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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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께 묻다 2.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다 3. 절반만 순종하다 4. 그럼에도 함께 하시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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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한 주 어떻게 지냈어요?‌ ‌
시험기간이라 공부하고 시험 보느라 정신 없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도 있겠죠?
다양한 모습으로 한 주를 살아냈을 것이라 생각해요.
(쉬고) 저는 여러분이 이번 주를 좀 특별하게 보냈기를 바라고 있어요.
지난 주 우리는 유코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했고, 말씀도 들었고 기도하는 시간들도 가졌었죠?
그 때의 기억, 은혜, 분위기 등 모든 것들이 지난 주 그 곳에서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해요.
그 은혜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드러났어야 하고, 살아가면서 말씀들이 생각나고 드렸던 기도들이 생각나야 해요.
그래야 정말로 은혜 받은 사람, 은혜를 경험한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쉬고)
유코 이후 여러분과 어떤 말씀을 나누어야 할까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사사기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어요.
사사기를 보면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등장해요.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등장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곧 잊어요.
조금 전까지 하나님을 찾고 예배 하고 제사드리면서 마음을 고백 했으면서, 돌아서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요.
마치 받았던 모든 은혜들을 그 곳에 두고 나온 사람들처럼 말이죠.
(쉬고)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할 때 했던 고백들이 있었어요.
“하나님을 위해 살게요.”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살겠습니다.”
“나에겐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쉬고)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과도 같은 것이잖아요?
여러분은 지난 주 유코 때 기도했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정말 어려워요.
결코 쉽지 않아요.
그 고백을 기억해 내는 것조차 못할 때가 많아요.
(쉬고) 이스라엘도 그랬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늘 절반의 순종만 보였어요.
절반의 순종. 무슨 뜻이겠어요?
순종을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순종을 뜻하는 말이죠.
우리보다 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늘 애매한 태도만 보였어요.
(쉬고) 우리 함께 읽었던 사사기 1장 1-3절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큰 역할을 했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었어요.
여호수아 그리고 그 앞에 있었던 모세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었고,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에 따라 순종하면서 모든 일들을 진행했어요.
여호수아가 죽고 남은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먼저 물어봐요.
(쉬고)
(PPT)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나님께서 어떤 지파가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고 계시죠?
유다. 유다지파만 올라가서 싸우라. 다른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를 콕 집어서 말씀하셨죠
그리고 “내가. 나 하나님이" 이 땅을 그의 손. “유다의 손"에 쥐어주었다고 이어서 말씀하세요.
(쉬고)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유다가 순종하여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완벽한 승리를 보장해주겠다.” “너는 무조건 승리한다.”에요.
하나님은 이미 유다가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도록 모든 것들을 다 계획해 두셨어요.
그랬기 때문에 “유다야 가서 싸워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아주 노골적으로 “이미 이긴 싸움"이인거에요.
(쉬고) 여러분 그럼 유다 지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확신을 가지고 ‘너는 이미 이겼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럼? 그냥 전쟁에 나가면 되겠죠?
하나님이 싸워주신다는데, 뭐가 걱정이고 무섭겠어요.
그런데 유다 지파가 이상한 행동을 해요.
(PPT) 3절이에요.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니라”
무조건적인 승리에 대한 확답을 받은 유다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죠?
갑자기 옆에 있는 시므온에게 같이 싸우자!
(쉬고) 좀 황당하지 않아요?
마음대로 올라가서 싸울거면, 차라리 하나님께 묻지를 말던지, 하나님께 물어서 대답을 들어놓고선, 결국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하고 있잖아요.
(쉬고)
유다지파는 큰 지파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나갈 사람들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요.
(쉬고)
완전 답정너에요.
이미 답은 정해져있는거에요.
유다는 원래부터 시므온이랑 같이 전쟁을 할 생각이었어요.
하나님께 예의상 물은거에요. 하나님의 대답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랑 같건 다르건 유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유다는 이미 답을 정해놨거든요.
(쉬고)
우리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어요.
이미 답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아요. 때로는 계산적으로 사람에게 다가 갈 때도 있죠.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반응이나 대답을 하지 않으면, 결국 무시하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결정하고 행동해요.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죠.
내 생각이랑 다르면 그들의 의견을 모른척 하며, 내가 내린 답과 결론대로 행동하는 것 우리들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께 기도해요.
하지만 이미 내 생각과 행동은 정해져 있어요.
결론을 정해놓고 기도할 때가 많아요.
(쉬고)
대학생일 때 CCC라는 기독교 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때 동아리 간사님께서 늘 동아리원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어요.
“4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이성교제는 금지한다. 4학년 1학기 때까지 훈련을 충분히 받고 이성교제를 해라.”
이게 잘 될까요? 같이 여러 활동을 하다 서로에게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간사님에게 찾아가요.
