 부분은 유월절 규례입니다. 유월절이 끝나고 하나님이 유월절 규례에 대해서 설명을 할때.. 이방인도 할례를 행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다음은 여호수아때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서 행해졌던 할례입니다. 그 할례가 끝나고 무엇을 했습니까? 이때부터 가나안의 정복전쟁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를 행하고 나서 주님의 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할려면 먼저 할례를 행해져야합니다. 구원을 받고 그리고 주님의 일을 행할수 있는것입니다. 구원을 받는것이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기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자리에 두마음을 품은 자가 있습니까?
야고보서 4:8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우리는 할례를 행한자라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경케 할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아직도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살면.. 주님의 일을 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할례를 행하면 고통이 수반이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함을 알려 주는것입니다.
헌신을 하게 되면 무엇이 따릅니까? 고통과 인내와 역경이 따르게 되어 있는것입니다. 평탄한 길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할례는 영원한 언약이며 불변하다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할례를 행하면 흔적이 남습니다. 그 흔적을 죽을때까지 가지고 삶니다. 우리가 손이나 다른부위에 다치면 그것에 상처흔적이 남지 않습니까?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어떠한 흔적이 남아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일 하는데 힘이 드십니까? 그러면 내 마음에 있는 흔적을 보십시요.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도와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9:15–16 “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주님을 어디에 새겼습니까? 나 마음의 십자가를 새기지 않았습니까? 할례의 흔적인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할례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할례 받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