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이를 살리신 하나님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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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들어가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 주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몸은 고되나, 깨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가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

1.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의 내용은 어제 말씀에서 보았던 사르밧 과부의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보았지만 그녀에게는 아픈 아들이 있었는데 병이 악화가 되어 결국 죽게 됩니다. 그 일로 하여금 사르밧 과부는 원망을 엘리야에게로 돌립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시어 과부의 죽은 아들은 살아나게 됩니다.
2. 오늘날 나의 모습과 비슷한 사르밧 과부의 모습
오늘 본문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니 사르밧 과부의 모습이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릇된 사르밧 과부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1) 두 마음을 품음
그 모습의 첫 번째로는 사르밧 과부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보았던 북 이스라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마음을 품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우상을 섬기며 숭배하는 모습이 그들 가운데 만연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였고, 그것이 우선시 되는 모습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마음을 품은 모습,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이 만연했던 북 이스라엘의 모습을 새벽에 보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릇된 모습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나의 모습에서 보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믿기는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고, 순종하는 모습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는 것, 열심을 다해 신앙생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두 마음을 품은 모습이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떠한 문제나 어려운 환경, 욕심이 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나아가기보다 나의 생각과 세상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문제가 더 커보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보기에 옳은 것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두 마음을 품은 모습입니다.
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함으로 하여금 그것이 우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며 나누고 있지만,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이 꼭 어떠한 형태를 가진 것에 절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과 같이 두 마음을 품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나의 모습에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두 번째의 모습은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르밧 과부가 자신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어제 말씀에서도 보았지만, 얼마 전 이 여인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자신의 아들이 죽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뒤로 한 채 엘리야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도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그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리고 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 삶에 일하셨던 주님의 역사하심이 언제 있었냐는듯이 그 주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와 같이 내 앞에 있는 상황만으로 하여금 원망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잘하면 축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
다음으로 세 번째의 모습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고, 어떠한 선행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이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 여인은 엘리야에게 왜 자신에게 와서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하냐고, 또 내 아들을 죽이려고 나에게 왔냐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습니다. 방금 보았던 이 여인의 이 말 속에는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말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생각해도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잘못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다고 한다면 그에 따른 징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방금 말씀 드렸듯이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 무조건적인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범하면 그에 따른 처벌이 내려지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렇지만 많은 성도들의 모습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떄가 있습니다. 선행을 하면 축복을 받고,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신실하게 산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죄를 범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착한 일을 했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바로 징계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얼마나 교회 안에서 소란스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한테 가서 신앙생활 똑바로 안해서 벌 받은 거라고 말하는 모습,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복주신다고 하는 모습,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하여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곪았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덕을 쌓는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징계를 경험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기적을 경험해야만 믿는 모습
마지막으로 네 번쨰의 모습은 기적을 경험해야만 믿는 모습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보았을 때 보통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제 말씀에서도 보았지만 밀가루와 기름을 떨어지지 않게 했기 때문에 엘리야는 여느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까도 보았듯이 자신의 아들이 죽자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엘리야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이 여인이 엘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고 한다면 원망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과부는 엘리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원망으로만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 과부의 죽은 아들이 살아나자 이렇게 말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죽은 아들이 살아나자 그제서야 엘리야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르밧 과부가 보인 이러한 불신앙의 모습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도마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소식을 믿지 않았고, 못자국에 자신이 손을 넣어볼 때까지 믿지 않겠다고 했던 그였고,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믿었던 도마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앙의 모습에 대한 뼈 있는 말씀이셨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기적을 경험해야만 믿는다고 하는 모습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분명히 고백은 하지만 그 실상은 보여줘야만, 경험해야만 믿겠다는 마음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실제로는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물 위에 발을 내딛었던 베드로가 의심하자 어떻게 됐습니까? 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의심이 있고, 어떠한 기적을 경험해야만 믿겠다고 하는 모습에서는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5) 정리
여기까지 보았을 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사르밧 과부의 모습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나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은 북 이스라엘의 사르밧 과부보다 더 주님을 믿겠다고 하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속에서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 여인의 모습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여인의 모습을 보고 마냥 정죄함으로 그쳤다고 한다면 그 모습에는 회개의 기회가 없고, 주님 앞에 올바로 서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았던 모습을 통하여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회개함으로써 주님 앞에 나아간다고 한다면 다시금 용서해주시고,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주님과 친밀한 길로 갈 수 있는 길이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사르밧 과부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연약함,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그 모습을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 용서해 주시고, 다시금 은혜의 길로 이끄실 주님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2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방금 보았던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심으로써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신학자가 말하기로, “내가 죽을수록 하나님의 생명은 더욱 깊이 개입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오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잃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나를 내려놓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에서도 그러하고, 이스라엘의 광야의 여정, 그 이후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어지는 부분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 성도님들 각자마다 갖고 계신 간절한 기도의 제목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그 간절한 기도 속에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여전히 살아서 나의 욕심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만을 바라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 가운데 분명한 개입하심이 있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주님만을 바라며 간절히 나아가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새벽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돌이키며, 또 결단하며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 되게 하시고, 그 말씀 따라 승리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먼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르밧 과부와 같이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보였던 두 마음을 품고, 마음에 다른 우상이 있었던 모습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내 앞에 있는 문제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 기적을 경험해야만 믿겠다고 하는 의심이 가득한 모습들이 나의 모습 가운데 만연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 여인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이키기 원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써 나아가게 하시고, 의심없이 온전히 주님만 신뢰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매일의 삶에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믿음을 온전히 굳게 잡고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주목하여 주시고 응답하시는 주님, 오늘 이 시간도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나아가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이 한 순간으로 그치지 아니하게 하시고,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새로운 하루의 오늘,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하나님 안에서 강건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늘 동행하게 하시고,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더욱 깊어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함으로써 주님의 향기를 내게 하시고, 그 모습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주님을 볼 수 있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이 시간에도 여러 이유로 고통 속에 눈물 흘리는 성도님들 있습니다. 주님, 한 영혼, 한 영혼을 기억하여 주시고 친히 찾아가 주시어 위로하여 주시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인도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69장 / 3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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