간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면 너희 기도해봐. 기도해보고 정말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감동이나 사인이 오면 그때 다시 찾아와.”
기도가 될까요?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했고, 좋아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는데 무슨 기도가 될까요.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 인것이죠.
“하나님 저 자매와, 저 형제와 제가 교제를 해도 괜찮을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짝이 맞을까요?”
“하나님 저에게 사인을 주세요. 마음의 감동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는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습니다.
상대가 하는 모든 행동이 기도 응답이고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미 결론을 내리고 기도하는 것과 같아요.
이것처럼 이스라엘은, 특히 유다는 답을 정해놓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유다만 답정너가 아니었다는데에 있어요.
모든 이스라엘이 다 그랬어요.
순종해야 복을 받고, 순종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지난 40년 동안 수도 없이 경험 했으면서, 유코, 수련회 우리의 삶에서 그렇게 경혐했으면서
가나안에 들어오자마자, 유코 장소에서 나오자마자 은근히 때론 대놓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을 하기 시작해요.
(쉬고)
하나님께서 유다지파만 가라고 했는데, 유다는 시므온이랑 같이 가요. 완전한 순종이 아닌 절반만 순종을 했어요.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했어요.
첫 전쟁도 절반의 순종을 했던 유다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절반의 순종을 해요.
하나님께선 유다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시므온이랑 같이 전쟁을 했어도, 약속 하셨기 때문에 다 승리할 수 있도록 하셨어요.
그런데 유다가 한 전쟁에서 멈췄어요.
(쉬고)
(PPT) 19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19절이 어떻게 시작하고 있나요?
(PPT)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어요. 그럼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에요. 근데 유다가 이상하게 전쟁을 멈춰요.
왜냐하면 적들에게 철병거가 있었거든요.
이스라엘에게는 창과 활 그리고 검도 제대로 없는데,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철병거가 있었던거에요.
유다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 겁을 잔뜩 먹어요.
자신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멈춰버린 것이죠.
(쉬고)
이스라엘이 정말로 철병거와 싸워서 이길 수 없었을까요?
유다지파가 철병거가 있는 사람들이랑 싸우면 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아니죠.
사사기 5장을 보면 철병거를 가진 부족과 싸운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가 나와 있는데, 그들의 노래를 보면 철병거? 좋은 무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드보라와 바락이 하나님과 함께 해 철병거를 가진 부족과 싸울 때, 이스르엘 평야라는 곳에서 싸웠어요.
철병거는 아무 것도 없는 평야에서 싸울 때 정말 무서워요.
드보라와 바락이 가진 무기들은 철병거와 비교하면 무기도 아니었어요.
철병거에 비해 분명 전력도 밀리고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전쟁에 나섰더니,
갑자기 비가 막 쏟아져요.
이 평야를 가로지르는 기손강에 물이 넘치기 시작하더니, 평야 전체가 물을 가득 먹은 습지로 변해버려요.
달려야 하는 철병거가 진흙탕에 빠져요.
아니 아예 움직이지도 못해요.
결국 드보라와 바락은 전쟁에서 승리해요.
(쉬고) 철병거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강해보이고 무서운 무기가 있다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장난감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유다는,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아요.
(쉬고)
첫 전쟁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멋지게 전쟁에 승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었어야 하는 유다 지파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기 시작하니까,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다른 지파들도 줄줄이 줄을 이어서 절반만 순종해요.
베냐민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요.
요셉 가문도 자신들을 도와준 가나안의 한 가족을 살려줘요.
므낫세 지파도, 에브라임도, 스불론도, 아셀도 납달리도 모든 지파가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지 못해요.
하나님께서 무조건 이긴다고 말씀하셨고, 다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적당히 싸우고 빠져버려요.
(쉬고) 가장 크고 영적 장자인 유다 지파의 절반의 불순종모든 지파의 불순종으로 나타났고,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살아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정복에 실패했어요.
(쉬고) 이스라엘이 정복 전쟁에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정복 전쟁은 단순하게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터전을 만들고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노예에 불과했던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셨죠.
비록 40년간 광야에서 떠돌았지만, 그들은 그 시간동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라가는 훈련을 받았어요.
40년간 받은 그 훈련의 결과가 바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그 땅 위에서 다 사라지게 만드는 전쟁을 통해,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어요.
(쉬고)
하지만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아요.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땅을 포기해요.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지 않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타락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결국 타락해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와 타락한 가나안의 종교들을 따라가는데 최선을 다해요.
40년이라는 훈련을 왜 받았는가? 싶을 정도로. 여호수아가 떠나자마자,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살아요.
(5초 쉬고)
이스라엘이 정말 못된 것은, 불순종하고 멋대로 살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데, 하나님은 잊지 않는다는거에요.
