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책임과 예의(신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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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이 마을 공동체에 있음을 알고 그 죽음에 책임을 지고 속죄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고, 전쟁 포로를 아내로 맞으려면 종으로 취급하지 말고 가족으로 대우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9절에서 하나님은 어떤 피살된 시신을 들에서 발견하고 그 살인범이 누구인지 모를때에 그 들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과학적 수사기법이 발달되어 있어서 왠만한 범죄나 미제사건들의 범인들이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수십년 지나도 결국 잡아내고야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미제 사건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제 사건은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빈들이나 광야에서 누구를 죽여도 목격자가 없으면 그 때부터 그 사건은 범인을 알수 없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을까요? 재수 없는 일을 당했다고 혀를 끌끌차며 시신을 묻어주거나 치워주는 것이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은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요, 일종의 속죄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 제물로는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드리게 하셨는데, 살인자가 특정되지 않아도 그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세월이 흐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잊어버린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죄가 잊혀지고, 기억속에서 사라지면 끝났는 것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처리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죄라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때, 응분의 처벌을 받지 못할때는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도 우리는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고 구별된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죄가 판치는 이 세상속에서도 죄를 짓지 않고, 그것도 아니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특별히 오늘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상으로 인해 기뻐하지만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속히 죄에서 떠나 하나님품에 돌아오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죄에 발을 담그지 않고 죄의 모양이라도 미워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피살자의 처리를 가장 가까운 성읍에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이 발생하면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지도자들이 이 속죄의식을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스스로 무죄를 선언하게 하셨는데, 은연중에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강조하십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피흘리는 피살자를 보았다면 우리가 치료했을 것이라는 다짐이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누구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억울한 죽음들이 있습니까? 교통사고로, 낙태로, 재난으로, 또 사회적 폭력으로 스스로 버리는 생명까지, 참으로 억울한 죽음들이 난무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죽음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찾아와 사과 한마디 조차 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쾌락을 즐기다가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 낙태를 하거나 낙태를 종용합니다. 세월호나 이태원참사같은 재난으로 어린 생명들이 죽어나가도 누구도 그 일에 나서서 내 탓이요!를 말하지 않습니다. 채무에 시달리고,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왕따에 시달려서 스스로 세상을 등져도 어느 누구도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가까운 공동체에 그 죽음을 살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억울한 죽음이 만연하지 않도록 교회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더 낳아가 교회가 이런 분들이 있다면 교회가 따뜻하게 감싸안고 위로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이 아니라고 억울한 죽음에, 아픈 상처에 무관심 하지 않고 그런 죽음에 우리 교회도 막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남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돕고 살피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포로에 대한 예의를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1929년 제네바 협약이 정립되기 전만 해도 포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접근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수천년전에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전쟁 포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명령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전쟁포로도 사람이고 존귀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서지 않은 일반인들에 대한 예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중요합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포로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대해서도 안됩니다. 이 당시에는 포로 중에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때에도 노예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하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내로 여기고 대우해야만 했습니다. 혹 마음이 변했다고 노예처럼 파는 일도 하나님은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한번 가족이 되었으면 계속 가족으로 대우하고 보살펴 주어야 했습니다.
이 규정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포로까지도 인간으로서 존대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얼굴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배운것이 적다고 말하는 것이 어눌하다고 이 외에도 여러가지 핑계를 삼아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가볍게 여기고 차별하고 모독하면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살아갈때에 누구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차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에 그분들도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 존대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도 살아가면서 우리는 죄의 무서움을 알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변의 억울한 죽음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며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사랑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새벽을 깨우며 하루의 첫시간부터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받아 주시고 오늘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위로하시고 기도하시는 것을 들어 주셔서,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은혜와 감동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미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악한 자들처럼 죄를 지을만한 장소에 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변에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고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그런 죽음으로 남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감싸안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구를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한고 그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기념일입니다.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속히 그 곳에서 떠나 진리와 생명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받는 역사가 그분들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거제도 땅을 덮고 있는 악한 영들의 세력들이 물러가게 하여 주시고, 이 땅이 하나님이 삼으신 거룩한 땅이 되어 복음의 능력이 흘러 넘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방방 곡곡에 가득한 땅이 됨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복과 은총을 받는 거룩하고 복된 땅으로 변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살아갈때에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질병도 침노치 못하게 지켜 주시고, 지금 병중에 있는 성도들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속이 나음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성도들, 한 분도 빠짐없이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그 건강함으로 주의 몸된 교회와 나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를 소망합니다. 숫적인 부흥만이 아닌 영적인 부흥이 임하게 하여 주셔서, 우리 성도들 모두 영적인 뜨거움을 가지고 말씀듣고 기도하며 예배드리기에 힘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인 충만함들이 교회 안에 가득차고 흘러 넘처서 이 뜨거운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교회 가정들 지켜 주셔서, 가정의 위기라는 말들이 우리 교회에는 먼 세상의 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너무 지체하지 말고 들어주셔서, 주님 안에서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시며 예배하는 아름다운 가정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하옵고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