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3

요한계시록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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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은 해석하기가 쉬운 책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상징과 그림언저가 많아서 자칫 잘못해석하면 많은 오해와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성경 66권 중에 하나이고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책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이단들의 잘못된 종말론 주장에 성도들이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적 종말론을 바로 이해해야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종말만만 다루는 책이 아니라, 갈수록 악해지는 세상 속에서 위축되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격려와 위로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도 요한이 살았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그 당시 독자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입장을 충분히 분석하는 역사적 겁근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계시록의 메시지가 1세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림의 징조와 심판의 그림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성도들이나 반드시 믿고 실천해야 할 영적 진리가 담긴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주제와 수신자

오늘 1절에는, 이 책의 주제이자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 (NKRV)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라는 말입니다. 아포칼립스, 계시라는 말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연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고 보여주시실 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보여줘야겠다 알려줘야겠다라고 결정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그래서 계시는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사실 모든 성경이 계시입니다. 특히 4복음서에는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자세히 설명했지만 계시록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4복음서엔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의 사랑, 겸손, 섬김등이 강조되었어요, 그런데 계시록에선 다시 오실 심판자 그리스도, 영광의 주님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별명이 제5복음서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도 주인공도 예수님입니다. 우린 흔히 666이나 천년왕국 14만 4천명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작은 조각일뿐,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계시록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아무에게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진짜 성도들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대상이 분명합니다.
여기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이란 말을 보세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의 핵심은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 그리고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속히” 라는 말은 빨리 이뤄진다는 의미보다는 머지 않아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왜 이렇게 강력한 말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당시 계시록의 수신인이었던 소아시아 교회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도미티아누스가 집권하기전에 교회는 수차례 무서운 핍박이 있었습니다. A.D 64년 경에 네로 황제가 로마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드레게 덮어씌워 대량학살을 감행했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이 핍박에 피바람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땐 로마라는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도미티아누스 핍박은 달랐습니다. 집권 9년째 되던 A.D90년에 로마시민들에게 ‘저는 여러분을 속였습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 신입니다’ 그때부터 황제, 시저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이미 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기에 거기에 로마 황제라는 신을 하나 더 추가하는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황제 신격화에 반대하는 것은 곧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교회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소아시아 지역 기독교 교회는 죽기를 각오하고 황제를 신격화하는 것에 저항했습니다. 로마제국은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장사하지 못하게 하고, 이자를 무겁게 매기고, 감옥에 구타하고 굶기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동굴을 파서 숨어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이 핍박을 견딜 수 있겠습니가? 이들은 고통스런 시기에 하늘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간절히 필요로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고통받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한느 세력이 온 세상을 뒤덮고,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환난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의 로마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심으로써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고통스런 현실을 이겨내게 하시느 것입니다.

사도요한

요한계시록의 전달자는 사도요한입니다. 1:1 그의 천사를 그 종 요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열한 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다 하나둘 씩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로 간 요한만은 그 후 60년이 넘도록 삼아남았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부탁하신 어머니 마리아를 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아흔이 넘는 나이가 되서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명령에 의해 밧모섬이라는 죄수 유형지로 유배되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왜 도미티아누스는 마지막 남은 예수의 제자 요한을 처형하지 않고 귀양을 보냈을까요? 요한을 보여줌으로써 아직까지도 저항하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봐라! 예수의 마지막 제자라는 요한도 로마의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절하고도 유배지로 끌려가지 않았느냐? 너희의 하나님은 치렇게 무기력하고 초라하다. 저항을 포기해라”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도미티아누스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반전을 귀양지 밧모섬에서 준비하셨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문이 열리고 천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계시록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교회들에게 편지형태도 쓰면서 요한은 큰 감격에 잠겼을 것입니다. 무서운 로마제국보다 더 큰 하늘나라의 영광을 선포했고, 초대교회는 다시 무섭게 살아나게 됩니다.
사실 열두제자 중 요한만큼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한만큼 주님이 마음을 열어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안에! 요한은 예수와 일치에 가까운 삶과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시록의 전달자로 요한을 택한 것일지 모릅니다. 주님께선 요한이 가장 말하기 편하신 것입니다. 2절에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2 NKRV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했습니다.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의 요한사도가 되어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이때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 계시록을 읽고 바르게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더하시사 요한이 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도 보고가슴가운데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과 축복
사실 요한계시록은 소아이사 일곱 교회들이 돌려서 읽는 회람서신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앞에서 말씀을 읽고, 회중이 그 읽은 말씀을 듣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복된데, 그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더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3 NKRV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축복의 책입니다.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에게는 심판과 재앙의 책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축복의 책인 것입니다.
계시록엔 일곱가지 축복이 나오는데, 그 중 첫번째 복이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첩경이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의 심령 가운데 죽은 말씀이나 공기의 진동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듣고 실행할 땐 진짜 힘과 진짜 복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1절엔 계시라고 했는데, 3절엔 예언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계시와 예언이 어떻게 다릅니까? 계시는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큰 그림인데, 예언은 현재 우리의 삶 속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의 특징은, 미래를 점치는 것은 7-8퍼센트에 불과하고, 대부분 현재 주어진 상황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영적 의미를 풀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가 가져야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며 오늘 나는 어떻게 말씀을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가? 결말을 안다면 지금 어떻게 사는것이 과연 축복된 삶인가? 에 대한 질문을 하며 읽는 것입니다.
주님이 곧 오시니까 세상일은 의미 없어 ! 직업 재산 다 포기하고 매일 교회 가서 흰 옷 입고 예배드리자! 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다릅니다.
계시록안에는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실행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 명령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를 받은 우리의 책임이고 사명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 말씀을 다 순종해야 하지만 계시록의 말씀은 특히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가 가까움이라 “ (3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제 수평선 바로 너머에 와 있기 대문입니다. 마라톤에서도 처음에는 가볍게 뛰다가 마지막 100미터는 전력투구합니다. 그러첨 세상 마지막 때에는 정말 정신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2–13 (NKRV)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말씀에도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 믿는 자의 축복을 강조합니다. 참 희한하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은 엄청난 박해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시록 첫 머리에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이 땅에서 당장 확인될 수 있는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만 확인될 수 있는 하늘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없애주시는 게 아니라, 고난 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 감정이 따라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순종하는 자마다 마침내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렇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더 순결해질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패배하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승리하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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