그렇게 멋대로 살아가면서 그래도 꾸역꾸역 하나님을 섬겨요.
희망고문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발은 하나님에게 걸쳐놓고, 묻기만 하는거에요. 그 말씀을 듣는 척만 하는거에요.
하지만 결국 자기 하고 싶은데로 행동해요.
(쉬고)
저는 어쩌면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요.
지난 주 유스코스타 때 저는 여러분의 모습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여러분 찬양할 때, 기도할 때 가서 사진도 찍고 영상으로 담아놨어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하나님을 찾으려 노력했고 만났고 기도하면서 부르짖었어요.
(쉬고) 그 고백대로, 고백을 기억하면서 이번 주 지내왔나요?
받았던 은혜를 여기저기 줄줄 흘리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나요?
여러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유스코스타 이후의 삶을 살아왔나요.
(5초 쉬고)
지난 주 들었던 말씀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었나요?
오늘까지 우리는 자유교회 설교를 18번 들었고, 각 교회에서 주일날 설교도 18번을 들었어요.
또 지난 주 유코 가서도 4번이나 들었죠.
적어도 우리는 5월 18일 오늘까지 올 한해 40번의 설교를 들었어요. 기도했어요.
(쉬고) 여러분 수없이 들었던 그 설교와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어요?
그 말씀들이 우리의 삶을 바른 방향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나요?
(3초 쉬고)
어쩌면 우리도 지금까지 절반의 순종을 해 왔을지 몰라요.
그렇게 뜨겁게 부르짖고 기도 해 놓고, 예전으로 돌아가서 또 그렇게 살았을지 몰라요.
혹시 한 주를 지내는 동안 찬양을 듣거나 부르나요?
듣거나 부르는 찬양이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흘러가거나, 그 내용을 깊이 있게 묵상하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미안하지만 그냥 가요를 듣는 것처럼, 아무 의미 없이 듣고 흘려보내는 것과 같아요.
가사에 집중하고, 이 가사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찬양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라고 묵상하는 시간이 없다면, 귀에 흘러가는 하나의 노래와 같다는거에요.
(쉬고) 우리는 삶의 여러 부분에서 절반의 순종을 하고 있었을지 몰라요.
무엇인가를 듣고 읽고 결단하고 고백하기는 하지만 그 것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지 않고 흘러가는데로 듣고 흥얼거리며 부르면서 지나갔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거에요.
(쉬고)
제가 좋아하는 찬양들 중 “시간을 뚫고"라는 찬양이 있어요. 이 찬양의 가사가 저에게 참 많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찬양의 가사는 이래요.
(쉬고)
(PPT) 당신은 시간을 뚫고 이 땅 가운데 오셨네.
우리 없는 하늘 원치 않아 우리 삶에 오셨네.
자신의 편안 버리고 우리게 평안 주셨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삶에 오셨네
하나님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네
꿈 없는 우리게 그 나라 보여주시네
연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힘 없는 우리의 인생을 위로 하시네
(쉬고)
이스라엘이 절반의 순종을 보이며 살고, 답정너의 인생을 살아도.
그들이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말해도 듣지 않고 무시하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스스로 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오신거에요.
(쉬고) 제가 우리가 절반의 순종을 보여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처럼,
기도의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결국엔 절반의 순종을 보이는 우리들로 인해,
예수님은 “자신의 편안을 기꺼이 내던져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어요.”
자신의 편안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쉬고)
사랑하는 자유 가족 여러분.
우리 절반의 순종 이제 그만해요.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은혜가 내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면서 절반의 순종을 줄여 나가봐요.
혼자서는 어려워요.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옆에 있는 동역자들을 주신거에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주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선생님들을 주신거에요.
(쉬고) 물론 순종하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 넘어질 수 있어요.
아니 당연히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린 순종하는 삶을 절대 결코 만들어 갈 수 없어요.
넘어져도 괜찮고, 쓰러져도 괜찮아요.
맨날 실패해도 전혀 상관없어요.
(쉬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정말로 실재.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순종하면서 살아내려는 여러분의 몸부림을 가만히 지켜만 보실 분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실패할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 분은 실패하더라도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마음이면 충분하게 여기세요.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포기해서 넘어지는 것과, 순종하려고 의식하면서 살아가다 넘어지는 것정말 큰 차이가 있어요.
(5초 쉬고)
이번 한 주 살아가면서, 나는 절반의 순종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았는가? 생각하고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래요.
지금은 절반의 순종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치뤄내신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해요.
그래서 이번 한주 절반의 순종을 벗어나, 절반의 절반의 순종을. 또 그 절반의 절반의 순종의 삶을 하며 하나님과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 은혜와 강한 힘과 능력을 모두의 삶에 더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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